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인정욕구를 내려놓기

“아이고, 너는 어떡한다니. 완전히 잘못 컸어.”     

몇 년 전, 외할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외할머니가 그럴 말씀을 하실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 이외의 그 누구라도 말이다. 내가 얼마나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해 왔는데.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갔고, 부모님조차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고, 마음 깊이 상처 입은 상태에서, 내가 얼마나,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지금 현실적으로 힘든 상태에 있더라도, 그걸 단 한마디로, “잘못 컸다”는 단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외할머니께서 나를 걱정하고 염려하시는 거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내게 일부러 상처 주시려고 저런 말씀을 하신다는 짧은 생각만이 들었다. 그날 외할머니께 좀 따졌다. 잘못 컸다니, 내게 너무 속상한 말씀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외할머니께서는 오히려 놀라시면서 “사실인데 뭐 그거 가지고 그러느냐”라고 하셨다. 그 말도 참 속상했다.

물론 나는 그때 내가 외할머니께 화가 났던 일이, 그럴 만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내 이상과 기대에는 완전히 부합하지 않지만 삶에 무척 감사하며 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외할머니가 씌운 “잘못 컸다”는 프레임에 그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과 자부심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려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잘못은 내게 있었다. 외할머니께서 무심한 말을 던지셨지만, 원래 그런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걸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였다. 내가 인정욕구가 너무 강했던 것이다. 외할머니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무슨 상관인가?     

그리고 나는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항상 인정받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하고 싶다. 이러면 안 되지만,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비교, 경쟁, 평가하는 것에 익숙한 면이 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감싸주면 참 좋을 것이지만, 실제로는 매의 눈으로 꼬집어 말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놓고 조소하며 무시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것 외에 정말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이더라도 말이다. 그러면 무시를 당한 사람은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자신의 단점을 고치고, 자신도 무시당했으니까 타인을 또 무시한다. 그러면 그 무시당한 사람은 또(이하생략). 이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싶다.  

그러니까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조금의 무시도 안 당하고 사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거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든 다 단점이 있고, 그 사람보다 뭔가를 더 잘하는 사람은 항상 있으니까 말이다. 무시당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차피 다 결국엔 무시당하며 산다. 우리가 아는 그 어떤 엄친아, 엄친딸도 마찬가지다. 연예인들에게 쏟아지는 엄청난 혐오의 발언들을 보라. 그 혐오의 발언들 중에 ‘무시’의 뉘앙스가 들어가지 않은 발언이 하나라도 있던가?      

그러니 연예인이든 엄마친구 딸이든 아들이든,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 너무 질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은 무시를 전혀 안 받을 것 같지만, 실은 다 무시를 받고 있고, 받고 있지 않더라도 곧 받을까봐 두려워 마음이 힘들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한다면, 어차피 다 같이 무시당할 바엔, 차라리 우리 모두 지나치게 큰 스트레스는 받지 말고 살자는 게 내 소소한 의견이다. 평소에 무시를 자주 받는다면, 차라리 일상처럼 끌어안고, 상처받지 않고 계속 가는 거다. 앞서 거듭 말했듯 무시 안 받는 사람 한 명도 없으니까.  

누가 나를 무시하는 것 이외에도 다른 비난을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가 나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고 치자. “나는 이기적이지 않은데 왜 저렇게 생각할까”하면서 오해를 풀기 위해 안달복달할 수 있다. 아니면 “내가 남들 눈에 이기적으로 보이는구나”하며 풀이 죽을 수도 있고, 대체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냐며 화를 낼 수도 있다. 상처를 깊이 받아 역으로 더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는’ 것은, 그 말을 어떤 식으로든 ‘받아들인’ 것이다.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 그러면 상대가 악의로 그런 말을 했든 그러지 않든, 상대에게 완전히 말려드는 것임은 물론, 잘 가고 있던 자신의 길이 흔들리게 된다.      

좀 이상한 예시일 수 있지만, 혹시 만화 나루토를 본 적이 있는가? 본 적이 있다면 나루토의 기술 중 하나인 나선환을 알 것이다. 나선환은 손 안의 투명한 구 안에서 공기를 엄청난 속도로 순환시키는 것이다. 구 안에는 마구 바람이 휘몰아치지만 구 바깥은 아무 움직임도 없다. 나루토의 저자 키시모토 마사시는 그 나선환으로 물체나 타인을 공격하면 엄청난 파괴력이 나는 것으로 설정했다. 갑자기 옆길로 샜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너무나 억울하고 부당한 비난을 들었을 때, 당신 안에 휘몰아치는 분노와 슬픔과 수치심을, 이것만큼은 반드시 변명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안에만 머무르게 한 채 겉으로는 완전히 고요하라. 그리고 그 감정들은 글쓰기를 하거나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거나 기도를 하는 방식으로 풀었으면 좋겠다. 감정을 어떻게든 해소했다면, 이제 뚜벅뚜벅 그냥 자신의 길을 걸어가라. 이것이 상대를 이기는 가장 수월한 방법이다. 그리고 그 고요함은 때론 당신의 인격과 그릇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혹시 나만 인정받지 못한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셨으면 좋겠다. 그건 절대 사실이 아니니까. 터무니없는 비난, 오해를 받아도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견지하셨으면 좋겠다. 세상 사는 거 참 더럽게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 결코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무시 대신 칭찬을 듣고 싶으면, 먼저 누군가에게 칭찬 한마디를 건네보자. 겉으로 표시는 내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은 속으로 감동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도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건네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렇게 온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이 닿아서,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면, 그것 참 멋진 세상 아닐까!     

-2024.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