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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아 May 11. 2018

여자는 애 낳으면 끝이라는 말

이대로 정말 끝일까봐 겁에 질렸을 때 

저는 소설가가 쓴 소설보다, 소설가가 쓴 에세이를 더 좋아해요. '작품'그 자체보다는 '사람'에 더 반응하는 독자이지요. 그런 제 마음에 오래 남은 책이 있어요. '채식주의자'를 쓴 소설가 한강이 펴낸 에세이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예요. 작가의 '인생 노래'와 그에 얽힌 추억에 관해서 쓴 산문이에요. 

 작가는 잊을 수 없는 노래 중 하나로 '렛잇비(Let it be)'를 꼽았어요. 렛잇비는 너무 대중적인 노래니까, 이런 책에 싣기에는 아무래도 좀 힘이 빠진다 싶었죠. 그런데 그 꼭지를 읽고 나니 그 흔한 렛잇비가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작가에게도 소위 '경력단절기간'이 있었어요. 막 태어난 아기를 단 한 시간도 맡길 데가 없어 오롯이 혼자 돌봐야 하는 와중에 손가락까지 아파서 몇 년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고 해요. 아주 고약한 경력단절기간이었죠. 엄격한 사람이 보더라도 글을 쓰기 불가능하다고 수긍할만한 그런 상황에서, 작가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손으로 쓴 원고를 타이핑해달라고 하고, 그걸 출력한 후 여백에 다시 손으로 고치는 방식으로 작업을 계속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도 글은 계속 도돌이표… '이러다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초조함이 그녀를 완전히 패닉으로 몰아갔어요. 

 하루는 집에 창이란 창은 죄다 닫고 렛잇비를 최대한으로 크게 틀었대요. 아이에게 두꺼운 양말을 신기고, 자신도 신고요. 그러고선 거의 악을 쓰듯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와 방바닥을 미끄러지며 막춤을 췄다는 거예요. 엄마와의 춤판에 아이는 신나서 까르르 까르르 거리며 웃는데, 그 발랄한 웃음소리와 온 방을 채우는 렛잇비 소리 파묻혀 그녀는 그제야 소리 내 울었대요. 예전에 한 번 (아주 멀리서) 본 적 있는데, 목소리도, 말 수도 아주 작던 작가가 미친 사람처럼 막춤을 추며 울었다니까 그 절망감이 제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더라고요. 

KBS2 드라마 '고백부부' 화면 캡처 

 이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제 친구 때문이에요. 일찍 결혼해서 벌써 '어린이'가 된 애기가 있는 친구거든요. 청첩장 모임으로 오랜만에 만났는데 수다 떨다 보니 얘기가 자연스레 '출산'으로 흘러갔어요. 그런데 애가 없는 한 친구가 혼잣말이라기엔 다소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여자는 애 낳으면 끝이잖아. "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꿈을 접은 그녀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그녀의 무심함에 화가 나려는 찰나, 친구가 담담하게 말했어요. "맞아. 나는 애기 키우느라 내가 못 컸어. 그래서 나는 너희를 만나는 게 가끔 좀 힘들어."

 불편했던 모임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 '여자는 애 낳으면 끝'이라는 말을 계속 흘겨보게 되더라고요. 사실 그 말, 남자가 아닌 여자의 입에서 더 많이 나오잖아요. 저도 몇 번 들었어요. 여자는 애 낳으면 끝이니 애 없을 때 예쁜 옷 많이 사고, 좋은 데 많이 다녀라. 여기서 그 '끝난다'는 것들은 미모나 여행 같은 비교적 사소한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커리어나 인생 전부를 의미하기도 하죠. 

  이 말은 출산을 이미 경험한 사람들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출산 후 변한 삶에 대한 약간의 자조와 '출산 선배'로써 출산 미 경험자에 대한 약간의 당부를 담아서요. 자신이 느꼈던 아쉬움과 후회를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 말이니 그 의도는 어찌보면 나쁘지 않죠. 하지만 아무리 그 의도가 선해도 결과적으로 이 말은 애가 있는 사람에겐 '너는 이미 끝났다'는 한계를 그어버리고, 애가 없는 사람에겐 필요 이상의 공포감을 심어줘요. 무엇보다 누군가의 인생에 타인이 '끝'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붙이는 건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삶이 끝나는 순간이 존재한다면, 그건 결혼이나 출산 같은 사건이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의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이겠죠. 내가 내 삶을 외면하지 않는 한, 인생은 절대 특정 사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건 제가 서른몇 해를 살며 확인한 몇 안 되는 진실 중 하나예요. 

There will be an answer[대답이 있을 거야]  -렛잇비 中-

한 때 절망 속에서 절규했던 작가는 '대답이 있을 거야'라는 가사가 그 시절 자신을 '구해냈다'고 표현해요. 대답이 있을거라고, 아직 끝이 아닐거라고 믿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또 다독이며 그 시간을 견딘 작가는 결국 성취를 이뤄냈죠. 그녀처럼 대단한 '성취'는 아니더라도 버티고 견디다 보면 틀림없이 '성장'은 할 수 있잖아요. 아이의 탄생이 내 인생의 소멸로 이어질까 봐 겁에 질린 여성분들에게 한강 작가의 이야기를 꼭 들려드리고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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