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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아 Aug 20. 2017

전업주부는 정말 '시간 부자'일까

전업주부로 살아보니

전업주부에겐 시간이 자본이다

 마트에는 '깐 대파'가 1580원쯤에 판다. 흙을 털고 파뿌리를 말끔히 제거해 필요할 때면 언제든 간편하게 사용하게 포장돼 있다. 회사를 다닐 땐 이걸 참 많이 샀다. 한식에서 대파는 육수에, 고명에 전방위로 필요한 단골 재료이기 때문이다. 1주일은 거뜬히 쓸 만큼 꽤 넉넉한 파를 손질까지 다 해서 파는데 천 원 대면 싸다고 생각했다. 동네 채소가게에 첫 발을 내딛기 전까지는 그랬다. 

 '한단에 1500원' 동네 채소 가게에서 박스 뒷면에 매직으로 성의 없게 적은 가격표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파 한 단이 1500원이었다. 마트에서 보던 '깐 대파'의 족히 3배는 돼 보였는데 가격은 오히려 80원 저렴했다. 파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채소도 전반적으로 마트보다 쌌다. 양파, 브로콜리, 파프리카, 각종 버섯 다 사도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면 족했다. 몇 개 사지도 않았는데 갈 때마다 7~8만 원이 나와 나를 겁먹게 했던 마트와는 너무 비교가 됐다.  

 싼 데는 이유가 있었다. 확실히 손이 많이 가긴 했다. 대파 한 단을 사오며 흙을 털고 누런 겉잎을 떼어내고 깨끗이 씻은 후 사용하기 알맞은 크기로 썰어 냉동실에 얼려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물러져 절반 이상을 속절없이 버려야 한다. 흐르는 물에 스윽 씻기만 하면 바로 찌개에 넣을 수 있던 마트표 파보다 시간이 배 이상 걸렸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했다. 경제활동을 중단한 내가 가계에 보탬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아끼는 것' 뿐이다. 돈을 아끼려면 시간을 써야 하고, 시간을 아끼려면 돈을 써야 한다. 직장에 메어있지 않은 나의 경우 시간은 풍족했지만 돈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돈 대신 시간을 썼다. 시간은 내게 허락된 유일한 자본이었다. 

전업주부는 정말 '시간 부자'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점 때문에 전업주부는 시간 부족에 허덕인다. 돈 대신 시간 자본을 쓰려하기 때문이다. 나만해도 그렇다. 예전엔 마트에서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했다면, 이제는 1차, 2차에 나눠 장을 본다. 식용유, 휴지, 통조림 같은 건 마트에서 사고, 고기나 야채는 동네 정육점과 야채가게에서 추가로 구입한다. 경험에 비춰봤을 때 '유통기한'이 없는 생필품은 대량으로 떼다 쟁여 놓고 파는 마트가 싸고, 유통기한이 있는 제품은 오히려 동네 어귀 시장이나 가게가 싸다. 마트와 시장을 믹스 매치하고, 크로스체크해가며 가장 최적의 조합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배로 든다. 

 엄마도 그랬다. 명절 때만 되면 엄마는 하루 종일 '어둠의 기운'(그렇다. 명절 증후군이다)을 뿜어 내면서도 ○마트와 ○○○시장을 몇 번이고 오갔다. 허리 아파 죽겠다고 인상 팍 쓰고 있으면서도 저렇게 악착같이 싼 곳을 찾아다니는 엄마가 그땐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장 대충 보고 좀 쉬라'고 큰 목소리로 설득하길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전업주부가 되고 보니 엄마의 치열했던 가격비교는 '전문성'과 '프로의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시간을 써서 돈을 아끼는 데 도가 텄다. 항목별로 어디가 가장 가성비가 좋은지 머릿속에 데이터를 구축해 놓고 있었고, 웬만한 고급 옷도 중성세재에 조물조물 손으로 빨아 세탁비를 아꼈다. 집에 미싱까지 두고 아빠 양복바지를 직접 줄이고 늘리는 건 기본이었고, 바리깡과 가위를 사다 30년 가까이 아빠와 남동생의 머리를 직접 깎아줬다. 미용실에서 10분이면 될 이발은 서툰 엄마의 손에선 1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밤엔 책 한 자 보지 못하고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엄마엔 한 참 미치지 못했지만 나도 이상하게 늘 종종거렸다. 돌이켜보면 한 일도 없는데 그랬다. 직장 근처로 오면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는 친한 언니, 친구의 고마운 제안에 집에서 꽤 먼 곳까지 왔다 갔다 하면 하루가 금방 갔다. 책을 사는 대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책을 빌리러 걸어서 20분 거리의 도서관에 갔고, 버스비도 아낄 겸 운동도 할 겸 40분이 넘는 거리의 요가원을 걸어 다녔다. 가족에게 비싼 식당에서 밥을 사는 대신 요리와 설거지를 했고, 옷을 사주는 대신 함께 쇼핑을 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은 최소한 내게는 더 이상 농담이 아니었다. 

전업주부의 시간은 공짜다? 

 게다가 전업주부의 시간을 노리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조직에 메어있지 않은 시간은 누구나 공짜로 빌려 써도 된다는 듯 많은 이들이 내 시간을 탐냈다. 나와 초면인 사람들 심지어는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까지 내 시간을 자신들이 선심 쓰듯 말해 여러 번 마음이 상했다. 

 한 날은 간병인을 쓸까 말까 고민하는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친구분들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일 안 하는 며느리는 아꼈다 언제 쓰려고 간병인을 써?" 

정작 시간의 주인인 내게는 의사도, 스케줄도 묻지 않고선 내 시간의 사용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그들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전업주부의 시간은 정말 헐값이구나. 내 24시간은 하루 10만 원도 안 되는 간병비보다도 싸구나.' 

 또 다른 날은 결혼 준비에 허덕이고 있는 언니를 보고 직장 동료가 "전업주부인 동생 이럴 때 좀 활용해"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건네 듣기도 했다. 나를 진심으로 대해 주시는 시어머니를, 내 영혼의 단짝인 언니를 돕는 일은 싫지 않다. 그러나 그런 일에 시간을 쓸지 말지 정하는 건 내가 자발적으로 결정할 일이지 남이, 그것도 생판 모르는 사람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 시간을 자꾸 헐값에 빌려 쓰려 했다. 전업주부의 시간이라고 무한정 늘어나는 화수분이 아니고 똑같이 24시간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여기저기 빌려주고 나면 종종 허무함이 밀려왔다. 

시간을 메어두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어 내 시간의 '배타적 소유권'을 확고히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내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내가 정하고, 내 시간이 아무리 흘러넘쳐 보여도 결코 공짜는 아니라는 사실을 주변 사람에게 주입시켰다. 그러기 위해 시간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오전 10~12시까지는 요가하는 시간, 오후 1~5시까지는 도서관 가고 글 쓰는 시간이라고 정해뒀다. 이 시간에 뭔가를 부탁하는 사람에겐 결국엔 그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일단은 난처한 내색을 했다. 내 시간이 공짜가 아님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작업이었다. 동시에 스스로에게 주입했다. 내 시간은 내 거라고. 돈을 벌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실까지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이 부탁 저 부탁 들어주다 정작 '시간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 자리에 작은 알맹이라도 남기기 위해서. 

 요즘 좀 바쁘다. 새로 나온 책 홍보 때문에 약속도 일정도 많다. 그런데 오랜만에 느끼는 이 분주함이 오히려 반갑다.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 일만이 줄 수 있는 달콤한 피로의 맛을 이제야 음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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