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공감이 뭘까?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공감능력이란 어떤 것일까?
국어사전에 나온 '공감'은 [남의 감정, 주장 따위에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다. 말 그대로라면 어폐가 있다. 나도 그렇다고 정말로 '느껴야'한다면 말이다. 넘어진 아이가 우앙하고 운다, 아프고 무섭다. 우리는 그 아이가 아프고 무섭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공감해주며 우쭈쭈 아팠어~?라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 느낌을 그대로 느껴서 아프고 무서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즉, 공감은 상대의 감정과 완벽히 일치하는 싱크로 상태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우린 그 누구와도 똑같이 생각하고 느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분리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의 차원으로 가면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곤 하지만, 일상에서는 철저히 분리감을 느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공감은, '완벽히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초감각을 발달시킨 사람이거나, 과대망상일 것이다.
흔히 '나는 공감을 잘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1.상대방이 실컷 말할 수 있도록 잘 들어주고 적절히 추임새를 넣으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준다. 2.상대방의 편을 들어주고 마치 내 일인양 같이 욕도 하고 울어주기도 한다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게 정말 공감일까? 진짜로 상대가 느끼는만큼 나도 느끼기 때문에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날까?
말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상대가 내가 이야기하는 것에 맞장구치고 심지어 편을 들어주니, 공감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사실 상대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걸로 좋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공감'은 옆집 아줌마와 수다 떠는 것처럼 '어머어머, 그랬어? 그랬겠네.. 세상에~ 그런 나쁜!' 같은 것이 아니다. 그건 상대가 듣길 원하는 말을 해주고, 딱 봐도 해주길 바라는 것 같은 말과 행동을 돌려주는, [리액션이 좋은] 경우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친구 간의 편드는 리액션을 잘한다는 이유로 공감을 잘하니 상담에 자질이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리액션을 하는 것과, 공감을 하는 것은 다르다. 네!라고 잘 대답하는 것과, 실제로 타인의 말에 마음으로 수긍하고 인정하는 것이 다른만큼이나 다르다.
좋게 좋게 이야기하고, 잘 듣고, 또 좋은 말로 부드럽게 대해주며 상대에게 무한 긍정을 돌려주는 것이 공감을 잘 하는 것인지, 나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다. 오히려 성의없고 쉽게 들린다. 공감은 에너지를 쓰는 것이고,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라고 여긴다. 무조건 오냐오냐하며 리액션 해주는 것(영혼없이도 할 수 있는 것)이 공감이라면, 이 세상에 왜 공감이 부족하고, 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 격하게 표출된 것을 정치적 시위로만 보는 이들이 있겠는가. 공감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진짜 공감은 행간 읽기를 통해서 나온다. 누군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것은 100%의 진실을 담고 있는게 아니다.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내면의 이유로 인해 특정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데, 최대한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 말과 행동을 생각해보고 반응할 때 공감이 일어난다. 그 공감은 꼭 상대가 '원하는 반응'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하지만 그 마음을 읽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이해받은 기분이 들고 안심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A는 남자친구에게 집착을 하는 여성이다. 남자친구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아야 하고, 단 5분이라도 카톡 등 메신저에서 반응이 없으면 화를 낸다. 남자친구에게 약속이 생기면 자신과 만나지 않고 다른 이와 만나는 것을 서운해하며 혼자 우울해한다. 자기도 그런 자기 모습이 싫지만, 어쩔 수가 없이 그때그때 화가 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남자친구가 자기와 만나지 않고 회식에 갔다고 화를 내고 있는 A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공감이 정말 '상대가 원하는 리액션을 해 주는 것'이라면, 아마도 A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하는게 '공감하는 것'일게다.
'당연히 열받지! 어떻게 너없이 다른 사람을 만난다냐? 여자친구가 원하면 이리로 와야지, 무슨 회식이야! 야야 연락하지마! 걔가 잘못한거 맞아!'
A가 다소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위와 같은 말이 잘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아마도 '서운하긴 하겠지만, 어떻게 또 그 친구가 너랑만 만나겠어.. 자기 생활도 있고 한데.. 조금 이해해주는건 어때?'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을까? 서운하긴 하겠지만..이라는 말은 정말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서운할만 해서 붙인 말일까, 아니면 상대 눈치를 보느라 붙인 말일까? 이 말을 하는 사람의 속내엔 '이걸로 서운해하다니 얘가 문제네'라는 생각이 깔려 있을게다. 사실 이런 것은 공감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세련되고 안전한 커뮤니케이션, 즉 사교의 영역이다.
A의 심정이 되겠다고 맘 먹는다면, 가장 먼저 궁금해지는 것은 '왜 이렇게 남자친구가 자신과만 있어야 한다고 여길까?'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A를 이해할 수가 없다. A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자기만을 봐주지 않으면 불안을 느낀다.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시간을 다 차지하고 싶다.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은, 상대에게서 내 존재감이 흐려지는 것과도 같이 여겨진다. 그만큼 중차대한 일이다. 비이성적인 이같은 논리 뒤에 숨어 있는 사고와 감정이 뭘까? 상황과 말, 행동의 사이사이, 그리고 그 이면에 들어 있는 것들을 읽어내는 [행간 읽기]는 공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A는 어려서부터 모두가 자기만을 떠받들어주듯 모든 욕구를 채워주는 환경에서 자랐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있어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남자친구'는 그야말로 세상살이에 있어서 대충격이자 재앙이다. (하지만 그녀가 배워야 하는 세상의 당연한 진실이다. 그녀는 제대로 사회화되지 못했다) 또는 A는 자신을 버리고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협박하는 나쁜 양육태도를 가진 엄마의 손에서 자라서 늘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또는 예전에 많이 사랑했던 남자가 자기와 잠시 떨어진 사이에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기에, 트라우마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눈 앞에서 확인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건, 그녀만의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그 스토리로 인해 생긴 일종의 사고패턴이 옳은지 그른지의 여부는 일단 제끼고라도, 그 스토리 속에서 살고 있는 그녀의 입장이 된다면, '얼마나 이 상황이 재앙으로 여겨질지','얼마나 두렵고 불안할지'라는 측면에서 공감해줄 수 있다. 단편적으로 그녀가 겉으로 드러낸 감정인 '남자친구가 옆에 없어서 화난다!'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본질적으로 느끼고 있을 감정을 읽어줄 수 있다. 나쁜 양육태도를 가진 엄마에게서 버려질 것 같은 불안감을 경험했고, 이것이 자신의 패턴이 되어 현재의 남자친구에게 집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면,
'남자친구가 눈 앞에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 사실 너도 그가 사라지거나 너를 버리지 않을거란걸 알잖아. 그래도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드는거지? 그게 정말 맞는걸까?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것부터 생각해보자. 그럼 도움이 될거야.'
라는 식으로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A가 원하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불안'을 키워드로 제대로 읽어주고 괜찮다, 이해한다,의 접근이 된다면 A의 활화산같은 겉보기 감정인 분노가 수그러들 가능성은 클 것이라 생각한다.
조악한 예를 들긴 하였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피상적인 리액션을 잘 하는 것이 공감인게 아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이는 것들을 최대한 보는 것이 공감의 시작이다. 그러려면 행간을 읽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수다나 맞장구의 수준에서 할 수 있는게 아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우쭈쭈 리액션' 수준의 공감만으로도 위로를 받곤 한다. 그마저도 받지 못해 속앓이하는 경우도 많다. 행간을 읽어내는 것은 훈련이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행간을 읽지는 못하더라도, 사람을 대할 때 '왜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행동할까? 그만한 이유가 있을텐데..'라고 생각해주는 것만으로도 나비효과처럼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공감이 필요한, 행간을 읽어주기가, 사람의 마음을 읽어주기가 절실한 시절에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