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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마 Feb 18. 2017

두뇌 육아

행복한 뇌발달을 위해


두뇌+육아 하면 '우리 아이 똑똑하게 키우는 법'을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해석하기도 하고. 하지만 더 중요한 '우리 아이 행복하게 키우는 법'에 더 가깝다.


인간의 두뇌는 체중의 2% 가량의 무게를 지니지만, 사용하는 에너지는 20%나 되는 고기능 장기다. 기본적인 생명활동의 제어는 물론, 감정과 고차원적 사고 활동도 관장하는 컨트롤 타워다. 뇌가 어떤 자극을 받고 어떤 신경회로를 많이 형성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성격 또한 좌우된다. 자주 오가는 숲길로 자연스레 산책로가 생기는 것처럼, 생각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등이 패턴으로 굳어지면 그게 그 사람의 성격이 된다.


영유아기의 뇌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이 시기에는 일단 시냅스를 열심히 만들어서 '여러 길을 내고 보는' 때이다. 그리고 자주 쓰는 길을 잘 정비된 도로로, 덜 쓰는 부위를 소거하거나 작은 오솔길로 정리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 시기의 아이들은 '종잡을 수 없고','다소 산만하고','온갖 것에 참견하다가도 금방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열심히 뇌의 길을 내고 탐색하느라 그러니 어여삐 봐줄만 하다.




뇌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가장 안쪽에 있는 생명활동을 담당하는 후뇌(간뇌, 뇌줄기)는 호흡, 심장박동 등 생존을 책임지는 곳으로, <생명뇌>,<파충류뇌>라는 별칭이 있다.



파충류뇌의 안정


똑똑하게 키우기, 공부 잘 하는 아이 등 어른이 솔깃해하는 부분은 대뇌피질의 영역이고, 이것은 영유아기에 열심히 챙길 것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는 조기교육이니 뭐니 하며 7세 이전의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는데, 사실 그 시기엔 파충류뇌-포유류뇌(변연계)의 안정적인 길 만들기가 더 중요하다.

불안정한 양육환경은 파충류뇌에 영향을 준다. 생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길이 깔리는게다. 그래서 예민하고, 두렵고, 의심하는 성향을 지닌다. 하지만 이것은 살기 위해 터득한 방법이다.
신생아는 양육자의 보살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배고플 때 먹고, 졸릴 때 자고, 불쾌할 때 배변처리가 되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안정감을 찾는다. 이 기본적인 생존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파충류의 뇌는 만성 경계 상태에 돌입하여, 살아남기 위한 긴장 모드를 켠다. 이것은 변연계(감정 반응을 주관하는 포유류뇌)에도 영향을 미쳐, 어떤 일을 마주할 때 행복과 거리가 먼 상태-이를테면 불안-을 더 잘 끄집어내는 뇌가 세팅된다. 영유아기 육아의 9할이 '잘 돌보는 것'인 이유다. (따라서 이 시기에 온갖 비싼 교구나 프로그램은 상술일 뿐 사실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기가 울게 놔두는 수면교육인 퍼버법은 파충류뇌를 잘못 키우는 위험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까놓고 말하자면 양육자 편하자고 하는 것이지 아기를 위한 일은 아니다. 임신했을 때, 유명하다는 수면교육 책을 사서 보다가 반 정도 읽고 말았다. 직관이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많은 엄마들이 '이건 맘 약해서 못하겠다'며 거부감을 표시한다. 그 부분이 과한 죄책감이나 강요된 모성애인양 이야기하지만, 난 감히 그 거부감을 '엄마의 직관'으로 칭하고 싶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내 아기에게 이런 것(불안하고 불편해서 우는데 방치하는 행위)을 하면 안된다고.


수면교육은 밤낮을 구분하는 '리듬'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둡고, 조용하고, 나른해지는 무언가가 있어서 잠을 청하게 되는 일정이 매일 반복되는 것. 그것이 수면교육이다. 정말로 두려워서 우는데 내버려둔다거나, 심지어 방치하고 포기할 때까지 놔두는 것(잠은 혼자 자는거구나-하고 인지하게 된다는 주장은 재앙에 가깝다. 아기 입장에선 그저 너무 무서운데 누구도 도와주지 않아 좌절하다 포기하는 경험이다)은 무지의 소산이다.





포유류뇌의 안정


안정된 환경에서 편안히 자라고 있다면, 다음은 포유류뇌를 보살필 차례다. 이것은 거의 같이 이루어지는데, 파충류뇌가 필요로 하는 생존의 안정감 외에 정서적 안정감이 더해진다.

파충류와 달리 포유류는 새끼를 품어 기르는 존재다. 새끼를 보호하고, 먹이고, 가르친다. 그리고 기본적인 감정이 있다. 먹을 것을 보면 '먹어야해!'하며 흥분하고, 두려움 앞에서 긴장하는 것 정도가 다인 파충류와는 달리, 포유류는 기뻐하고 아끼고 슬퍼하는 등의 감정반응을 할 수 있다. 주인을 보고 반기는 강아지를 생각하면 된다. 즉, 상대와 상호작용을 하며 감정적 교류를 할 수 있다. 이것은 포유류뇌의 대표격인 '변연계'의 작용이다. 감정반응을 관장하는 변연계를 잘 보살피자는 것이 결국 '애착 육아'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감정의 길은 이 변연계에 깔리는데, 대상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것을 통해 '남길 길과 철거할 길'을 정한다. 어린 아이가 엄마를 찾을 때, 웃으며 나타나는 엄마와 냉담한 엄마가 아기의 변연계에 세팅할 길은 극명하게 다르다. 전자는 '세상은 긍정적이다-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면 얻을 수 있다'는 길을, 후자는 '세상은 나에게 힘든 곳이다-울거나 상대가 기뻐할만한 일을 하지 않으면 날 봐주지 않는다'는 길을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느 쪽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될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파충류뇌가 불안정하면 포유류뇌의 도로사업에도 지장이 생긴다. <원하는 것을 표현하면 얻을 수 있어-표 도로>를 깔려고 하는데 자꾸 '아냐, 잠깐만. 그걸로는 안될거야. 난 늘 배고프다고 발악을 해야 겨우 배를 채울 수 있었는데 뭔 소리야'하고 딴지를 건다. 혼자 방치된 채 울다 잠든 경험이 새겨져 있다면, '내가 무서워 울 때도 아무도 날 돕지 않았어'라며 안정적인 길 만들기를 방해한다. 괜히 믿었다가 위험해질 수는 없다. 생존을 위해선 경계, 또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기의 발달 이야기 뿐 아니라, 어른이 자기 성격을 고백할 때 나오는 말처럼 들린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열지 못하겠어요/어릴 때 너무 눈치 보며 자라서 지금도 소심해요-같은 '어른들의' 고백은 불안정하게 세팅된 파충류뇌-포유류뇌의 길로만 다녀온 슬픈 결과다. 그러니 아이를 돌보는 양육자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안정적인 파충류뇌와 포유류뇌를 발달시킬 의무가 있다. 특히나 7세 이전(본격적인 학습을 하기 전의 시기)에는 파충류뇌와 포유류뇌의 도로작업이 활발히 일어나는 시기이기에, 아이가 애정 속에서 안정감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두뇌 보살피기 훈련 중인 엄마


제때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씻기고, 잘 재우는 것.  그것이 기본이다. 기저귀를 잘 갈지 않아 퉁퉁 불게 방치하거나, 배고파 칭얼대는데도 밥을 늦게 주거나, 무섭다고 우는데 수면교육을 한답시고 홀로 두는 것 등은 파충류뇌를 만성 불안 상태로 빠뜨리는 일이다.
많이 안아주고, 눈을 맞추고, 따뜻하게 말을 걸며 한껏 애정을 주는 것이 포유류뇌에 긍정적인 길을 내는 애착육아의 지름길이다. 아기에게 집중하는 때(그것이 짧든 길든 사정에 맞게),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온전히 함께 있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놓고 보면, 어떤 '교육'이나 '훈련'이 필요한 쪽은 아기가 아니라 양육자인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고, 그 속에서도 육아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마치 외계 적응 훈련을 받는 우주인같다. 하지만 그 미션은 한 인간의 행복의 뇌신경회로를 세팅하는, 완수할 가치가 있는 훌륭한 일이리라.


화성에 홀로 남은 상황에서 감자밭까지 일궈내는 유쾌한 조난(?)영화 <마션>이라도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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