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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아 Jun 12. 2017

전업주부로 살아보니

전업주부로 '전업'한 전직 기자의 전업주부 체험기 1. 요르가즘(下)

전업주부의 페이스메이커 아침 운동

요가는 참 여러 의미로 내게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줬다. 전업주부는 ‘시간 부자’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여름 밤 맥주만큼이나 매혹적인 아침잠 때문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나면 ‘딱 30분만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유혹에 굴복해 한 번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면 좀처럼 빠져 나오기가 어렵다. 눈 깜빡할 사이에 30분이 3시간이 된다.

직장인들이 점심 메뉴를 고를 시간에 눈을 떴을 때 그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간을, 더 나아가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썰물처럼 밀려오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안고 시작한 하루가 희망적일 수는 없다. 그날은 우울과 무기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반찬 하나 새로 만들지 못하고 적당히 마감할 공산이 크다. 

반면 아침 운동을 통해 스스로에게 스케줄을 부여하면 ‘본전 생각’ 때문에라도 몸을 일으키게 된다. 그 말은 내게 오전이 생긴다는 뜻이다. 느긋하게 반신욕도 하고, 우아하게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오전이 요가 덕분에 주어진다. 요가를 통해 얻은 몸의 온기, 삶의 생기는 오후 늦게 까지도 식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전업주부에게 아침운동은 '페이스 메이커' 같은 존재다.  

                    

시간 뿐 아니라 멘탈 관리에 있어서도 요가는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준다. 전업주부로 지내다보면 예상 못한 박탈감이 훅 밀려올 때가 있다. 가끔은 공들여 화장 한 모습을 남편이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없다. 회사 동료와 상사 욕 진탕하며 순댓국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은데 그럴 기회도 없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일을 매개로 연결돼 있는데 마치 그물에 코가 빠진 것처럼 나만 쏙 빠져 있는 느낌. 관계에서 소외된 그런 기분이 시시때때로 나를 울적하게 만든다. 

이렇게 우울과 비관으로 내달릴 때 나를 잠시 멈춰 세워주는 게 요가다. 친구에게 요가를 권할 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요가는 정말 ‘요가원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운동이다. 요가원 가는 길에선 내가 갖지 못한 것, 할 수 없는 것만 끈질기게 떠오른다. 그러나 요가원을 나설 땐 어느새 내가 가진 것, 할 수 있는 것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가슴을 열고, 허리를 펴고, 다리를 좀 벌려줬을 뿐인데 순식간에 마음에 ‘감사’가 들어선다. 불평박사로 평생을 살아온 내게 감사는 참 어려운 과제였는데, ‘그 어려운 걸 요가가 해내는(!)’ 것이다. 나는 이를 ‘요가력(力’)이라고 부른다. 

요가 할 수 있었다면 퇴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퇴사한 게 후회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요가를 해보지 않고 사표를 낸 건 후회 된다’고 답할 것이다. 요가를 했다면, 그래서 요가가 자책과 불평에 브레이크를 걸어 주었다면 어쩌면 다른 결정을 내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을 쥐고 있어야 하는 기자라는 직업과 모든 것과 단절된 채 내 숨소리에만 집중해야 하는 요가는 쉽게 양립하지 않았고, 나는 결국 퇴사라는 선택을 내려야 했다. 요가 없이 큰 결정을 내렸던 것, 그게 조금 아쉽다. (오죽 아쉬웠으면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만약 오너라면 사표를 내미는 직원에게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네, 딱 한 달만 요가를 다녀보지.” 그 어떤 회유의 말보다 이게 효과적일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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