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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아 Mar 19. 2018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회사가 싫어서 집으로 도망친 여자의 '방황 일기'  

구독자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최윤아입니다. 

2017년 6월부터 '전업주부로 살아보니'라는 제목으로 올렸던 글을 묶어 책으로 펴내게 되었습니다. 브런치 독자분들께 가장 먼저 알리고 싶어 카톡 프로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입도 뻥끗 안 했답니다. 손이 얼마나 근질근질 거렸는지 몰라요ㅠ처음 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한 공간이라 그런지 유독 브런치에 더 애정이 가는 모양입니다.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제 두 번째 책의 제목입니다. 공개적으로 남편을 디스한 모양새가 되어버려서 마지막까지 격렬히 저항했으나 결국 이 문장이 제목이 되었습니다. ("저 남편이 바로 전데요"라는 머쓱한 말과 함께 어려운 홍보를 해주고 있는 남편에게 이 자리를 빌려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이 책 역시 전작 <뽑히는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제가 직접 기획하고 출판사에 제안해 만들어졌습니다. 손 떨리는 투고 과정을 또 한 번 겪어내기로 결심한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이런 책이 없다. 이런 책도 필요하다.'

  2016년 여름, 저는 진통제를 찾는 환자처럼 필사적으로 책을 찾아 헤맸습니다. 궁금했어요. 퇴사하고 전업주부로 살면 행복할지. 매일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회사로부터 벗어나 아늑한 집으로 도망가면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평온'을 손에 쥘 수 있을지. 그러나 제가 찾는 책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어떤 참고서도 곁에 두지 못한 채 첫 발을 뗐습니다. 참 지독히도 외로웠어요. 그래서 마음먹었습니다. 한 때 내가 지나쳤던 바로 그 갈림길에서 홀로 고민하는 누군가를 위해 나는 내 얘기를 남기겠다고요. 대단한 지름길을 알려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 발자국이 누군가의 외로움을 덜어줄 수는 있으니까요. 

 막상 쓰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내 책을 통해 단 한 걸음이라도 독자가 덜 헤맬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렇게 얻은 제 나름의 결론을 책에 담았습니다. (책의 절반은 이 곳에 썼던 글을 다듬은 것이고요, 나머지 절반은 새로 쓴 내용입니다. )

  처음엔 참 외로웠는데, 연재하는 동안 많은 분들이 좋아요와 댓글로 제게 용기를 주셔서 정말로 많이 힘이 났어요. 이 책이 여러분의 지지와 응원에 조금이라도 보답이 된다면 정말로 기쁠 것 같습니다. 궁금하신 분도 계실 것 같아 프롤로그 부분을 덧붙입니다. 

 저는 곧 다른 연재물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여러분의 봄이 더없이 충만하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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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밥 한 끼보다 책 한 권이 더 고프던 때가 있었다. 다시는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결국 쓰고 만 두 번째 사표를 주머니에 넣고 나는 자주 서점에 갔다. 사흘 굶은 사람이 첫 끼를 먹을 때처럼 맹렬하게 책을 찾았다. ‘퇴사, 전업주부, 행복’ 도서 검색창에 차례로 검색어를 쳐 넣었다. 나는 궁금했던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면 행복할까.

그즈음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무너진다는 말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 날들이었다. 일주일에 운 좋으면 두 번, 그렇지 않으면 서너 번을 밤 11시 30분 넘어 퇴근했다. 야속하리만큼 성과는 나지 않았다. 상사로부터 자주 지적을 받았고 그 바통을 이어받아 스스로를 지적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정신이 무너지자 몸도 고장이 났다. 구형 노트북을 짊어지고 다니느라 엿가락처럼 휜 허리는 자주 비명을 질러댔다. 숨을 쉬어도 가슴이 답답했다. 

그때였다. 전업주부라는 선택지를 떠올린 것은. 막 사회에 진입했던 5년 전엔 생각조차 하지 않던 길이었다. 유력 언론사에서 존재감 있는 칼럼니스트로 커 가는 것만이 내가 걸어야 할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결혼 후 꼬여버린 커리어와 엉킨 인간관계는 ‘이때다!’하고 그간 있는지도 몰랐던 좁은 샛길 하나를 보여줬다. 오르막 하나 없이 평탄하게 보이던 그 길, 바로 전업주부였다.

십만 원 넘는 옷은 거들떠도 안 봤을 만큼 악착같이 모은 덕분에 통장 잔고는 충분했고, 남편은 꾸준히 일을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며느리가 험한 일을 한다고 늘 조마조마해하셨던 시부모님은 외려 내심 반기는 눈치였다. 형편 상 일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은 그만둘 수 있는 나를 부러워했고, 주부인 친구들은 어서 이 안온한 세계로 오라고 손짓했다. 시시하게만 보였던 샛길이 꽤나 근사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길을 너무 모른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나보다 앞서 그 길을 걸었던 선배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사표를 내기 전 절박한 심정으로 책을 찾았다. 전업주부라는 이 미지의 세계에 혹여 예상치 못한 돌부리라도 있을까 봐 흐릿한 지도나 엉성한 경험담이라도 손에 쥐고 싶었다. 그러나 전업주부의 목소리가 담긴 책은 눈에 잘 띄지 않았고, 겨우 찾은 책 역시 육아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엄마’의 이야기와 분리된 ‘일하지 않고 살아본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발걸음을 뗐다. 그곳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평온과 행복을 발견하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 책은 그 1년간의 기록이다. 그 길에서 나는 잃어버렸던 계절을 찾았고 내 몸과 더 깊이, 더 자주 대화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처럼 편하지만은 않았다. 어느 날은 샛길 속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고립감에 몸서리쳤고, 또 다른 날은 다신 정상을 꿈꿀 수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내 손으로 만든 소박한 음식을 사랑하는 이에게 먹이는 행복도 맛봤지만, 매번 같은 그릇을 닦고 또 닦는 일의 무의미함도 맛봤다. 이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일하는 여자라면 한 번쯤 ‘취집’이나 ‘전업’을 꿈꾼다.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의심이 고개를 들 때, 여자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소외될 때, 낡아지기만 하고 도무지 깊어지지 않을 때. 그럴 때 이 책이 마음을 다독이거나 결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쓸모 있는 참고서가 되었으면 한다. 짧게나마 먼저 샛길을 걸어 본 한 여자의 후일담이 일하는 여자들의 지독한 허기를 잠시나마 채워줄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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