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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마 Oct 26. 2017

나는 너를 통해 내 가치를 느낀다

자기대상 - 하인즈 코헛

타인이 "자기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유지하고, 긍정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심리내적으로 경험될 때, 이 사람은 자기대상이 된다"
Wolf,1985,p271. 하인즈 코헛


자기대상은 자기도 아니고 대상도 아니다. 자기대상은 하나의 관계가 수행하는 어떤 기능의 주관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대상 전이는 물질 남용에서처럼, 진정한 자가 복구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취약한 개인이, 아동기에 시작되었지만 완성되지 못한 어떤 과정을 끝마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코헛에 의하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완성하려는 희망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하게 폴 오른슈타인도, 치료적 틀과 치료 동맹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자기는 자기 자체를 완성하는 데 적절한 환경을 항상 찾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 <애착장애로서의 중독>, 중독: 실패할 운명인 자가복구 시도, p97~98, 필립 플로레스, NUM


자기대상은, 하인즈 코헛의 '자기심리학'의 핵심 개념이다. 코헛은 자기대상이 아기-엄마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였다. 아기는 엄마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보호 받으며 세상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배가 고파서 좀 칭얼대면 어느새 입에 음식이 들어오고, 대소변을 보고 축축하고 불쾌하면 어느새 또 누군가 깨끗이 씻겨준다 . 그야말로 원하는대로 마법같이 다 이루어지는, '살만한' 세상이다. 아기가 커감에 따라, 조금씩 자신의 욕구 해결이 지연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또한 개인의 성장 발달에 필요한 과정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악하면 떡하니 해결해주지 않고, 참고 기다리거나 원하는 바를 잘 표현해야하는 시기가 온다. 혹은, 특정 욕구는 어떠한 이유로건 참거나 버려야한다는 좌절도 배워야한다.

이같은 과정에서 적절한 지지를 받지 못하거나, 적당한 좌절을 경험하며 자기와 대상간의 욕구를 조율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경우,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 아기때처럼 절대적 지지를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상태로, 원시적인 속성(모든 것이 내 맘에 쏙 들게끔 알아서 이루어지는, 엄마-아기의 관계에서의 속성)을 가진 자기대상을 계속 체험하려는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강한 분노와 배신감을 표출한다. 그는 타인이 엄마처럼 지지해주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일반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이에게는, 타인의 '일반적인 행동'조차 상처로 느껴진다.
 건강한 자아는, 절대적 지지를 갈망한다 하더라도,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적절한 방식으로 외부의 사람이나 환경과 교류하며 자신의 욕구를 조절할 수 있다. 자기심리학에서는 한 개인이 원시적인 자기대상에서 벗어나, 점차 성숙하고 적절한 자기대상을 갖춰가는 것이, 성장이자 성숙이라고 보았다.


보통 사람의 자기대상은, 어릴 때엔 부모, 청소년기엔 주로 친구, 성인이 되면 애인이나 배우자, 자식 등으로 대체된다. 꼭 사람일 필요는 없고, 이념이나 활동일 수도 있다고 한다. 특정 대상을 통해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고 사랑 받을 가치가 있다'고 느끼거나 증명된다 여긴다면, 그 대상이 사람이건 사물이건 곧 자기대상이 된다.

사랑에 빠지는 경우, 애인은 거의 대부분 서로에게 자기대상이다. 상대를 찬미하고, 아끼고, 떠받들며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사랑의 초기 단계는, 그래서 달콤하다. 사랑에 빠진 연인은 서로에게서 어린 시절 느꼈던 절대적 지지를 재경험한다. 남 앞에선 하지 않는 애교도 부리고, 다소 무리한 요구가 담긴 어리광을 부리기도 한다. 이 모습은 어릴때 응석 부리는 것과 닮아있다. 그래서 정말 가까운 사이에게만 보여주는 애같은 모습이란게 존재한다. 상대를 자기대상으로 삼아 정서적 안전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다. 남편이나 아내, 애인,친구 등 자기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떠오르는가?

자기대상은 심적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인간에게 늘 필요하다. 사랑과 지지를 보내는 사람을 통해, 우린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며 '이 세상은 살만하다'는 긍정감을 가진다. 자기가 가치있다 여기는 일을 통해서도 마찬가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실존적 차원에서도, 이런 느낌은 중요하다.

그런데 자기대상이 곧 나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가깝게 느껴지기에 내 일부처럼 느끼고 내 맘같이 움직이리라 기대하기가 쉬운데, 이것이 관계에 있어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콩깍지가 벗겨지는 시기에 커플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완벽한 내 자기대상인 줄 알았던 그(그녀)가 낯선 타인처럼 보인다'는 정서적 거리이다.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이걸 문제시하면서 변했다느니 속았다느니 하는 말들이 튀어나온다. 엄밀히 말하면, 그게 본모습이고 콩깍지가 씌인 기간 동안 경험한 것이 일종의 도핑 상태인 셈인데 말이다.

연애 초기나 신혼 때의 친밀함을 유지하면서 서로를 자기대상으로 삼은 남녀가 있다고 하자. 그들은 처음에는 상대가 나만을 위해 존재하기라도 하듯 딱 맞는 천생연분처럼 느껴지는 것에 황홀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는, 마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그 옛날 시절의 엄마를 되찾은 것과도 같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분리된 타인이다. 시간이 지나 각자의 욕구에 다시 눈을 돌리게 되면 서로에게 서운한 것이 드러난다. 어릴때와는 다른 형태의, 성숙한 자기대상이 필요할 때다. 그래도 무의식적인 바램은 남아있어, 상대에게 자꾸 뭔가를 바라게 된다. 성숙한 관계를 위해서는 이 자기대상의 본질이 엄마 찾는 아이같은 마음을 투사한 것임을 알고 적절히 타협할 필요가 있다. 물론 때로 응석받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친밀한 관계만이 줄 수 있는 묘미이자 축복이겠지만 말이다.

일중독자에게 일이나 일로 인한 부산물(바쁜 자신의 이미지나 돈, 지위 등)이 자기대상일 수 있다. 일을 통해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을 갖고 특정활동을 하는 경우엔, 그 이념에 헌신하는 나 자체로도 자기긍정감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받는 '넌 정말 중요한 존재야'라는 메세지와도 같다. 관계에서 직접적 애정과 관심을 받느냐, 일이나 활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란 존재가 괜찮다는 피드백을 받느냐의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이렇게 본다면,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비추어 확인하게 되는 모든 것을 자기대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대상으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은 자존감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나의 자기대상은 누구, 혹은 무엇일까?
•그 자기대상과 나의 관계는 어떠한가?
•나는 자기대상을 통해 어떤 느낌을 받고 있는가?
•자기대상이 부정적으로 다가올 때는, 나는 어떤 방식을 취해 그 상황을 헤쳐나가고자 하는가?
•그 자기대상이 사라진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다른 자기대상을 찾아나서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은 자신에 대해 보다 깊이 알아나가는 것에 큰 화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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