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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아 Jul 30. 2018

'자아실현'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

그날의 운세는 '0'이었어요. 100점 만점에 빵점. 아무리 나빠도 50~55 수준인데, 갑자기 0이라는 숫자가  

튀어나오니 처음엔 '오늘의운세' 앱이 고장 난 줄 알았다니까요. 

강의가 있는 날이었어요. 그것도 먼 곳에서. 운전면허 없이 대중교통으로만 강의를 다니는 저 같은 보따리 강사에게, 네이버 지도앱도 잘 못 보는 선천적 길치에게, '먼 곳'에서 하는 강의는 그저 강의 장소에 제 때 도착하는 일만으로도 엄청난 긴장을 유발하죠.  

지하철과 KTX, 마을버스를 거쳐 세 시간 만에 강의 장소에 도착했어요. 자외선 지수가 '매우 높은' 날이어서 도착하고 보니 벌써 겨드랑이가 축축했죠. 신경 써서 한 화장은 다 녹아내린 후였고요. '아, 그냥 안 한다고 할 걸.' 강의 시작도 전에 진이 다 빠져버려서 집에 가고픈 마음뿐이었어요. 

 우는 아이 뺨 때린다고, 그날따라 강의는 잘 안 풀렸어요. 농담을 던져도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 꾸벅꾸벅 조는 사람도 보이고 목젖이 다 보이게 하품하시는 분도 있었죠. "여러분 제 강의가 많이 재미없나요?" 과장해서 우는 표정을 지으며 물어봐도 누구 하나 '아니에요'라고 대답해 주지 않더라고요. 아 정말이지 집에 가고 싶었어요.

 무서우리만치 고요했던 수업이 끝나고 한숨을 토해내며 짐을 싸고 있는데 멀리서 한 남학생이 제가 서있던 교단 쪽으로 '미끄러져' 왔어요. 휠체어를 타고 있었거든요. 자꾸만 천장을 향하는 눈동자를 억지로 끌어내리던 그가 겨우 입을 열었어요. 

"아까... 부... 부끄러워서 말 못 했는데, 강의 '저어어엉말' 재밌었어요."

다 큰 남자 대학생이 아이처럼 천진하고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 저야말로 '저어어엉말' 오랜만에 봤거든요. 그는 뇌병변을 앓고 있는 듯했어요. 의지대로 말을 하고 몸을 움직이는데 시간이 좀 걸렸거든요. 그런 학생이 굳이 제 곁으로 다가와 서툴지만 완벽하게 자기 진심을 표현하는데, 그때 감정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요. 어두침침하던 제 마음에 딸각하고 샛노란 조명이 켜진 느낌이랄까요. 고맙고, 안도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더라고요. (울면 주책이니까 필사적으로 참았어요.) 

 다시 마을버스와 KTX,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두 가지 예감이 들었어요. 이 일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구나. 오늘의운세 앱은 더 이상 믿지 않게 되겠구나. 

일본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캡처. 패션지 에디터만이 '자아실현'이라고 믿었던 에츠코는 뜻하지 않게 배정받은 교열부에서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한다. 

  '일을 통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는 예감. 처음이었어요. 기자로 일할 때와는 다른 감각이었죠. 기사를 써서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재단 이사장만 배 불리는 비리 사학을 문 닫게 하는데 일조한 적도 있고, 자기 '스펙' 만들겠다고 세금을 엉뚱한 곳에 처바르는(갑자기 분노가..) 높은 분들을 저격하기도 했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을 했지만, 뭐랄까. 그 과정에서 저는 더 좋은 사람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할아버지뻘인 건물 경비원과 자주 싸웠고, 성희롱 인지도 모르고 야한 농담을 하던 권력자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장단을 맞춰주기도 했죠. 자료를 빨리 내놓으라고 갑질을 하기도 했고, 기사에 필요하면 약자들의 말에  귀기울였다가도 필요 없으면 가차 없이 외면했어요. 정신 차리고 보니 스스로도 좋아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책을 쓰고 강의를 하는 일은 좀 다르더라고요. 관성적으로 일을 하려고 했다가도, 강의실에서 만난 사람들의, 마치 '뭐든 흡수하겠다'고 말하는 듯한 그 갈증 난 눈을 보면 뭐라도 제 안에서 더 꺼내 주고 싶어져요. KTX까지 탔는데 강의료가 그 정도면 너무 짜다 싶다가도, 처음 보는 제게 내밀한 사연을, 오래 묵힌 지혜를 내 주시는 분들을 만나면 그렇게 손해 나는 장사는 아니다 싶어요. 더 진심으로 대하고 싶고, 더 도움되는 걸 주고 싶다는 '착한 마음'(겸손이 아니라 저 진짜 안 착하거든요)이 저도 모르게, 순하게 퍼져가요. 

 자아실현이라는 말 자주 쓰잖아요. 어릴 때부터 '직업을 통해 우리는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 뭐 이런 얘기 사회책에서 많이 읽었는데 사실 그때마다 도대체 자아실현이라는 것의 실체는 뭔가 궁금했거든요. 조금 머리가 커진 뒤로는 '꿈을 이룬다'거나 '재능을 100% 발휘한다'는 뜻인가 보다 하며 제 맘대로 해석했고요.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른 생각이 드네요. 

일을 통해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진짜 자아실현이라고. 

꼭 업계에서 1인자가 되고, 연봉을 높이고, 더 대단한 성취를 해야 자아가 실현되는 게 아니라, 일을 통해서 나와, 동료와, 세상을 더 다정하게 바라보게 되는 게 오히려 진짜 자아실현에 가깝겠다고요. 그렇게 마음먹으니 꼿꼿하게 경직됐던 자세가 손맛 좋은 마사지사에게 한 시간 몸을 맡긴 후처럼 기분 좋게 풀어졌어요. 

 소설가 최은영의 신작 단편 '아치디에서'는 '하민'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그녀는 서울의 한 대형병원 간호사였어요. 수간호사가 될 수 있을 만큼 일에서는 똑부러졌지만 환자와는 그 어떤 교감도 나누지 않았죠. 그랬던 그녀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아일랜드의 깡시골에서 말을 돌보며 살아가게 된 건 평소 따르던 선배가 건넨 무심한 듯 날카로운 질문 때문이었어요.  

 " 하민씨 눈엔 자기가 어떻게 보여요?"                     

'자아실현'의 반대쪽에 있는 단어는 인간소외겠죠. 대학생 때 읽었던 사회과학 책에서 '노동이 인간을 소외시킨다' 같은 근엄한 문장을 종종 읽었는데 이제는 그 진짜 뜻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스스로도 좋아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간다'는 것, 그게 진짜 인간소외라고. 

  그날 미끄러지듯 제게 다가와 마음을 전해준 청년 덕분에 그동안 안다고 착각했던 경직된 단어들이 술술 풀어져 제 마음에 들어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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