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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아 Apr 21. 2018

틀리더라도, 안 하는 것보단 나아요

완벽하지 못할까 봐 시도조차 못하고 있을 때

두 번째 연재를 시작합니다. 저를 일으켰던 문장들을 공유하려고 해요. 왜 그럴 때 있잖아요. 내가 내 뜻대로 안 될 때. '잘 되고 싶은 나'가 멱살 잡고 일으키려 해도 '이미 퍼져버린 나'가 완강히 거부할 때. 뭐라도 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귀찮고 두려워서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할 때. 저는 이럴 때만큼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던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제 때 일어나지 못하면 두 배로 무너지더라고요. 

그렇게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을 때 저를 일으켰던 건 딱 두 가지였어요. 첫째가 가족의 조건 없는 사랑과 지지, 두 번째가 타인에게서 나왔지만 제게 두고두고 약이 됐던 문장들. 첫 번째는 제가 구독자 여러분께 드릴 수 없는 것이고, 두 번째는 드릴 수 있겠다 싶어서 이렇게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브런치를 뒤적뒤적하던 여러분이 '끙차' 하고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힘이 나는 문장들을 '자주' 소개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이번엔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보려고 합니다. 뭐 언제는 안 그랬냐 하시면 드릴 말씀은 없지만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요가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지만 자꾸만 칭찬 받고 싶다. /jtbc '효리네 민박' 캡처

새 요가원에 가는 첫날은 늘 살짝 긴장합니다. 인정욕구의 화신인 저는 요가를 할 때마저도 '제대로 배웠다, 잘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거든요. 어떨 때는 요가원 가기 전에 집에서 태양예배자세(일종의 웜업 운동이에요)를 두어 번 하면서 전의를 다지기도 하고요,  '어떻게 하면 잘해 보일까'에 촉각을 곤두세우느라 집중을 전혀 못하기도 해요. 네, 저는 좀 그런 인간이에요.

2월에 집 앞에 새로 생긴 요가원에 갔어요. 상담을 하면서 1년 정도 요가를 꾸준히 했다고 말했기 때문에 첫 수업이 평소보다 더 긴장이 됐죠. '1년이나 했는데 그게 다?'냐고 혹여 선생님이 놀라실까 봐요. 힘을 빼는 걸 배우는 게 요가인데, 그날은 새끼손가락 끝까지 빠짝 힘을 주고 했어요. 긴장하니 호흡이 빨라지고 호흡이 빨라지니 평소엔 잘 되던 동작도 안 되더라고요. 엉망으로 하고 있다는 게 저도 느껴졌는데,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그저 저를 지켜보시기만 했어요.

긴장감이 감돌던 첫 수업이 그렇게 끝났어요. 옷을 갈아입고 차를 마시면서 선생님이 어떤 관전평을 내놓으실까 조마조마해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수련을 잘 하셨네요. 그런데 다음부턴 제가 좀 잡아 드려도 될까요?"

그 후로 선생님은 제 모든 동작을 바로 잡아 주셨어요. 예전엔 요가를 하고 나서 이상하게 무릎이 아팠는데 그 비밀도 풀렸죠. 엉덩이와 허벅지 전체에 힘을 줘야 하는데 무릎에만 힘을 몰빵하고 무식하게 버텼던 거예요. 이제라도 정확한 자세를 배웠으면 감사해야 하는데, 저는 그동안 혹사당한 제 무릎 연골이 너무 애석해서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푹 내쉬었어요. 

 틀리게 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그래야 혈액순환이 되거든요. 


제 마음을 읽으셨는지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시더군요. 요가원을 나서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 제 마음을 떠나지 않았어요.

돌이켜보면 저는 늘 '완벽하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타인의 비판에 잘 상처받는 편이어서, 비판을 듣느니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은연중에 단정해 버렸던 것이죠. 다른 기자들은 70%만 완성되면 기사를 '지르기'도 하는데, 저는 비판이 두려워서 80% 취재가 되더라도 결과물을 윗선에 잘 보고하지 않았어요. 상사가 부족한 20%를 질타할까 봐서, 그러면 내 자존심이 상할까 봐서 이미 완성한 80%를 그냥 포기해 버렸죠. 아주 사소하게는 애호박이 없다고 된장찌개를 아예 포기해 버리기도 하고요. '완벽하지 않으면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은 이런 식으로 제 여러 도전의 발목을 잡아 왔어요. 

그런데 책을 보니까 완벽주의가 절대 미덕이 아니고, 오히려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두는 감옥이더라고요. 그래서 정신과 의사 김혜남 선생님은 "60%만 채워지면 길을 나서라"라고 했고, 하버드 행복 강의로 유명한 탈 벤 샤하르도 "완벽주의보단 적정주의를 택해야 한다"고 설파해요. 완벽하려다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단, 적당히 해서 좀 빈틈이 있더라도 일단은 '하는 게' 삶을 좀 더 충만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거죠. 틀리게라도 몸을 움직여야 혈액순환이 되는 것처럼, 실패하더라도 뭐라도 해야 정체된 인생에 피가 돈다는 거예요. 몸에 제일 나쁜 게 가만히 앉아만 있는 거라고 하잖아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인생에 제일 해롭다는 거죠. 


사실 그 덕분에 이 매거진도 쓰게 됐어요.  나름 글쓰기 책을 낸 작가인데, 잘 못쓰면 비웃음을 살까 싶어서 계속 미루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완벽하게 쓰려고 미루고 미루다 보면 영원히 한 글자도 못쓸 것 같더라고요. 잘 못 쓰더라도 일단은 시작해야겠다 싶어서 60% 정도만 쓴다는 마음가짐으로 새 연재에 도전하게 되었어요. 요가하다 보면 컨디션 좋은 날은 안 되던 아사나도 막 되거든요. 지금은 비록 60%로 시작했지만, 컨디션 좋은 어느 날은 100%를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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