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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영 Apr 12. 2017

진정한 관계를 맺고 싶다면

솔직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친구들한테 우울한 이야기를 하면
안 좋아할 것 같아요.

내가 이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고깝게 생각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의 고민 내용이다. 자기는 늘 친구들 앞에서 밝은 모습을 보이고 이야기도 곧잘 들어주는데, 정작 자신은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들 앞에서도 마음의 고민을 터놓지 못해 답답하고 우울하다는 것이었다. 그 원인으로 자기도 모르게 말에 섞여나온 것이 '그들이 안 좋아할 것 같다'였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즐겁게 놀고 난 후에도 마음이 공허하고 외롭다고 했다. 그의 관계는 붕 떠있었다.


"관계에서 상대와 진정으로 닿지 못하면,

인간은 외롭고 공허해진다."


무엇이 이 사람을 상대와 닿지 못하게 했을까? 진정으로 닿는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나에게도 어려운 문제이고 삶에서 해결 중인 과제이지만, 조금씩 극복해온 경험이 있어 나누어 보려고 한다.


진정으로 닿다 |


우선 '진정으로 닿는다'는 것에 대한 환상을 거둘 필요가 있다. 진정한 우정, 진정한 사랑 등 '진정하다'는 단어가 붙으면 우리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팔 걷어부치고 만사를 뒤로 하고 달려오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유아적 소망이 투사된 결과물이다. 물론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관계 이면이 모두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만도 아닌데다, 무엇보다 이런 드라마 속 관계를 이상으로 설정하면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네 일상이 잿빛이 되어버리는 부작용이 있다.


진정으로 닿는다는 것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다. 바로 <솔직함>이다. 솔직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들고 가서 상대에게 내보이고 그에 대한 피드백 또한 충실히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서로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괜찮다'는 경험을 제공하고 또 제공받는 것이 진정한 '닿음'이다.


나도 이 솔직한 교류가 힘들었던 사람이다. 나에게 상대가 인정할만한 무언가, 재밌게 여겨줄 무언가가 있어야 그가 나의 말을 들어줄거라 여겼다. 그건 무의식적인 패턴이라 평소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게 나의 진정한 관계맺음을 막고 있었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나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잘 섞이고 닿는 것도 아니어서, 힘들 때 고민을 털어놓을만한 사람이 없다고 느꼈다.

그걸 어렴풋이 알게된 것은 미술치료를 배울 무렵, 내 스승님이 '게시물에 사진 등을 대개 첨부하는 버릇'을 지나가듯 언급하셨을 때였다. 당시 연구소 게시판에 글을 적으며 키우는 고양이 사진을 몇 번 올린 적이 있는데, 예리한 스승님은 그걸 캐치해서 보고 계셨던 모양이다. 나에게 유별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발동되는 그 분만의 직업병같은 것이었으리라.

볼만하다고 생각되는 것 뒤로 물러나서 나를 봐주길 소망하다.


내가 아닌 흥미로울만한 다른 것, 내가 한 것이어도 '잘 만든 작품 등 결과물, 즉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있어야 나를 봐줄 것 같은 착각이 내게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간접적인 방법은 나에게 안전했다. 설령 반응이 없어도, '내'가 아니라 '다른 것'이 별로였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 거절 당하는 것이 두려워 나를 꾸미고 빗대는 버릇이 무의식 중에 있었던 것이다.


워크샵 시간에 어린 시절의 내면아이를 조소 작업으로 만들었는데, 거기에도 내 문제적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2013년에 작업한 '잃어버린 아이' 의 형상


결론적으로, 이 작업물은 '잃어버린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되려고 애쓰던 아이였다.


광대모자를 쓰고 관객 앞에서 뭔가가 들어 있는 마술상자를 들고 있는 아이, 그렇게 해야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 가치를 증명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딱한 아이가 거기 있었다.


이 아이는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지 못했고, 진정으로 닿지 못했고, 또 외로웠다.


알고 나면 동기와 용기가 생긴다 |


몰랐을 때는 그저 왜 이럴까,로 끝났지만, 무의식적 패턴을 알고 나니 차라리 속이 시원했다. 스스로 딱해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변하겠다'는 의지 또한 생겨났다.

내 현실에서 관계 맺음에 문제가 있다면, 내적 패턴을 살펴보고 핵심을 파악하는 것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미술치료가 가진 힘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나도 모르게, 안전하게 내 내면을 투사하여 꺼낼 수 있다는 점, 그게 강점이자 매력이다. 나는 초등학교 이후로 몇십년 만에 조물대고 만드는 지점토 작업을 즐기기만 했지, 이런 묵직한 주제가 나올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아무튼 내 패턴을 발견하면, 그 다음은 패턴이 그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걸 경험을 통해 직접 확인하면 된다.


당시 나에겐 비교적 안전한 그룹이었던 연구소 동기들에게, 솔직하게 들이대보기로 했다. 우린 치료그룹만큼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서로의 내면을 털어놓고 지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런 연습을 하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나도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 상대의 솔직한 반응에 괜히 없는 이유 만들어 붙이면서 괴로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참으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상당 부분에 있어서 극복하고 변할 수 있었고, 지금의 난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상대의 반응은 그의 몫이지 내가 궁금해하거나 분석해야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만세.


경험해서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 답이다 |


비교적 안전하게 느끼는 상대에게 솔직하게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고,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는 것, 설령 문제가 생기더라도 별 것 아니더라는 것을 확인하면 된다. 그런 작은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관계에 대한 내 두려움을 지워나간다.

그 시작이 어렵다면, 치유나 자기성장 그룹에서 마음을 나누고 안전하게 연습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특별히 문제를 겪고 있는게 아니라면, 일상의 친구들에게 적용해보면 된다. 대단한 것이 아니다. 평소 친구를 배려한단 생각으로 듣기 싫은 이야기를 오래 듣고 있었거나, 원치 않는 메뉴의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다면, '오늘 나 30분 후에 일어나야해, 할 일이 있어. 그때까진 얼마든지 들어줄게!'라고 말하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시켜 먹으면 된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키워나가면 어느새 큰 덩어리-의견, 기분-를 날 것 그대로 내어놓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솔직하다는게 무례하거나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솔직하다는 것을 무기 삼아 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솔직함이 아니라 생각없이 이기적인거다. 솔직함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은 이미 그런 행동을 하지 않고, 대놓고 난 솔직하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할수록 자기중심적일 수 있다.

그러니 괜히 '솔직하다가 상처 주면 어쩌죠'같은 패턴으로 도로 기어 들어가지 말고(웃음), 솔직해져 보면 좋겠다. 그랬더니 아무 일 없었고, 때론 이불 하이킥 하고 싶을만한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 또한 별일 아니더라.


솔직함이 너와 나를 닿게 한다.

솔직하기가 두려운 이들이, 막상 해보니 별것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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