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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아 Aug 04. 2018

고통이 아니라 두려움이 날 아프게 한다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예감'으로 괴로울 때 

'이거 실화냐'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111년 만에 가장 더웠다던 지난 1일 저녁. 거짓말처럼 에어컨이 고장 났어요. 정전이 왔을 때만 해도 설마 했는데 역시나 하고 많은 가전 중에 가장 절실한 에어컨이 누전됐더군요. 막 마른 머리는 순식간에 땀으로 다시 젖어가는데 그보다 빠른 속도로 한 영상이 제 머릿속을 장악해갔어요. 

 "워낙 고장이 많아서 9월에나 고치러 갈 수 있겠는데요?" "9..9월이요?" 결국 에어컨 없이 살던 그녀는 열대야로 인한 불면증과, 불면증으로 인한 체력 저하, 체력 저하로 인한 우울증을 연쇄적으로 겪다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데...  영상의 내용은 대충 이랬지요.

 파국의 드라마에 브레이크를 걸어준 건 남편이었어요. 앞으로 저를 덮칠 불행의 예감에 울먹이는 저를 보며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어요.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 아마 금방 고쳐질 거야. 정 안 되겠으면 호텔이라도 가지 뭐. " 천하태평 남편의 말에 이유 없는 짜증이 솟구치려는 찰나, 한 발 앞서 찾아온 한 문장이 제 정신줄을 잡아 주었어요.

고통과 두려움을 구분해야 한다.

사실 이건 제 입에서 나왔던 문장이었어요. 제 쌍둥이 언니가 얼마 전에 딸을 낳았거든요.  40시간이나 진통을 했어요. '나 통화도 못하겠다. 나중에 다시 할게.' 아픔을 서로에게 공유하길 좋아하는(쉽게 말해 엄살이 무지 심한) 저희 자매가 입을 다물 때는 진짜 아픈 거거든요. 철저히 혼자만의 것인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언니를 생각하니 막 눈물이 나고, 뭐라도 주고 싶어서 최대한 언니의 상황에 감정이입을 해봤어요. 어디서 들었거든요. 진통이라고 매분 매초 계속 아픈 게 아니라 처음엔 10분 주기로, 그다음엔 5분, 그다음엔 1분 주기로 아픈 거라고요. 만약 제가 언니라면 1분의 진통보다, 진통이 오길 기다리는 9분 동안의 두려움이 더 견디기 힘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런 말을 남겼죠. '두려움과 통증을 구별해야 해. 언제나 현실은 상상보다 덜한 법이야.' 

 훗날 쌍둥이가 말하더라고요. 그 말이 무척 도움이 됐다고. 언니는 진통을 '정신병 걸릴 거 같은 고통'이라고 표현하면서 '진통 그 자체'보다 '곧 있을 진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쳐버릴 뻔했다고 했어요. 지금 내가 느끼는 아픔이 아니라 '앞으로 아플 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다고요. 역시 인간을 패닉으로 몰고 가는 건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의 예감', 즉 두려움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SBS '괜찮아 사랑이야' 캡처 화면. 에어컨이 고장났단 비보에 저는 하염없이 손톱을 뜯었습니다. 

 이 일화를 떠올리며 제가 처한 상황을 다시 봤어요. 최대한 두려움을 걷어내고 현시점에서 진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찾아봤죠.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을 맞았더니 사실 그렇게 못 견디게 덥지는 않았거든요. 얼린 페트병을 수건으로 돌돌 말아 다리 사이에 끼고 선풍기 바람을 쑀더니 못 잘 만큼 덥지도 않았고요. 제 고통은 실체가 없었어요. '더위 때문에 조만간 불행해질 나'라는 두려움만 거대했을 뿐. 

 에어컨 없이 잠든 첫날 딱 한 번 깼어요. 땅땅하던 얼음이 녹아서 돌아 누울 때마다 물과 얼음이 부딪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거든요. '자꾸 소리가 나니까 (페트병 속) 얼음물을 좀 마셔볼래?' 남편의 기발한 제안에 웃음이 터져서 눈을 떴다가 그의 조언대로 얼음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잠들었어요. 다음 날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예상보다 빨리 와주신다고 하대요. 그 후로 오늘까지 선풍기 한 대로 역사에 남을 열대야에 맞서고 있는데, 저 자신도 놀랄 만큼 꽤 견딜만해요. 심지어 오늘은 아침 10시까지 늦잠도 잤어요. 난 이제 어떤 환경에서도 잘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 되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제 자신이 대견해지기까지 하는 거 있죠. 

  두려움 속에서 인생을 보내는 것은 그 두려움을 막는 방책이 아니라 두려운 결과를 부르는 초청장을 쓰고 있는 것이다.                                                                            - '두려움, 행복을 방해하는 뇌의 나쁜 습관' 中-


저는 걱정과 두려움을 끊임없이 자가발전시키면서 살았어요. 최악을 대비하는 게 프로다운 것이라고, 그래야 진짜 그 그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침착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렇게 사니까 불행하더라고요. 하버드대 정신과 교수 스리니바산 S. 가 쓴 책 <두려움, 행복을 방해하는 뇌의 나쁜 습관>에서 마침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어요. 두려움은 센서등 같은 거여서, 0.01초 동안 두려움을 스치기만 해도 뇌를 포함한 우리 신체는 긴장·불안 모드로 전환된다고 해요. 왜 센서등 근처를 자꾸 왔다 갔다 거리면 건전지가 빨리 닳아버리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여서 두려움 근처를 자꾸 서성이면 에너지가 닳아버려서 기력이 없고 만성피로를 느끼게 된대요. 그렇게 소진돼 버리면 정작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죠. 불행한 건 뭐 말할 것도 없고요.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아기도 40시간 동안 나오려고 기를 쓰고 있는 거잖아. 더 이상 아기를 힘들게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않는 방법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 언니는 그렇게 40시간의 진통에 마침표를 찍었어요.  저는 '남편과 추억을 만드는 일'에 주의를 집중하기로 했어요. 에어컨이 고장 나지 않았다면 언제 또 한 밤 중에 깨어나 남편과 깔깔거리며 웃어 보겠어요. 암막커튼 쳐놓고 어둠 속에서 각자 잠만 자기 바빴는데, 오랜만에 거실에 이불 펴고 자니 은은하게 레온 사인이 새어 들어와 느낌이 또 다르더라고요. 무엇보다 고통의 한가운데 있어도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건 '고통'이 아니라 '추억'이 된다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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