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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마 Dec 17. 2017

엄마와 니트

모성신화를 뒤로 하기로 하다.

심리상담이나 정신분석의 주류 이론 중 하나인 ‘엄마탓이론’은 참으로 아프면서도 달콤하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어린시절 사랑을 받지 못해서고, 내 잘못이 아닌 엄마(아빠) 잘못이야!라고 외칠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된다. 당연히 영향을 받고, 부모탓이기도 하며, 동시에 부모의 역할이기도 하다. 부모는 자식에게 그림자를 물려줌으로써 인생 과제를 부여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엄마탓 이론 뒤에는 모성신화가 숨어 있다. ‘엄마는 절대적으로 사랑해주는 존재’라는 환상은 모든 엄마와 자식을 괴롭힌다. 현자나 고결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극소수이듯이, 절대적이고 포근한 엄마 역시 소수 어쩌면 극소수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포유류의 모성애를 어느 정도 탑재하기에(옥시토신의 영향으로), 대다수가 모성애를 경험한다지만, 섬세한 부분까지 다 사랑으로 감싸 자식 입맛에 맞게 대할 수 있는 엄마는 없다. 모성에 대한 환상은 이 세상에 태어나 ‘분리’되어 살아가는 고독한 존재인 인간이 갖고 있는, 근원적 하나됨의 욕망이 만들어낸 신화일 뿐일지도 모른다. 절대적으로 수용받고 사랑받고픈 ‘욕망’-욕구와 달리 욕망은 채워질 수 없다-을 ‘엄마’에게 투사하는 셈이다. 엄마 스스로도 그 투사에 너무도 익숙해 있어, 자식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쓰게 된다. 불필요한 죄책감은 이 지점에서 생긴다. 애초에 너무도 높은 기준을 설정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여성을 힘들게 하기에,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는 모성신화를 가부장제의 폭압처럼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저 애정결핍으로 마음에 구멍이 난 현대인들의 공통 신화가 아닐까 한다.

엄마의 정서적 역할을 중요하게 다루고 ‘아이의 마음’을 섬세하게 보려고 시도한 것 자체의 역사는 짧다. 수십년 전만해도 대가족이나 마을 단위로 아이를 돌보았고, 애착이나 아이의 정서를 고려해서 엄마가 촉수를 곤두세우는 것이 장려되지도 않았다. 되려 ‘그러면서 크는거지’라며 산으로 들로 마을 놀이터로 아이들을 내보냈다. 요즘의 육아 컨텐츠를 보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엄마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육아를 돕는다며 나오는 것들이 모성신화를 부추기고 있다. 웃는 낯으로 ‘엄마도 사람이니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럴 때는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솔루션을 주는 넘쳐나는 컨텐츠들을 보면 저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어진다.

아무튼, 엄마탓이론에 심취해서 내 문제를 해석하고(정신분석, 대상관계이론), ‘내면아이’를 토닥여주고(대상관계이론) 하다가, <지금 여기>에 집중해서(게슈탈트) 자기완성을 위한 그림자 통합(융)을 시도하고, 내 문제의 원인과 해법은 내게 있음(아들러 자기심리학)을 쳐다보는 등 온갖 것을 거쳐봤다. 에고와 세상만물의 이치를 다루는 영성과 오컬트도 기웃댔다. 이 모든 것들이 조금씩 쌓여 길을 닦아주긴 했겠지만, 정작 가슴을 열고 치유의 길을 열어준 것은 육아였으니 인생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랑을 주는 것이 나를 치유하고 가족을 이해하며 사랑으로 감싸는 지름길이었다.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 사랑을 줄 수 없지 않을까 두려워했었다. 사랑을 주고나니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았던 그들이 ‘괜찮아졌다’. 되려 그들의 소통방식을 이해하게 되었다. 번역기라도 얻은 것 같다. 신기하기만 했다.

이런저런 공부를 해서 극복하겠다고 해온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었지만, 마음 속 벽을 허물어낸 것은 육아였다. 육아를 통해 내 에고의 벽을 더듬어 모양을 볼 수 있었고, 육아를 통해 사랑에 머무르는 기쁨을 알았고, 육아를 통해 여유를 얻어 내게 상처를 준다고 생각했던 이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 에고의 벽은 울퉁불퉁하고 좁고 갑갑했고,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아기는 그 벽에 문을 하나 달아주었고, 나는 운 좋으면 벽을 더듬다가 문고리를 쥐고 문을 열어 조건없는 애정과 이해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어렵기만 했던 언니와 통했고, 엄마를 원망하기 보단 이해했다. 나만 아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이지만 내겐 너무나도 큰 성장이고 변화다. 다시 일터에 나갔더라면,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모성신화에 사로잡혀 ‘워킹맘의 애착 문제를 해결하는 법’ 등을 보며 전전긍긍하느라 위장질환을 달고 살았을게다. 나란 인간은 그랬을게다.

최근에 코바늘 뜨기를 시작했다. 니트는 내게 있어 엄마 그 자체다. 엄마는 니트 없이 설명되지 않는다. 니트는 엄마의 정체성이다. 나는 내가 ‘니트는 취미도 없고 잘 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그 뒷면에는 엄마에 대한 거부가 있었다. 화려한 멋쟁이인 엄마는 따스하고 보살피는 엄마가 아니었다. 나는 패션 등 꾸미기에 관심도 없고, 그런 것에 열중하는 것을 썩 좋게 보지 않았다. 니트도 마찬가지였다. 관심을 갖지도 않았고, 무의식적으로 싫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잔뜩 떠준 옷은 내 취향에도 안 맞았고, 엄마식의 애정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상대방의 마음은 고려치 않고 자기만족적인 행동을 해서 반강제로 쥐어주고 기뻐하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때론  비난하는 관계맺음, 그게 고스란히 녹아 있어, 여섯 박스나 되는 니트를 보면 마음이 늘 착잡했다. 그런 내가 이제 니트를 배운다. 기본기를 배우고 엄마에게 직접 배우려고 한다. 엄마의 반의 반도 못하겠지만,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내게는 ‘엄마를, 엄마의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있다. 혹시라도 내게도 재능이 있어 옷을 자유로이 만들만하게 되면 멋진 일이고. 엄마가 세상을 뜨고 나서도, 엄마를 생각하며 뜨개질을 할 수 있을게다.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내게 박혀 있는 모성신화를 떨쳐낼 것이다. 모든 엄마는 신화 속 여신이 아니고 그냥 범부일 뿐이고, 나 역시 그렇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자식의 과제가 되고, 또 엄마의 과제가 된다. 그렇게 서로 함께 인생을 공부하는 인연이 된다. 내가 모성신화를 접어둘 때 이 공부는 좀 더 깊어질 것이고, 아이도 내가 투사한 무의식의 홍수에서 허우적대며 자기 인생을 낭비하기 보단 자기가 갖고 태어난 달란트를 세상에 펼쳐내는 자유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길이 아니다. 지구별에서 매우 가까운 육체의 인연으로 태어나, 이왕이면 서로 상생하며 도반처럼 살아가는 길이다. 그 길을 담담히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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