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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영 Feb 18. 2020

힐링이 정말 우리를 바꿀까?

힐링이 흔해진 세상

웰빙이란 단어가 유행하다가 흔해진 것처럼, 힐링이나 치유도 마찬가지 수순을 밟고 있다. 치유가 영어로 힐링이니 무엇이 다르냐 하겠지만, 미묘한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탁 트인 자연 환경이나 귀여운 동물을 보고 '아~ 힐링된다~'라고 할 때의 heal과,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는 heal은 분명 그 뉘앙스가 다르다. 심리치유라는 말에는 보다 내밀한 접근과 전문성이 녹아 있다. 그러나 작금의 이 바닥(?)엔 비전문가가 힐링을 내세워 보다 쉽고 가볍게 치유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즉, 자기를 사랑하라거나 자존감을 높이자는 흔한 메세지로 마치 개인의 내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할 수 있을 것 같이 포장한다는 뜻이다. 유투브 등 각종 미디어 접근성이 낮아졌기에 소비자로서는 혹하기도 쉽다. 그리고 당장 듣기 좋고 '힐링되는 말'을 해주기에 정말 효과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많은 이들이 쉽게 스스로를 보다 편하게 할 수 있다면 나쁠 것이 뭐가 있겠냐마는,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 문제를 알기 위해 상담, 심리치료 등 전문 분야와 보통의 힐링이나 코칭 컨텐츠의 가장 큰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


변화는 외부에서, 치유는 내부에서

이러저러한 가이드를 주거나, 옳고 그름을 알려주는 등 어떤 식으로든 모델이 되는 상을 제시하는 일은 외부의 가치를 주입하는 것이다. 대개의 힐링 컨텐츠가 그렇다. 어떤 신념이나 가치관을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코치가 삶을 이러저러한 식으로 봐야한다고 알려주기도 한다.(세상에나) 그 말이 내 맘에 위로가 되면 상대가 대단해 보이고 답을 줄 것처럼 여긴다. 이는 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외부에 투사하고 기대하는 행위다. 이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청량감과 뿌듯함 등을 느끼며 자기긍정감이 올라가 실제적으로 도움도 된다. 단, 어느 정도 하다보면 신선함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진다. 이러다보면 컨텐츠 A에서 B로, B에서 C로 옮겨가며 컨텐츠 쇼핑을 하게될 수도 있다. 모양새만 다른, 하지만 동어반복인 여러 힐링 컨텐츠를 전전하는 힐링난민이 되는 것이다.


반면 전문적 접근의 치유는 조금 다르다. 치료자와의 관계에서 자기가 가진 문제를 그대로 투사하고 재경험하며 이를 다룰 새로운 방식을 찾아나가는 것이 상담의 핵심인데, 이는 개인의 내적 변화를 요구하는 녹록치 않은 과정이다. 상담의 전문성은 바로 '전이와 역전이를 관계 속에서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는가'에 달려있다. 전이는 내담자가 자기의 문제 패턴을 상담자와의 관계 속에서 재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담자에게 분노하건, 잘 보이려하건, 어떤 식으로든 내담자는 자기가 힘들어하는 부분을 상담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대로 드러내게 마련이다. 이때 상담자는 감정이 얽히며 상담자 개인의 문제까지 드러내는 역전이를 겪을 수 있다. 상담자-내담자 관계가 아니더라도 우리네가 인간 관계 속에서 얽히고 섥히는 것은 죄다 전이 문제다. 아무튼 상담자는 이 전이를 알아차리고 본인의 역전이 또한 해결해가며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의 패턴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강하게 지지하도록 훈련 받는다. 상급 경험자에게 수퍼비전을 받고 괴로워하면ㅂ서도 치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내담자는 자기가 어린 시절 혹은 그 외 상처 받았던 때 세상을 받아들였던 방식, 대응한 패턴 등을 드러내서 이를 <안전>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 안전하게 느낄 때 내담자는 조금씩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를 찾게 된다. 이는  껍질을 깨고 나오는 아기새의 그것에 비유할만한 놀라운 재탄생의 과정이다. 단순히 어떤 괴로움에서 벗어나거나 스스로를 위로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과 다르다. 나 자신의 바닥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사실 몹시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여정을 지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치유가 어렵다. 신화 속 영웅의 여정에는 반드시 '바닥을 치는 시련'이 등장한다. 인간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원형적인 과정을 그리고 있어서 그렇다. 전이를 통해 자기를 마주하고 괴로움을 넘어서는 일은 이 원형적 과정과 맞닿아 있다. 치유는 그렇게 내부에서 일어난다.


가벼움엔 이유가 있다

쉽고 가벼워 부담이 없기에, 우리 마음에 쉼이 필요할 때 힐링을 찾는다. 일상의 스트레스 해소에는 얼마든지 적극 활용할 일이지만, 내면 깊은 곳에 감춰진 내 결핍과 상처를 만나 보듬기에는 미흡하다. 면역력이 약해 감기에 잘 걸리는 사람이 그때그때 약을 먹거나 따스한 옷을 입어 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면역력을 강하게 하려면 생활 습관을 바꾸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할 것이다. 그렇다고 무겁고 심각한게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단, 가볍고 쉬운 길로만 가면 내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는 그때그때 땜질하듯 넘어갈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러니 계속 힐링 자극이 필요하고, 늘 갈증이 생겨 힐링 컨텐츠 쇼핑을 하게 된다. 적당히 활용하되 의존치 않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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