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로 '전업'한 전직 기자의 전업주부 체험기 1. 요르가즘(上)
누군가 내게 전업주부가 되니 무엇이 가장 좋더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맘 놓고 요가 할 수 있다”고 답할 것이다. 누군가 내게 전업주부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요가 같은, 내게 꼭 맞는 운동”이라고 답할 것이다. 나의 전업주부 생활에서 요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하루아침에 커리어 우먼에서 전업주부로 정체성이 180도 바뀌었지만, 요가가 있어 덜 방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인도 깨나 다녀본 ‘열성 요기’인줄 알겠지만, 실은 일주일에 세 번 동네 요가학원을 다니는 평범한 아줌마 수강생에 가깝다. 심지어 그 중에서도 ‘부진아’다. 남들은 석 달만 배워도 곧잘 하는 우르드바다누라사나, 일명 아치자세를 수련 9개월째인 지금도 못한다. 6개월이면 성공하는 시르사아사나 역시 벽 없이는 1초도 못 버틴다.
그러나 비록 몸은 수강생일지언정 마음은 달라이라마도 부럽지 않다. 요가가 일으키는 마음의 변화만큼은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한다.
요가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이었다. 퇴사하자마자 요가를 시작했으니 전업주부가 된지 한 달 만이기도 했다. 그때까지 나는 신문은커녕 인터넷뉴스도 잘 보지 못하고 있었다. 혹여나 동기들이 쓴 기사를 보게 될까봐서. 회사에 남아 제 몫을 해내고 있는 동기들을 보면, 제 몫을 채 해내기도 전에 도망치듯 회사를 나온 내 나약함에 자꾸만 마음이 무너졌다. 먼저 이별을 통보했지만 버림받은 기분, 내가 꼭 그랬다.
‘요르가즘’이 찾아온 건 그때였다.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기력함이 끈질기게 엉겨 붙는 걸 겨우 떨쳐내고 요가 학원을 찾았다. 한 시간의 수업이 끝나갈 무렵 ‘물고기 자세’를 하는데 감고 있던 눈에서 주책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물고기 자세는 매트에 누운 상태에서 마치 누군가 내 가슴에 실을 매달아 천장 쪽으로 당기는 것처럼 가슴을 위쪽으로 들어 올리는 자세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호흡과 함께 가슴을 끌어 올리는데 어느 순간 명치 부근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각도까지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정도면 할 만큼 했어.’ 태어나 한 번도 깊게 신을 믿은 적 없는 나였기에 그건 내 목소리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마치 내게서 영혼이 빠져나와 말을 건네는 느낌이었다. 틈만 나면 더 버텼어야 했다고 스스로를 책망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스스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위로하고 있었다. 요르가즘은 자기 자신과의 진정한 화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