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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마 Aug 06. 2017

지켜보는 울음 달래는 울음

아이가 울 때마다 되새기는 것

울음은 아기가 원하는 바를 알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언어를 사용하기 이전 단계에선 울음, 옹알이, 표정, 몸짓이 아기의 언어나 다름없다. 그래서 엄마는 아기의 울음이 뭘 뜻하는지에 늘 신경을 쓰고, 되도록 빨리 원인을 알아내어 불편을 해결해 주고자 한다.
옹알이 단계를 거쳐 말을 하게 되면, 제법 대화가 통해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말이 통한다고 느끼는 것도 잠시, 자기 맘대로 안된다고 울어제끼는 아이를 보면 엄마는 곧 고민에 빠진다. 우는걸 달래야 하나? 공감해주라던데... 버릇 없어지지 않을까 등.

달래야 하는 울음과, 지켜봐야 하는 울음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아기를 키우다보니, 아이의 울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하나는 살아 남기 위한 <생존울음>, 다른 하나는 '내 맘대로 세상'을 지키기 위한 <왕자/공주울음>이다.


생존울음-신체적, 정서적 안전을 찾기 위한 울음


배고픔, 배변으로 찝찝함, 아픔, 춥거나 더움, 놀람, 공포, 두려움 등이 느껴질 때의 울음이다. 낯설고 불쾌하고 신체에 해가 되는 상황 뿐 아니라, '세상에 혼자 남은 것만 같은/버림받은 것 같은' 정서적 위험이 느껴지는 경우도 포함한다. 아이에게 자기의 생존을 해결해주는 존재(양육자)에게 거부 당한다는 느낌은 즉각 생존의 위협과 연결되는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엔 즉각 반응을 하여 불편을 최대한 해결해주고, 안심시키면 된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주지 않을 때 우는 것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우는 왕자/공주 울음'이지만, '너 이러면 버리고 갈거야'라는 말을 듣고 우는 것은 엄마가 자길 버릴까봐 두려워서 우는 것이다. 그런 협박은 당장 잘 먹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생존을 위협 받는다는 것은 아이에게 큰 트라우마가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수면교육에서 사용한다는 '울려서 재우기'에 반대한다. 졸린 것, 생소한 감각, 어둠 등에서 아기는 낯선 느낌에 휩싸인다. 그때 우는 울음은 생존과 관련된 울음이다. 그 울음을 방치한다는 것은 아기에게 생경한 감각에 낯설고 무서워 울다가 포기하는 과정을 겪게 하겠다는 뜻이다. 생존울음을 의도적으로 방치한다는 것은 생각해볼 일이다.


'내 맘대로 세상'을 지키기 위한 왕자/공주울음


새로운 동작 등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아 우는 짜증 섞인 울음, 자기 욕구와 이를 채워주지 못하는 환경(사람이나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좌절하여 우는 울음 등이 이에 속한다.

아기는 자기의 몸이 마음과 달리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늘 발견한다. 눈 앞의 장난감에 손이 잘 닿지 않고, 이동할 방법은 요원하다. 그러면 짜증이 나고, 울음이 터져나온다. 히잉-하며 짜증 섞인 울음을 울다가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을 움직거리고 이를 반복하기도 한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울음 한 번 울어주고, 끙끙대며 몸에 힘을 주어 시도하는, 나름 열심인 적응 훈련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울음에는 '아이고 불편해~?'하며 바로바로 안아주는 등 흐름을 끊기 보다는 만져주고 격려하거나, 멀리 있는 물건을 조금 가까이 가져다 주는 등 도움을 주는 편이 낫다. 아기에게는 소중한 연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기에게 공감할게 뭐가 있나 싶을지 모르지만, 아기용 공감은 이런 순간에 이루어진다.
아기 뿐 아니라 좀 더 큰 아이도 마찬가지다. 숟가락질이 잘 안된다고 짜증내며 울더라도, 그 짜증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부모가 대신 해주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해내고 기뻐할 기회를 빼앗는 것과도 같다. 단, '너 혼자 해'하고 팔짱 끼고 보는 스파르타 훈육이 아니라, 지지하는 말이나 어깨 등에 손을 대고 있는 등 무언의 격려 언어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좋다. 주절주절 말할 필요는 없다. '혼자 해봐야 늘지'라고 가르치려고만 하는 것도 아이에겐 경직된 엄격함으로 느껴질 뿐이다. 교훈이나 메세지를 전달하려 하지 말고, 아이가 도전하는 그 순간에 함께 하며 과정을 지켜보고 격려하면 된다.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우는 왕자/공주울음은, 전에는 응애-만 해도 양육자가 다 해결해주던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면서 겪는 사소하지만 위대한 좌절의 증거다. 가슴 벅찬 일이다.

내키는대로 하고 싶어서 우는 왕자/공주울음도 있다. 동생의 장난감을 빼앗고,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고, 날이 추운데 샌들을 신겠다고 우기는 등, 뭘 배우는 것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고 그저 떼쓰는 것으로만 보이는 울음이다. 그야말로 버릇없는 왕자노릇 공주노릇이다. 하지만 이 때에도 아이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세상이 내 맘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 이제는 내맘대로 왕국의 왕좌에서 내려와 때론 참고, 양보하고,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울 소중한 기회다. 타인 혹은 세상의 규칙, 가정 내에서의 규칙이나 상황 속에서 욕구가 좌절될 때 우는 것이기에, 이 울음은 사회에 잘 적응하고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가장 초보적인 배움의 장이 열렸다는 신호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직접적인 훈계를 해봤자 이해하지 못한다. '엄만 맨날 잔소리해!'로 귀결되기 일쑤다. 그리고 기싸움으로 번진다. 그래서 필요한게 '욕구 읽어주기'다. 아이의 마음과 일종의 딜을 하는 셈이다. 어른도 맘대로 안될 때 막연히 짜증이 나다가도, '지금 내가 이래서 서운하구나/화가 났구나/슬프구나'등을 인지하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가. 아이도 마찬가지다. 어른도 공감을 받은 후 충고가 귀에 들어오듯, 아이도 공감 받은 후에 도덕이나 규칙에 대한 설명을 들을 준비가 된다.

생존울음은 되도록 즉각 반응하고 달래야 하는 울음이다. 반면 왕자/공주울음은 지켜봐야 하는 울음이다. 아이가 지금 뭘 느끼고 있는지, 도전 중인지 이기심을 채우려고 떼쓰는 중인지 등을 관찰하고 나서 반응해야 하기에 지켜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두 울음에 대한 반응을 반대로 하거나(생존울음은 방치하고, 왕자/공주울음을 받아줌), 일관성 없이 반응하거나, 공감없이 가르치기만 하는 식으로 반응하면 울음의 양상 또한 혼란스러워지고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떼쓰는 아이를 데리고 상담 받으러 가면 열이면 열 '공감'해주라, '일관성 있게 훈육하라'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울음의 종류를 파악하고 감정을 읽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일 것이다. 한발짝 물러서서 차분히 아이를 관찰하는 잠깐의 짬이, 육아를 보다 즐겁게 해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마음의 여유를 찾는게 부모 입장에서 쉽지 않다는 점이다. 부모 자신도 멘탈의 문제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자기중심성으로 가득 찬 존재, 그것도 예쁘기만 했던 아이가 이젠 반기를 들기라도 하듯 거칠게 부대껴오면 두손 두발 다 들기 일쑤다.

아이를 기를 때 부모의 자기성장이 필요한 것은 이런 순간마다 지혜롭게 넘겨 아이에게 일관된 사랑을 전달할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열이면 열 좋게만 대하라는게 아니다.하지만 그런 순간마다 아이는 자기의 작은 세계 안에서 극적인 감정 경험을 하고 변연계(포유류뇌)를 발달시킨다. 선택도 감수도 부모의 몫이며, 한 아이를 책임져 길러내는 일은 어려운 것이 맞다. 쉽고 편하길 바랄수록 괴로움도 크다.

나 역시 순하구나 했던 아이가 점점 떼를 부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할 때 짜증스런 감정이 올라온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울음과 떼쓰기 이면에 있는 성장과정과 의미를 떠올리고 부모로서의 내 역할과 책임을 되새기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성장은 아이 뿐 아니라 어른인 나 역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중심성을 내려놓을수록 평온한 육아를 할 수 있고, 자기중심성을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지향해야할 성장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잘 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정보나 각오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격려하고 적절히 휴식을 취하는 것일게다. 힘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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