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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영 Jun 10. 2019

간호사

SF 초단편


 
 K는 정신병동의 간호사다. 새 병동으로 온지 한달 남짓이 되었으나,적응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도 그럴것이,이곳은 인간이 아닌 로봇이 있는 병동이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그는 자신을 로봇이라고 믿는 인간들이 모여 있는 병동에서 근무했고, 그들이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비인간화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기가 인간인 줄 아는 로봇이라니. 아니, 애초에 그들이 왜 공학자의 실험실이 아니라 정신병동에 와있는지부터가 의문이었다. 아마도 로봇의 정신병이야말로 자의식의 역설적인 증거라고 여긴 공학자들이 실험 목적으로 만든 특수 병동일 것이다.
 K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 누구보다도 ‘환자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모범 간호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K라도, 국자를 매달고 있는 원추형 요리 로봇이 자기를 제거하려는 아내와 불륜남의 음모로 로봇 안에 갇힌 뮤지션이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대해야할지 난감했다. 그저 그날 분량의 윤활제를 이음새 틈에 묵묵히 발라줄 뿐이었다. 사람에게는 약을 주었지만, 로봇은 윤활제를 바르거나 기본 바이러스 체크를 하는게 다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특별한 로봇은 있었다. 스타워즈의 알투디투같은 친숙한 디자인의 구형 청소로봇 Q가 그것이었다. Q는 다른 로봇과 달랐다. 다른 로봇들이 앵무새처럼 자기가 인간이라며 몇몇 에피소드만 지겹게 반복할 뿐이었다면, Q는 정말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청소로봇이 가질 리 없는 인지 프로그램을 누군가가 해킹해서 심어놓은 것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그것은 공학자가 이미 걸러냈을 터였다. K는 그나마 사람같이 느껴지는 Q와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마음이 편했다. Q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6살 남짓한 여자아이의 홀로그램을 소중하다는 듯이 띄워서 보여주곤 했다. 손녀딸인 ’요나‘라며, 그녀때문에라도 자기는 이곳에서 언제까지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아들은 자기를 늘 못마땅해했고, 재산을 호시탐탐 노리는 존재였다. Q는 아들이 자기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아들이 어느 날 ’의식 트랜스퍼‘ 프로그램의 임상 실험자를 모집한다는 고급 정보를 가져왔다. 그는 정부 고위급 인사였고, Q는 그런 아들의 말을 믿었다. Q는 길어야 2개월의 시한부를 선고받은 상태였고, 장기 교체도 더는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요나를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부작용으로 죽는다해도-그에게는 어차피 그게 부작용이 아니라 정해진 수순이었다-도전해 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그런 기술은 있지도 않았고, Q는 시한부도 아니었다. 그저 의식을 로봇에 옮기려는 시도였지만 99%의 확률로 실패할 것임을 알고 한 짓이었다. K는 Q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아들이란 작자를 욕하곤 했다. 나쁜놈. 아니, 잠깐. 그런 아들이 있을 리가 없잖아. K는 도리질을 했다. 그러나 Q가 그런 자식놈이라도 요나의 아빠이고 자기 새끼라며,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없는 자기가 이곳을 빠져나가 요나 방을 청소하는 로봇으로라도 살면 좋겠다고 할 때는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다. Q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요나를 다시 만나는 것이었고, 그걸 위해서라면 청소로봇의 본래 기능을 수행하며 인간처럼 구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했다. Q는 K에게, 자기가 퇴원하게 되면 폐기 처분되거나 실험실에 가지 않도록 꼭 자기를 청소로봇으로 써달라고 했다. 그리고 요나에게 데려다달라고 했다. K는 Q가 로봇이건 인간이건간에, 진심으로 요나를 만나길 바랬기 때문에 흔쾌히 허락했다. 아니, 어쩌면 내심 Q를 응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Q는 매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오히려 애써서 로봇인 척 하는 것이 보여 번번히 <아직도 인간인 척 하는 오류 상태>라는 라벨을 붙이고 나오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인 Q는 세련되게 연기를 하지 못했고, 주요 오류 스토리인 ‘손녀 이야기’가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로봇다운 반응을 하지 못하고 다채로운 반응을 하거나 추상적인 개념을 늘어놓아 번번히 탈락하고 실험실에 끌려가 회로 점검을 받곤 했다. K는 그럴 때마다 일반 병동에서 진정제를 맞고 독방에 끌려가는 환자를 보는 것처럼 참담한 기분이 되곤 했지만,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곤 했다. 그리고 그런 날은 집에 가서 어김없이 보드카를 들이켰다. Q의 끊임없는, 하지만 매번 미끄러지는 도전이 안타까워 감정이입을 과하게 하다보니 자기도 미쳐가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그가 정말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안타까운 일은 따로 있었다. 바로 담배였다. 애연가였다는 Q는 요나의 사진을 볼 때마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했다. 하지만 청소로봇에 들어간 Q는 담배를 피울 수도, 담배 냄새를 맡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즐겨 피우던 시가를 쳐다보기라도 하고 싶어했다. K는 Q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균형감각을 잃고 치료를 방해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시가 한 개피를 쥐어주고 싶다는 충동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기가 인간인 줄 아는 로봇이 ‘즐겨 피웠다’는 시가를 에러난 세계관 속에 끌고 들어가게 하는 것은 확실히 현명한 처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K는 매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한쪽 벽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 Q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다른 로봇들은 테스트 결과와 상관없이 평소처럼 움직이고, 평소처럼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다녔다. 테스트 결과에 영향을 받아 침울하고 무기력하게 행동하는 로봇은 Q밖에 없었다.
 결국 K는 Q에게 시가를 갖다 주기로 결심했고, 다음날 아침 점검 시간에, Q의 집게 손에 시가를 쥐어주었다. Q는 잠시 머뭇거리듯 동작을 멈추었고, 탄 식을 내뱉으며 ‘이게 얼마만인지!’라고 했다. 그리고 담배를 가져다줘서도 아니고, ‘날 믿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K가 Q에게 담배를 건네는 장면은 병동의 16번 cctv에 포착되었다. cctv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타원형 테이블에 둘러 앉은 그들은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Q가 담배를 받아들 때 작은 탄성을 냈다. 웃으며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정말 굉장하군요. 저런 외형의 로봇에게도 연민을 느끼다니.”
“20년 전 로봇기술까지만 입력해둔 것이 유효했다고 봅니다.”
“이제 K는 정신질환자들에게 한결같은 연민과 공감의 태도로 간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면에선 스트레스로 환자를 막 다루는 간호사보다 낫죠.”
“이 시나리오를 통과한게 저걸로 53번째입니다. 97% 성공률인데, 이 정도면 상용화 가능 수치를 상회하는군요. 아주 훌륭합니다.”
 
방 안에 기쁨이 번졌다. 벽 한 켠에는, K와 똑같은 모습을 한 로봇이 간호사복을 입은 채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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