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마 Jul 04. 2017

불씨를 틔워내는 힘

치료사 안의 아프로디테

내 안의 여신/남신을 찾는 작업을 할 때, 원형의 여신 중 하나로 나오는 아프로디테는 미와 사랑의 여신이다. 올림푸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인 그녀는, 가장 못생긴 신인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한다. (물론 사랑이 넘쳐 아레스 등등과 바람을 피지만)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와 헤라의 자식인데(혹은 헤라가 혼자 만들었다고도 함), 못생겨서 헤라가 미워하고 버렸다고 한다. 절름발이에 못난 그에겐 뛰어난 기술이 있어 건물, 무기 등을 훌륭하게 만들어내는 최고의 대장장이였다. 그런 그와 세상이 찬미하는 아프로디테의 조합이라니, 언뜻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점으로 인해, 아프로디테의 원형적 특성엔 단순히 사랑과 미를 좇는 쾌락주의적인 면 외에도 작은 불씨(가능성)를 보고 애정을 쏟아 예술로 승화해내는 힘이 추가된다. 아프로디테는 헤파이스토스의 단점(버림받은 추한 존재-그것도 친모로부터!)을 뒤로 하고 그의 뛰어난 재능에 주목하여 그를 반려로 삼는다. 기술(헤파이스토스의 재능)과 아름다움(아프로디테 원형)의 조합은 '예술'이며,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 작은 불씨를 발견하고 공들여 틔워낼 수 있는 힘은 '봐주기(관심)'와 '사랑'이다. 그래서 치료사는 자기 안의 아프로디테 측면을 불러내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온갖 상처를 끌어안고 온 내담자에게서, 이 상황을 극복하고 스스로 예술로 승화해낼 수 있을 단초가 될 불씨를 발견해내서 거기에 애정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러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자원이 분명 있음에도, 트라우마 경험에 압도되어 이를 찾아내고 활용할 수 없게 된 이에게 그 자원을 스스로 찾도록 도우려면, 절망적으로 보이는 내담자의 내면에서 희망의 작은 불씨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에 따라 그 자원의 성격과 형태는 다르겠지만, 분명히 있다는 믿음으로 탐색해 나가면 찾을 수 있다. 헤파이스토스의 빛나는 점을 본 아프로디테처럼 말이다. 그랬을 때 비로소 헤파이스토스는 '버림 받은 추한 자식'에서 '뛰어난 대장장이'로 재탄생할 수 있다. 헤파이스토스를 '추한 아이'로 규정한 것이 어머니 헤라였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머니의 '사랑없음'으로 상처를 받는지.

몇 없는 경험이긴 하지만, 작게 빛나는 단초를 발견하고, 상대가 이에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내는 모습을 볼 때, 참 감동적이다. 잘 안 풀리는 것 같다가도 작은 단서로 힌트를 얻으면,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찾은 것 같이 훅 기뻐진다. 근데 이게 내 힘으로, 내가 뭘 잘해서 찾는게 아니라, 상대와의 공명으로, 상대가 보여줘서 내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그게 인연인 것 같고.

정말 별것 아닌, 그냥 에피소드로 지나칠 법한 이야기 속에서 자원을 발견하는 것, 그 공명이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 오늘. 토요일이 기다려진다는 말에 또 힘이 난 오늘. 그래도 내 부족함이 눈에 보여 또 이런저런 다짐하게 되는 오늘.



- 어느날 내담자를 만나고 온 날의 일기.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를 보는 조금 색다른 관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