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상상을 즐기는 사람이었으면
초등학교 3학년, 아람단에 입단했다. 한 살 일찍 학교를 들어갔으니 나이로는 9살. 아마도 단복을 스스로 입진 않았을 거다. 엄마가 옷을 입히고 카라를 정돈해주시지 않았을까. 베레모를 씌우고 코도 닦아 주셨겠지.
아무튼, 파란 유니폼을 입은 것만으로 들떠있었는데 옆줄에 처음 보는 애가 다가와 자기 가슴팍에 달린 배지들을 자랑했다. 그 녀석 조끼에는 10개가 넘는 배지가 달려있었다. 나는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 채 주눅이 들었고 어렵사리 배지의 출처를 물었다. 그놈은 자기 친형의 아람단 활동을 따라다니며 따낸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입단식 와중에 그런 말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형의 것을 물려받은 거겠거니 하겠지만 어린 나는 그걸 그대로 믿었다.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순진했으니 말이다. 그녀석의 허풍을 들으며 나는 입단식이 끝날 때까지 찬찬히 그 배지들을 구경했다.
그날 이후 한동안 배지를 찾아 여행하는 꿈을 꿨다. 눈을 감고 TV나 영화, 책에서 봤던 장소들을 총동원해 상상하다 잠이 들었다. 낮이면 탐험의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다. 함께 가고 싶은 친구들을 소환하기도 했다. 불을 켜지 않은 방, 들어오는 햇살에 기대 즐겁게 그림을 그리던 순간을 아직 잊지 못한다. 얼마 후 그 녀석의 거짓말을 다른 친구가 밝혀냈다. 나에겐 더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어릴 적 아람단 배지에 도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돌아본다. 거짓에 속지 않는 데만 혈안 되어있진 않는지. 내가 사실이고 상대는 거짓임을 밝히기 위해 검색창을 딱딱하게 두들기지는 않는지 말이다. 그 친구의 허풍이 어쩌면 내게 상상의 기쁨을 알려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딱 그만큼 사실관계보다는 여전히 상상을 즐기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정답이 매겨진 요즘, 상상으로 만든 배지가 여전히 가슴에 달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