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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아 Jun 12. 2018

'예쁘다'는 말에 대하여

주저앉은 사람에게 건넬 마땅한 위로의 말을 찾을 수 없을 때

그 어떤 말도 소용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요양병원 침대에 고목처럼 굳어 버린 외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저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어요. 어떻게든 할머니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었거든요. 

'할머니, 의사가 그러는데 많이 좋아지셨대요. 이제 곧 집에 가실 수 있어요.' 처음엔 거짓말을 해볼까 했어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위약효과)를 기대한 거죠. 거짓에 도움을 받아 기적을 이루고 싶었나 봐요. 하지만 제 몸을 가장 잘 아는 건 자신이니까, 이런 안이한 거짓말은 너무 쉽게 들통날 것 같더라고요. 반쯤 열었던 입을 다시 다물고 생각에 잠겼는데, 저도 모르게 이런 문장이 튀어나왔어요.

"어쩜 이렇게 피부가 고와요? 할머니 너무 예뻐요."

왜 갑자기 예쁘다는 말을 해버렸을까요. 그동안 해왔던 막연한 낙관의 말들이 허망하게 느껴져서 일까요. 그땐 스스로 참 어이없는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허스토리'라는 영화를 보고선 그렇게 형편없는 말은 아니었다고, 아니 오히려 꽤 적절한 말이었다고 생각을 고쳐먹게 됐어요.

'허스토리'(Herstory)는 1992년부터 6년에 걸쳐 진행된 '관부재판'을 다룬 영화예요. 관부재판은 부산에 사는 일본군 위안부·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청구한 소송이에요. 영화 한 편 보면 며칠을 그 잔상 때문에 괴로워할 정도로 너무 깊이 몰입해서, 그러면 마음이 너무 힘드니까, 일부러 좀 거리를 두고 영화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눈물을 못 참게 만드는 장면이 있었어요.

영화 '허스토리' 스틸컷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배정길 할머니(김해숙 분)가 여고에서 특강을 하러 교단에 섰다가, 자기소개를 채 끝마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려요. 할머니가 일본군에게 끌려갔던 나이는 열일곱. 할머니 앞에는 서른 명이 좀 넘는 열일곱 소녀들이 말간 얼굴을 하고 숨죽이고 앉아 있었죠. 할머니는 소녀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너무 예쁘다'며 울먹이기 시작해요. 저렇게 찬란하게 피어날 시기, 처참하게 짓밟혔던 자신에 대한 연민 때문일 거예요. 그때 한 여고생이 낭랑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쳐요.

"할머니 너무 예뻐요! 할머니 울지 마세요!" 

한 사람이 완전히 주저앉았을 때, 심지어 그가 주저앉은 좌절의 바닥에서 긍정이나 의미를 단 한 톨도 건지기 어려울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속 편히 말하기엔 그 바람이 모든 걸 폐허로 만들어 버렸을 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죠. '잘 될 거야'라는 말은 성의 없어 보이고, '어떡하니'라는 말은 상대로 하여금 정말로 최악의 상황이라는 걸 재확인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어서에요. 

그럴 때 '예쁘다'는 말이 의외로 힘이 될 수 있겠더라고요. 열일곱 소녀들로부터 거의 합창에 가까운 '예쁘다'는 칭찬을 들은 배정길 할머니는 울면서 동시에 웃기 시작해요. 돌이켜보면 저희 할머니도 '예쁘다'는 말에 늘 손사래를 치면서도 눈과 입만은 웃고 계셨어요. 일단 웃으면, 절망의 무게는 순식간에 덜어지잖아요. 

인생이 늘 곤두박칠쳤지만 다시 일어서곤 했다. 모험과 도전을 서슴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마다 전 인생을 걸고 승부했다. 그러면서도 웃음과 립스틱을 잊지 않았다.

                                                                                                         - 김선주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中-


기자 지망생 시절 저는 언론사 시험에 정말 수도 없이 떨어졌고, 그럴 때마다 통곡을 하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어요. 그때마다 제 쌍둥이 언니는 제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다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해줬죠. "넌 어쩌면 이렇게 우는 것도 예쁘니?"(쌍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쩌면 자화자찬일지도...)

그 말에 피식 웃었고, 맥주 한 잔을 마셨고, 다음 날 다시 공부를 하러 학교에 갔어요. 퉁퉁 부운 눈으로 선배 언론인 김선주의 책을 읽다가 '그럼에도 웃음과 립스틱을 잊지 않았다'는 구절을 읽게 됐죠. 그 후로 한 동안 카카오톡 프로필에 '웃음과 립스틱'이라고 적어 뒀던 기억이 나요.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이 두 가지는 놓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요. 

(나를 애정 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면)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언제 들어도 옅은 웃음이 나는 말. '예쁘다'는 말은 그런 말인 것 같아요.  '예쁘다'는 표현이 여성을 평가하고 억압하는 말이 되어버린 시대에 이런 글을 쓰는 게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저는 '예쁘다'는 말이 가진 위로의 힘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어쩌면 '예쁘다'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은 당신을 지지하고 존경한다는 말의 '예쁜' 표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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