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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영 Apr 24. 2017

생각이 많은 결정장애라면

고민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예측하려는 버릇 | 나는 실수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는 신중함 또는 조심스러움을 넘어선 '시나리오 쓰는 버릇'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일부 남아 있다. 어떤 버릇이냐하면, 어떤 사건이나 상대방의 반응을 직접 겪기 전에 내가 가진 알량하기 그지없는 사전 지식이나 인상 등을 풀가동해 '이러이러할지도 모른다'며 경우의 수를 짜보는, 꽤 피곤한 녀석이다. 그러다보면 생각이 새끼를 치고 가지를 쳐서 내 발목을 잡고, 나는 사흘이면 결정할 일을 열흘이고 두 달이고를 질질 끌고 가버리기 일쑤다. 주로 중요한 일, 갈등이 많은 선택의 문제 등을 놓고 그런 성향이 도드라지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미리 예측하고 걱정하느라 제자리 걸음하며 결정을 뒤로 미룬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이 많아져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면 난감하기 그지없다. 머리 속으론 이미 문제의 장단점도 알고, 분석을 끝냈는데 도무지 선택을 못하겠는게다. 변수 위에 변수 있고, 변수 옆에 또 변수가 있다. (심해지면 편집증이나 강박증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태 뒤에는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 즉,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다. 두려움이 미래를 자꾸만 내 통제 범위 안에 두어 확인하고 싶게 하고, 시뮬레이션을 해서 최대한 예측하고 싶게 만든다. 부질없다는걸 알지만, 그래도-하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제 소심함은 자존감이 낮아서인가요? 

흔히 저런 상태에 가볍게 '결정장애','소심함'등의 딱지를 붙이고, 자기의 소심함은 자기확신이나 자기사랑의 부족,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믿고 가라고 한다. 실패해도 괜찮다며, 그래도 여전히 난 멋지고 소중하다고 한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실패해도 괜찮다기 보단, 실패했을 때 좌절하기보다 극복할 방법을 찾아 일어서는게 더 현명하니까 그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실패하면 누구나 쓰리다. 괜찮을리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냐 이 xx야, 아프면 환자다!하는 우스개 소리처럼, 실패해도 괜찮아!가 아니라 실패했으면 얼른 회복하는게 내 심신건강에 좋으니 잘 추스리는 것이다.

그러니, 실패는 쓰린 것이고, 충분히 두려워할만 하다. 그래서 고심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런 시간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낮은 자존감까지 무슨 병명처럼 턱하니 얹어서 이중고를 지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에게는, 그리고 너에게는, 그만큼 중요하기에 그 무게만큼 고민이 클 뿐이다.


매순간 현명한 선택을 하겠다고 다짐하다

'신중하게' 생각하느라 고민인 이들에게(나 포함), 이렇게 말하고 싶다. 충분히 고민할만큼 하라. 그것이 내게 의미가 있다면, 마치 '의식'을 치루듯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괜찮다. 당신은 선택을 신중하게 하여 삶의 면면을 성실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채우고 싶어하는 건실하고 단단한 힘을 갖고 있다. 쉽게, 즉흥적으로 정해버리지 않는 무게감과, 결과에 대해 책임지려는 마음 또한 갖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효율을 추구하기에 더 좋은 선택을 면밀히 검토한다.


단, 시나리오를 머리 속에서 돌리는 시간이 길어져,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가 된다면, 당신의 주특기-효율을 생각하는 신중함-를 그 문제에서 <나의 현재>에 적용해보라.


나는 지금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나?


나는 그 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쓰며 여러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걱정하느라, 현재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닥쳐야 확인할 수 있는 문제>를 '나중 일'로 취급하지 않고 지금 자꾸 답을 내려고 애쓰진 않는가? 내가 구글 빅데이터를 다루는 AI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내 머리 속 시뮬레이션은 조악하여 정확성 높은 답은 나올 수 없다. 내가 그 문제에 매달리는 것은 효율적인가?


많은 검토와 고민을 하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정확한 예측과 효율적인 것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그 고민때문에 현재를 매우 비효율적으로 쓰고 있다. 잠시 눈을 돌려 내 현재를 효율적으로 바라보겠다는 다짐을 하면,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은 상자가 생긴다.


<부딪혀보고 확인할 일>상자

지금 고심할 것이 아닌, 부딪혀봐야 알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맘 속 상자에 담아본다. 내가 A를 택하면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고, 이런 경우엔 어째야하고 저럴 땐 또 이런 대비를 해야하며..로 나가는 시나리오는 네버엔딩스토리인데다 변수가 하나라도 생기면 모두 어그러진다.

부딪혀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은 과감히 미룬다.


이것은 심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현재의 일과 미래의 일을 구분함으로써 미래가 현재를 잠식하지 않도록 분리하는 효과가 있다. 게슈탈트 심리치료에서 지금-여기를 강조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 미래의 일에 대한 나의 심리적 반응은 기대 아니면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미래의 사건이 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내 과거 경험으로 인한 무의식적 패턴이 미래의 그 일에서도 일어날거라고 여기기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미래를 고려하되 각자의 과거의 창으로 그 문제를 보기에 '지금-여기'에 온전히 있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치료법에 그런 기법이 있겠는가. (지금-여기의 신체감각에 집중하는 것)


마음 속에 상자 하나를 마련해서 부딪혀서 확인할 일!이라는 라벨을 붙이면 한결 가벼워진다. 어쩌고 저쩌고 떠오르는 말이 많겠지만, 문자 그대로, 닥쳐보기 전엔 모른다. 그리고 그건 진실이고 진리다.


생각만큼 그렇지 않다는 경험

부딪혀보고 확인할 일 상자를 마련해서 몇몇 상황을 넣어뒀다 해도,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며 한두개 꺼내보고 싶은 충동이 일 것이다. 두려움은 상황을 회피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유형의 사람에게는 자꾸 파보고 고민하고 싶게 하기도 한다. 고민이 많은 유형의 사람은 이 상자 속 문제를 분석해서 정리하거나 대비하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본질적으로 이런 성향 안에는 위에서 이야기한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작용한다. 그런데 대전제가, 내가 잘 대비하지 않으면 실패할지도 모른다 혹은 실패하지 않으려면 요목조목 잘 따져야한다 이다. 언뜻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고 어느 정도 통용되는 상식이긴 하지만, 인과관계가 확실한 것(시험공부를 해야 성적을 잘 받는다 처럼)이 아닌 종류의 일(인간관계, 복잡한 변수가 작용하는 일 등)인 경우엔 들어맞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이런 경우에 필요한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는 용기다. 부대껴보면 내가 설정한 변수나 내 머리 속 공식이 별로 맞지도 않는데다, 생각만큼 두려운 일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딪혀서 확인할 일 상자는, 용기를 내야할 상자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직접 용기를 내서 해보면, 정말 별 것 아닐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자기합리화에 능해서, 그 상황에 들어서면 정말로 별 것 아니게 된다. 옳고 그름은 없고, 내 선택과 적응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길 때 비로소 나다운 삶이 펼쳐진다. 그것은 효율적인 것 이상의 가치이자 삶을 누리는 행복으로 연결될 수 있다.


내가 생각도 고민도 많은 타입이라면, '부딪혀서 확인할 일','그때 되어봐야 아는 일'의 상자를 마련해서 상황을 잘 분류하길 권한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그 상자 속 상황을 꺼내 하나씩 경험하면 어느새 내 '작은 도전과 성취의 경험'이 쌓여 두려움을 줄이고 현재를 충분히 누릴 자원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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