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원영 Jan 19. 2017

우리는 친한 사이인가?

자기개방과 친밀함

우리는 어떨 때 누군가와 '친하다'고 느낄까? 친한 것과 아직 친하지 않은 것의 기준이 있을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고, 정답 또한 없겠지만, 나 역시 이 부분이 궁금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누군가는 '간만에 보더라도 어색함없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친한 사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누군가는 보다 깊은 교류를 염두에 두어, '마음 속에 있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으면' 친한 사이인 것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서로의 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상세하게 알고 있을 때' 친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상대의 어떤 소식(이사간다 등)을 다른 친구를 통해 들으면 서운해한다.


대체 친한 것이 무엇일까? 

친밀감은 지속되는 무언가일까? 관계에서 한 번 친밀해지면, 공백기가 있더라도 다시 만났을 때 마음의 거리를 금방 회복하게 되는걸까?


친밀감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내 모습의 어떤 부분을 보이더라도 상대가 수용할 것이라고 느끼는 것이 개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신뢰의 정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뢰를 가진 이와 있을 때는 편해지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내가 '받아들여진다'는 믿음에서 오는 안정감이다. 그런데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나와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은 더 많이 받아들일 것이고, 좀 다른 사람은 받아들이는 것에 시간이 더 걸리거나, 받아들일 의지가 없을 수도 있다. 옳고 그름이 있는게 아니라, 나와 세상을 보는 방식, 이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유사할수록 친해질 가능성이 높아질 뿐이다.


강아지가 새로운 동료를 만나면 킁킁대며 냄새를 맡듯, 우리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행동이나 표정을 무의식 중에 관찰하고, 말을 섞어 보면서 킁킁- 탐색을 한다. 그 과정은 조심스럽다. 어떤 말을 던져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해서 '이런 부분은 통하는군'하고 학습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자신의 이야기를 오픈하는 자기개방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더 친해지거나, 혹은 어색해지기도 한다.


자기개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연구소 수업에서 들은 내용인데,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다가, 생각할 거리가 있어 옮겨본다.


1. 수직적 개방

- 점점 깊은 것을 드러낸다.
- 나의 외면적인 것에서부터 생각, 의견 등 주관적인 것으로 옮겨가며 점점 깊이 있는 것들을 드러낸다.

2. 수평적 개방

- 깊이 있게 파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현장에서의 감정과 반응을 솔직하게 교류하는 것을 의미한다.
- 일상에서의 솔직함은 수평적 개방을 통해 드러난다.



두가지 모두 적절히 이루어지는 것이 균형잡힌 관계를 위해 필요한 것이겠지만, 관계맺기와 유지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자기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어떤 경우에 '친하다'라고 생각하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얼마전 아이 셋과 야외에 나간 적이 있었다. 미술치료 회기였는데, 자유로이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을 관찰할 겸, 재미있게 놀 겸 돗자리를 들고 공원으로 나갔었다. 그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한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을 유심히 들었다. 8살 아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도 친한 사람 있어요. ㅇㅇ 언니랑 친해요. 언니가 저한테 뭐도 줬어요~"

아이들이 서로 친해질 때 쓰는 방법은 [물건-특히 자기가 아끼는 것-을 주기]이다. 처음 본 아이들끼리도 과자를 주거나, 장난감을 나눠주거나 하는 식으로 손을 내밀고, 그걸 받고 나면 둘은 [친한 사이]가 된다. 아마도 발달 과정에서 '내 욕구만을 위해 움직이는 시기에서 상대와 교류하는 사회성을 배우는 시기'가 오면, 내 욕구를 잠시 누르고 타인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이 상징적으로 큰 의미를 갖기에 이를 통해 '친밀감'이 싹트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물건 하나 줬다고 친해지다니. 참 단순한 세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이 제3자(절대적으로 나만을 위하는 부모를 벗어난 동등한 존재)와 교류하는 시작이다. 발달 단계의 인간은, 그렇게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민다.



성인이 되어도 친밀해지는 방법을 몰라, '무언가를 주고 받는 것'을 통해 친밀감을 확인하고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쏠게!'라며 돈을 쓰거나, 애인에게 선물공세를 하거나, 혹은 받아야 '우리는 괜찮은 관계야'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초기 단계의 미성숙한 관계 맺기 방식을 쓰고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친한 것은 비밀의 공유 형태로 나타난다. 서로 얼마나 비밀을 알고 있는지가 친밀함의 척도가 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친구끼리 얼마나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지가 중요해서, 더욱 어울려다니고, 단짝친구에 집착하게 된다.
초등학교 3학년때의 일이 기억난다.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여자애는 '너랑은 친하지 않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내 앞에서 다른 아이에게 귓속말을 하며 기분 나쁘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었다.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귀찮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끼리만' 통하는 말을 하는 것으로 친밀감을 확인하거나, 누군가의 뒷담화를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친하다고 여기는 시기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어떤 여자애는, 이간질을 한 후에 사과한답시고 나에게 보낸 편지에 '이제 난 ㅇㅇ(이간질한 대상)이랑 안 친해. 나한테 걔 욕 해도 돼'라고 썼었다. 손 내미는 방식이, 더 어릴 때의 그것과 다르다.


내 욕구를 뒤로 하고 물건으로 나타난 '양보된 욕구'를 주고 받는 것의 다음 단계는, 편먹기인 셈이다. 역시, 성인이 되어서도 내 편과 네 편을 나누고 뒷담화를 통해 친밀감을 확인하는 이들은, 저 단계에서 별로 발전하지 못한 경우일지도 모른다.   


수직적 개방은, 위에서 언급한 관계맺기 방식과 연관이 있다. 점점 깊은 이야기를 해야하고, 비밀을 드러내서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수직적 개방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대가 형성되면 친밀감이 확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거래와도 같다. 내가 비밀 하나를 내놓으면 상대 역시 내놓아야 한다는 무언의 룰이 존재한다. 이 방식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럽고 안전치 못한 것으로 느껴진다.

치료사들이 잘 하는 실수 중 하나도 수직적 개방, 오픈에 대한 강박적 집착이다. 뭔가를 꺼내야 하고, 오픈하고,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하게 만들어야 '치료가 잘 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부가 아니고, 반절일 뿐이다. 관계에 있어서도 깊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시작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짜 신뢰를 담보하진 못한다.


수평적 개방은, 지금 여기- 현장에 있어서 얼마나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레 드러내고 교류하느냐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드러내야 하는 어떤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맞닿아 있는 지금,여기의 면면에서의 생동감을 더욱 강조한다. 그 시간을 충실하게 받아들이고, 상대에게 최대한 진실하게 반응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나의 관계 맺기는, 어떤 것에 치우쳐져 있는가? 둘을 적절히 잘 쓰고 있는가? 나의 관계를 보다 풍요롭고 진실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까:-)

이전 16화 진정한 소통을 위한 움벨트 이해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