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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마 Dec 13. 2016

임신 중 감정관리와 태교

좋기만 한 태교는 없다

평소의 성향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 감수성이 풍부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임신부이다. 느낀바를 정리해본다.

임신을 하면 감정에 더 날로 노출되어 민감하게 느끼는 상태가 되는 것 같다. 아이의 뇌발달을 위해선 오감 자극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모체가 뭔가를 더 잘 느끼고 경험해서 최대한 투명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태아가 태내에서 경험하는 자극이 뇌를 발달케하니까. 시각 촉각 등은 어떤 태아나 비슷하게 감각하지만 청각이나 미각, 정서적 감각(감정)은 엄마에 따라 매우 다르게 전달될 것이다. 그래서 태교태교 하는거고, 뭔 학습태교니 뭐니 억지로 하는게 안 먹히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엄마의 생각과 감정이 날로 전달되는거지 엄마의 의지나 의도는 태아가 가져가는게 아니다. 그래서 마음가짐이 중요한거고, 맘 편한게 최고의 태교라는 것에 동의한다.

임신하고 느낀건데, 몸은 임신 상태가 되면 태아의 발달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작동한다. 엄마의 에고가 강해서 다이어트니 교육이니에 집착하면 몸도 어그러질지 모르지만 내맡기면 몸은 알아서 태아 위주로 움직인다. 난 별다른 입덧 없이 중간에 밥맛이 없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 체중이 빠져서 지금 5개월인데도 임신 전과 체중이 비슷하다. (하지만 약 2~3키로 증가한걸로 봐야 하더라는) 그래서 애가 안크면 어쩌나 했는데 기우였다. 태아는 자기 필요한걸 쭉쭉 가져다 쓰고 나만 마르고 있었던 것. 몸이 그렇게 배치를 한다. 신기신기.

그래서 이런 감정적 예민함 또한 필요에 의한 것이고, 이 필요는 태아에 집중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그 필요는 오로지 발달과 성장이다. 뇌자극을 위해, 보다 생생한 자극을 위해 엄마의 이성 필터링이 잠시 약해지고 날것의 감정(그래서 보다 원초적이고 유아적이기까지 한 듯)을 느끼게끔 뇌가 작동하는 것이다. 물론 모체의 성향은 어느 정도 작용할거라고 본다.
자기중심적인 이유로 주로 감정이 자극되는 사람은 임신을 해도 그런 이유로 감정이 극대화되지 않을까? 무장해제가 될수록 본성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과자 못 먹어서 감정이 올라온다는 사람은 유아적이고 순수한 면을 평소에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러운 것에 주로 반응한다면 평소에도 서운한 것에 민감하고 어느 정도는 자기애적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감동을 잘 한다면, 사람과 닿기를 속으로 갈망하는 외로운 타입일수도 있다. 겉으로 왁자하게 지낸다고 속이 외롭지 않은건 아니다. 오히려 외롭기에 관계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뭐가 되건 임신 후 내적 변화는 스스로를 관찰할 좋은 기회다. 감정자극이 별로 없이 이성만 쓴다면 좀 딱한 경우같다. 이성만 쓰던 적이 많았던 인간으로서, 그건 절름발이같은 상태라는걸 뼈저리게 안다. 감정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이성을 우겨넣어 자위하는 것이니까. All you need is love~ 는 참말이다.

이왕이면 아이에게 좋은 자극을 주고 싶어서 이쁜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라고 하지만, 난 좀 다르게 생각한다. 감정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자극의 측면에서는 모두가 필요하다. 기쁠 때 이걸 누리고 유지하는 능력, 슬플 때 이걸 소화하는 능력도 내적인 힘이다. 어떤 감정을 겪던 잘 소화하면 되는 것 같다. 물론 비중은 기쁨이 큰 쪽이 더 바람직할게다. 이유는 아이는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안전한 느낌을 먼저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신했을 때는 뭐든 잘 느끼고 소화하는게 최고인 것 같다. 아이에게 전달되는 감각은 원초적인 것이지 복잡한 사고나 지식이 아니다. 그래서 엄마가 수학 문제를 푼다고 애가 수리영역에 자극을 받는게 아니라, 수학문제를 잘 풀어서 기쁘거나, 문제해결 과정 자체를 즐겨서 성취감으로 기쁘거나... 이럴 때 그게 자극으로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엄마가 영어 수학 푼다고 애가 뭐 미리 공부하는 것처럼 생각하는건 어리석다. 심지어 영어 동요 불러주는 태교도 있다는데 엄마가 가장 즐겁고 자신있게 부르는 노래를 하는게 낫다. 본인도 잘 모르면서 어버버하고 널 공부시겠어! 하는 맘(욕심)으로 해봐야 조바심, 불안같은 것만 전달될 뿐이다. 오죽 본인이 자신이 없으면, 혹은 아이 입장은 상관 않고 내 욕구만 중요하면 태아한테까지 미리 공부하고 나오라고 하겠는가. 그 기저엔 불안이 있으니 가장 날 것의 감정인 불안이 전달된다. 아이를 속일 수는 없다. 차라리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순수하게 놀라고 기뻐하고 슬퍼하는게 낫다.

뇌의 시냅스는 일종의 길이다. 더 많이 간 길이 지름길이 되고 큰 길이 되듯이, 자극을 많이 받아서 넓혀진 길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애초에 길이 어디로 주로 나있느냐가 애어른 관계없이 성격을 형성한다. 다양한 길로 가보고 어떤 길로 갔더니 이렇더라 하며 경험에 근거하여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가는게 삶인지도 모른다. 한쪽 길만 고수하는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융은 열등한(모자라다는게 아니라 내가 많이 쓰지 않아 별로 발달치 않은) 성향도 이해하고 계발하여 통합되고 완성된 자기self로 향하기를 권했다. 융학파의 많은 이들이 시낭송, 악기연주 등의 모임을 하고 있는걸로 안다. 평소 잘 쓰지 않는 면을 사용하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도 '좋은 것','옳은 것'이란 프레임 속에서 한쪽 방향의 것만 추구하는 것은 불균형을 낳고, 반대편의 그림자를 키운다. 그러니(본론으로 돌아가서), 임신 중에 감정적으로 불안한 일이 생기더라도 좋은 것만 해야한다고 조바심 내며 또 다른 불안(태교에 안 좋으면 어쩌나)을 만들어내지 말고, 그 상황에 잘 대처하는 것을 통해 맘을 가라앉히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임신 중 몸의 변화, 병원의 과잉진료로 인한 각종 검사가 주는 불안, 삶의 크고 작은 사건들 등으로 인해 열달 내내 평온하기만 할 수는 없는게 현실이다. 이때 태교를 걱정하며 또 불안을 얹어봤자 도움이 될 턱이 없으니, 아이에게 다양한 자극을 주되, 부정적인 감정이라 하더라도 잘 소화하고 마무리 짓는 것 역시 필요한 자극이라 여기는게 좋지 않나 싶다.

뭐, 나는 이 방법을 쓰고 있다. 안 좋은 일도 있고 불안해지는 일도 있지만 괜찮아라고 무조건 최면 걸듯 하거나 외면하는 것보다는 그 경험 전체를 수용하고 소화해서 내 안에서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안정감을 주었기에 주절주절해봤다:)



- 임신했을 때 쓴 글. 지금 읽으니 새록새록하다. 웃었던 것, 울었던 것, 그것을 소화해나가던 과정. 사족처럼 덧붙이자면, <좋은 것만 인위적으로 하려는 것이 아닌 삶의 면면을 잘 소화하는 것이 태교라는 믿음으로 지내고 태어난 아이는 매우 건강하고 순하며 웃음이 많고, 발달이 빠르다>. 이런 코멘트가 있어야 하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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