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 스틸샷에서부터 초췌하게 널부러진 아이들. 이번 편에서도 꽤나 고생하는 모양이구나, 대체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 기대하며 플레이버튼을 눌렀다.
뉴트로를 표방하며 구니스나 ET 감성을 풀풀 풍기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괴물 판타지물-이라고 간단히 적기엔 <기묘한 이야기>가 가진 매력이 너무나 많다. 내 나라가 아님에도 옛 것이기에, 귀에 익던 옛 노래가 흐르기에 끌렸던 레트로풍 분위기, 사랑스럽고 신비로운 초능력 소녀 일레븐, 개성 뚜렷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힘을 합쳐 문제를 헤쳐나가는 모습, TRPG 보드 게임 세트, 사실은 뻔하지만 충분한 긴장과 궁금증을 동시에 자아내는 괴물 데모고르곤, 십대의 덜 여물었기에 진지한 사랑과 우정 등등.
아이들이 괴물을 상대로 영리하게, 하지만 동시에 어설프기에 위태롭게 싸워나가는 모습에 빠져드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그 자체가 '성장'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분명히 가지고 있는 지혜와 기지가 외부의 위기를 맞아 모습을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서로 지지하는 모습이 아이들이 즐겨하던 보드게임 속 영웅들의 여정과 닮아 있다. 우리네 삶에서 영웅적인 면모가 드러나며 성장해나가는 원형적인 힘을 자극한다고 하면 오버일까?압권은 당연히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소녀 엘이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카리스마란!
나는 사건보다도 아이들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런데 나름 충격. 아이들은 자랐고, 시즌1의 낸시, 조나단, 스티브만큼은 아니어도 십대의 연애 초입에 들어서 있었다. 엘과 마이크의 버드 키스와 여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문은 10cm 열어두라고 소리 지르는 호퍼 서장의 딸바보 아빠 노릇에 대폭소하면서도 훌쩍 커버린 아이들에게서 아쉬움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곧 이 놈들 뭐하나 싶은 마음에 문을 열면 저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바라보거나 심드렁해 하는 십대 녀석들이 귀여워졌다. 컸구나. 기특해라.
내 안의 호킨스 꼬맹이들은 마냥 애기같았는데 이렇게 컸나 싶어 아쉽기도 한 엄마 마음이 올라왔다. 사실 호퍼 서장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서 전전긍긍하는 '딸바보 아빠' 호퍼 서장님이 몹시 정겨웠다.
저 대사가 어찌나 웃기던지. 조이스에게 조언을 구하러 온 마이크의 갈팡질팡이 재밌었다. 조이스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대화로 풀라고 하지만, 호퍼는 그저 애지중지하는 엘에게 딱 붙어 있는 마이크가 눈에 거슬릴 뿐이다. (하하하)
아이를 키워본 조이스와 달리, 엘을 통해 첫 십대 아빠를 경험하고 있는 호퍼도 아빠로서 성장하는 중인게다.
지역 신문사의 인턴으로 일하는 낸시와 조나단을 통해, 그 시대의 남녀차별 현실도 보여준다. 낸시는 여자라는 이유로 어떤 의견을 내도 무시 당하고, 그저 커피와 햄버거 배달만 제대로 하면 그만인 여직원으로 취급 받는다. 하지만 낸시는 기묘한 이야기의 괴물의 존재와 관련된 미스테리한 현상에 주목하고 취재하고자 한다. 좌절을 겪으면서도 한계에 도전하는 청년 성장기랄까.
한편 조이스는 어느날 마그네틱 장식물이
철판에서 떨어지는 현상을 발견하고, 자성을 잃게끔 하는 기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심상치 않게 여겨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스물스물, 사건이 일어난다.
섹시한 수영장 구조요원이자 맥스의 '역겨운 오빠' 빌리는 마이크의 엄마(왜 하필;;)를 유혹하고 뭇여자들을 홀려댄다. 하지만 빌리는 호킨스에서 일어날 기이하고 무서운 일을 가장 먼저 겪게 되는 주요 인물이었다. 빌리를 통해 세상에 나오고자 하는 괴물과 호킨스 아이들, 조이스와 호퍼의 싸움이 시작된다.
오로지 마이크만 보고 지내던 엘은, 마이크와 싸워 토라지기도 하고, 또래 여자아이들다운 수다와 쇼핑을 즐기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드라마는 평범한 일상과 미스테리한 현상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며, 서서히 모든 인물이 하나의 사건으로 모이도록 이끈다.
스티브와 로빈, 더스틴 그리고 에리카의 조합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발랑 까진 에리카의 톡 쏘는 일침이 예술이다. 하지만 이들이 맞딱뜨리는 실체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러시아의 비밀 조직이었다. 아이스크림 퍼담다가 이 무슨 봉변인지. 이 친구들 나올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3은 지난 시즌보다 좀 더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마인드 플레이어(괴물)는 엘을없애고 이 세상에 나오려 하고, 피부 벗겨진(?) 초거대한
거미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모두를 공포에 몰아 넣는다. 하지만 옛 시리즈처럼 모두가 힘을 합쳐 난관을 극복한다. 사실 그 스토리라인은 그다지 큰 인상으로 남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캐릭터들의 성장통이 아프게, 그리고 예쁘게 다가왔다.
이전 시즌에도 사랑하는 이를 잃는 슬픔이 등장하긴 했지만, 이번 시즌에서는 더 섬세하게 다룬 것 같다.
아직 유년기의 환타지 세계에서 놀며 친구들과 전처럼 머무르길 바라는 윌이, 이제는 연애로 관심사가 바뀌어 버린 친구들에게 서운해하는 모습은 짠하기까지 했다. 각자의 속도로 저마다의 길에 들어서며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은 그럼에도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윌은 친구들과 괴물에 맞서 싸우면서 다시금 또 다른 방식으로 연결감을 회복한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또 다른 사랑에 마음을 열 수 없었던 조이스와 그런 조이스를 바라보는 호퍼의 썸도 두근두근하며 봤다. 하지만 호퍼는 괴물을 막기 위해 희생하는 것을 택하고, 잔인하게도 조이스는 자기 손으로 그 선택을 현실로 만들어야 했다. 이제 막 마음을 열려고 했는데 너무하다며 눈물을 찔끔 뽑았다. 하지만 마지막 쿠키 영상 속 러시아 감옥에서 슬쩍 흘린 '미국인' 운운에 시즌4에서는 호퍼 구하기가 메인 스토리가 아닐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제발 그래라.
아빠를 잃은 엘은 초능력도 잃었다. 호퍼의 주머니에서 나온 손편지 속 문구가 절절했다. 눈물 또 뽑았다. 거기엔 엘에 대한 염려와 사랑, 아빠다운 솔직한 감상, 성장통을 겪을 딸에게 주는 멋진 격려가 담겨 있었다.
삶은 때론 널 아프게 할거다. 하지만 고통을 느끼는건 좋은거야. 그건 네가 동굴에서 빠져나왔다는 뜻이거든.
초능력을 잃고 '영웅의 하강'을 경험 중인 엘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며 다시 힘을 되찾고 성장해나갈지 기대된다. 내 사심으로는, 러시아 감옥에 갇혀 있는 호퍼를 구하기 위해 초능력 봉인을 해제해서 그 어느 때보다 잘 컨트롤하는 막강한 힘이 뿜어져 나와 데모고르곤을 학살(;)하는 장면이 나오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은 또 배울게다. 성장통은 힘들지만, 그 아픔 끝에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으며, 이 모든걸 가능케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말이다. 괴물의 수하가 된 빌리가 영웅으로 마지막을 맞을 수 있게 된 것이 사랑하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었듯이. 역경을 이겨내는 힘은 늘 사랑이고, 이걸 찾기까지의 과정은 아프고 시리다. 그게 영웅의 여정이고 누구나 겪는 성장 과정인 모양이다.
호킨스 친구들이 부쩍 자라서 돌아온 시즌3, 다음 시즌에서는 동굴에서 빠져나와 서로 껴안고 부둥부둥 팔짝팔짝 뛰는 모습을 보여다오. 아줌마가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