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이 쌓은 하루를 늙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어쩌다 어른이 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TV 속에는 해마다 새로운 스타들이 쏟아져 나온다. 에너지가 가득한 그들을 볼 때면 나도 잠시 나이를 잊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학창 시절에는 시간의 움직임이 확실했다. 해마다 친구와 교실이 바뀌었고 새 책도 주어졌기에 흘러가는 시간 위에서 스스로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반복된 일상 속에서 모든 걸 혼자 책임지는 요즘, 세월의 변화를 가늠하기 어렵다. 졸업식과 같은 강력한 맺음과 새로운 시작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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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추억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영화보다 이미 봤던 영화 장면에 더 감동한다. 신곡 대신 어릴 적 들었던 노래를 반복해놓는 일도 잦아졌다. 추억을 즐긴다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스마트폰을 배우는 게 어려운 엄마처럼 내일을 배우려 하지 않는 내가 될까 겁난다. 앞으로 50년은 족히 더 살 텐데 벌써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닌듯하다. 미래는 없고 추억뿐이라면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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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 한 살 먹어가는 나이를 느끼고 인정하는 삶을 살길 원한다. 생명은 오로지 능동성의 활동으로 존재한다는 어떤 시처럼 낡기 전까지 마음 다해 존재의 이유 설명하고 싶다. 스포츠를 통해 선의의 경쟁을 해도 좋고 누군가와의 진실된 대화 속에 빠져들어도 좋다. 주어지는 시간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렇게 후회 없이 쌓은 하루를 늙음으로 받아들인다면 비슷한 삶에 대한 피로감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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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좋아하는 달리기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또한, 재즈 마니아여서 그의 글에는 빈번하게 재즈가 등장한다. 작가의 책을 읽을 때면 나 역시 좋아하는 것과 배움을 꾸준히 접목하며 살아야겠단 다짐을 한다. 내 그릇만큼 채워내고 다시 비워내기를 반복하여 비교되지 않는 식견을 갖추고 싶다. 그렇게 걸맞은 보폭을 걸으며 시간의 세례를 받는다면 추억에 잠식되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