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적 투사와 공간적 투사를 멈추기
내 과거의 주관적인 경험이나 기억을 불러와 재생하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 환상을 덧씌워 보는 것.
과거를 현재로 가져온다는 점에서 시간적인 투사라고 할 수 있다.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양 여기게 되는 잘못된 안경을 끼고 상대를 보는 것이기에 상대와 만나지지 않는다. 그 시야 안에는 오로지 자기가 있고, 자기를 투영한 세상만이 있을 뿐이다. 외로워질 수 밖에 없다. 사람과 제대로 만나려면 시간적 투사를 멈춰야한다. 사람의 어떤 행위의 맥락을 알려고 하지 않고 내게 떠오르는 환상 그대로를 진실인양 여기고 멋대로 판단하여 상대에게 ‘네가 그렇다’고 해버리면 곤란하다. 그래서 일단 멈춤, 판단 중지가 필요하다.
내가 이러니까 너도 이렇지? 라는 식의 생각. 너도 나처럼 느낄 것이라는 자기애적 환상.
이 또한 내가 보고픈대로 상대를 보는 것이라 상대와 만나지지 않는다. 애초에 상대의 상태를 관찰하고 어떠한지 살필 마음이 없다. 집안에 있는 개에게 너도 춥지?라며 옷을 입히는 것도 멋대로 투사다. 개에게 털이 있고, 갑갑할 수 있다는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고 그저 너도 나같지? 하며 강요하는 마음만 있다.
비슷한 사건을 겪어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모두 다르다. 공감은 ‘나도 너처럼 느낀다’는 다가감이지만, 투사는 ‘너도 나처럼 느낄거다’는 자기애적 강요다. 내 새끼니 이럴거야, 같은 부모의 착각도 공간적 투사이자 자기애적 강요다.
*‘가슴공명’ 김수현님 강의에서 참고 정리.
프로이트는 개인이 충동적인 본능(id)가 드러나려는 힘과 이를 억압하려는 초자아(superego) 사이의 긴장에서 자아(ego)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으로 방어기제를 사용한다고 보았고, 그 중 투사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스트레스와 불안을 일으키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타인에게 있는 것처럼 전가시킴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동양권에서는 마음-에고의 작용으로 망상을 지어내 세상을 멋대로 보면서, 그러한 줄을 모르는 무지를 살피고 마음을 닦으라 했다. 서구적 관점에선 세상에 대한 개인의 투쟁이지만, 동양의 정신세계에선 수행의 실마리가 된다. 개인을 분석해서 해체하는 서구적 관점으로 인간 마음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일종의 자기합리화를 부추기는 것에 일조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나르시시즘의 시대다. 어딜 가나 세상이 나쁘고 나는 피해자라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정신수양의 관점에서 보면 투사는 ‘내 사정이 가장 딱하니 이렇게 하는거야, 내 방어라고!’같은 유아적인 외침이다. 세상이 어그러지고 혼란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서로에게 자기 어둠을 가열차게 투사해대며 불안에 떨고 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방어기제는 이제 걷어내야할 환상과 미망으로 보고 접근해야할지도 모른다. 고전적인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의 접근이 인간을 얼마나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애초에 자기환상인 것들을 불러와 해부하며 분석하는 것이 본질에 닿는 방법일까? 기껏해야 에고의 모양새를 더듬어 알 수 있을 뿐이다. 중요한건 에고의 이기적인 환상 자체를 멈추는 일이다.
그래서 개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온갖 투사로 서로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똥물 튀기는 일을 그만두기 위해선 ‘일단 스톱!’ 하고 외치며 판단을 중지하고 ‘내게 방금 일어난 생각이 정말 진실인가?’하고 되묻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부분은 진실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