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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영 Oct 13. 2017

수억년 전의 별이 말을 걸었다

별하늘을 기억하며

별하늘이 그립다. 별을 그리워하고 별에 끌리는 것이 내 개인적 경험이나 취향에 의한 것인지,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처럼 영혼이 원초적으로 끌리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자꾸 끌린다. 언젠가 별이 그득한 하늘을 보러 가겠다고 벼르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로 가지 못하고 텁텁하고 탁한 도심의 희멀겋게 검푸른 하늘만 바라보며 가끔 휘영청 뜬 달에 감탄하는 하릴없는 현대인이다. 그렇게 잊고 살다가 문득 어떤 계기로 인해 그리움증이 도지면, 감상에 빠지곤 하는데 KTX를 타고 가는 지금의 내가 딱 그렇다.


KTX 매거진 10월호의 한 페이지

영양 별빛 마을 기행이란 표지에 혹해서 읽던 책을 던져두고 기내 잡지를 빼들었다. 내용은 둘째치고, 국제 별보호 지구라는 것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그래, 여기에 가면 후두둑 쏟아질 것 같은 별이 그득한 하늘이 있단 말이지, 거기에 덤으로, 아니 덤이라기엔 너무 크지만, 반디생태보호지구가 있어서 별이 땅으로 내려와 춤추는 것 같은 모습까지 볼 수 있단 말이지!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기가 조금 더 크면 꼭 가리라 마음을 먹고 사진을 찍어 저장한다.


처음 별 가득한 하늘을 본 것은 고1 여름방학 때였다. 어쩌면 더 어릴 때일지도 모르지만, 내 기억에 찬란하게 박혀있는 별하늘은 그 때의 것이다. 충북 음성의 꽃동네에, 봉사점수를 채우기 위해 반에서 단체로 갔던 봉사활동. 별 생각없이 갔던 그곳에서, 나는 별하늘을 만났고, 그동안의 내 세계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부류의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네 명의 친구와 한 조가 되어 배정 받았던 곳은 '남자 중환자실'이었다. 말 그대로 거동이 불가한 중증의 할아버지나 아저씨들이 누워 지내는 곳으로, 식사 보조나 용변 치우기 등을 해야했지만, 기관에선 우리가 여학생이어서인지 식사 보조 정도의 일만 시켰다. 식판을 가져다주면 옆으로 돌아누워 수저질을 하느라 밥을 다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먹여줘야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짜증이 나는지 도와주려고 해도 버럭 화를 냈고, 어떤 사람은 인형처럼 시키는대로 하기도 했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목에 구멍이 뚫린 사람이었다. 호흡을 위해 기도를 뚫은 것이겠지만, 식사를 하다가 사레가 들려 기관지로 밥알이 넘어오기라도 하면, 구멍으로 밥알이 튀어오르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때의 나와 친구들은 형벌이라도 받는 듯한 고통스러운 모습에 몸을 움츠리고 가까이 갈 엄두도 못냈다. 마치 몸에 갇혀 있기라도 한 듯, 많은 이들이 작은 침대 위에 놓인 몸뚱이에서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수녀님들이나 능숙한 자원봉사자들은 그들을 잘 돌보았고, 우린 그저 그 분들의 일손을 조금이라도 더는 것 정도로 만족해야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일은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옆의 여자 중환자실로 배정 받은 한 친구는 수녀님에게 수녀가 되길 반농담으로 권유 받을 정도로 능숙하게 할머니들을 보살폈다고 했다. 슬쩍 가서 본 그 친구는 능청스럽게도 '할머니, 좀 돌아누워봐, 엉덩이 좀 들어봐.'라며 반말을 하며 능숙하게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저 아이는 전생에 나이팅게일이었을까? 특별한 재능을 가진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무언가가, '몸이라는 감옥에 갇힌 이들'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특별한 재능을 허락받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래서 잘 돌보는 사람도, 돌봄이 필요한 '매우 괴로워 보이는 사람'도, 내 세계와는 거리가 먼 것인양 떼어놓고 싶었던 것도 같다.


별하늘을 마주한 것은 일과가 끝난 저녁 시간 이후의 일이었다. 2박3일의 일정으로 봉사활동을 간 것이기에, 우린 저녁 시간은 자유로이 누릴 수 있었다. 조명도 없이 까만 밤에 바깥으로 나온 나는, 그저 놀라서 한동안 말을 잃고 우와-우와-하는 감탄사만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밤하늘이 거기 있었다. 까만 벨벳천 같은 하늘에, 은빛이 무수히 박혀 있었다. 아니, 이런 진부한 표현으로 담아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사진 한 장이면 광경을 박제하여 보여줄 수 있겠지만, 그 순간에 분명 존재했던 나의 주관적 감상까지는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야야, 별에 맞아 죽을 것 같아.


참 멋없게도, 과격하고 거침없는 감상을 내뱉었다. 금방이라도 와그르르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별이 흔들흔들 몸을 떨어대며 빛나고 있었다. 책에서나 보던 은하수가 또렷하게 보였고,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등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별자리는 찾을 필요가 없이 눈 앞에 둥실 떠있었다. 왜 별을 '빛난다'고 표현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반짝반짝 작은 별/아름답게 비치네 하는 가사가 얼마나 소름끼치게 정확한 표현인지도 그때 알게 되었다. 별이 그득한 그 하늘은, 너무도 아름답고 장대해서, 백여미터 근방의 직사각 건물 안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끔찍한 상태'조차 잊게 했다. 쪼그라들고, 추하고, 냄새났던, 하지만 본인들도 어찌할 수 없어 그저 누워서 주는 밥을 받아 먹고 똥오줌을 누운 채로 싸야했던 할아버지, 아저씨들. 그런 처참함과 아름다운 별하늘이 공존하는 곳이 사춘기 소녀에겐 낯설고도 신비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곧 그 미묘한 경계에 서서 사색하는 것보다는, 처음 본 별하늘에 감탄하며 꺅꺅대는 것을 선택했다. 별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하늘은 신비 그 자체였으며, 나는 그저 어리고 어렸다.




봉사 마지막날, 우린 어설프게 인사를 하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화를 내던 할아버지,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아저씨 등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우리의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우리도 딱히 '누굴 향해서' 인사를 하기 보다는 중환자실에 작별을 고하기라도 하듯 모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목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 새는 소리가 났 던 아저씨가, 우리에게 종이와 펜을 달라고 했다. 우린 마지막 '활동'을 하듯 조심스럽고 신중한 움직임으로 종이와 모나미 볼펜을 건넸다. 그 분이 힘겹게 뭔가를 적었고, 종이를 우리에게 주었다.


종이엔 '고맙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꾸벅 인사를 했다. 차마 그 분을 똑바로 볼 수 없었고, 부끄러움과 미안함과 감동과 슬픔 등이 뒤섞여 울컥울컥 날뛰는 것을 가슴 묵직히 느껴야했다. 도망치듯 뛰쳐나온 우리는 복도에서 입을 틀어막고 펑펑 울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우리는 그저 봉사활동을 하러 왔고, 곧 떠날 사람이니 할 일만 대충 하고,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안됐다-같은 생각 정도만 했는데, 그 분은 자기가 할 수 있는 혼신의 힘을 다해 어린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함으로써 타인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준 것이다. 그 영향인지 돈을 번 이후로 기부를 늘려가며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얄랑한 나는 그거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그 분의 목에 뚫린 구멍에서는 식사때마다 밥알이 튀어나왔다. 사춘기 소녀의 눈에는 그저 끔찍했다. 말은 커녕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선한 영혼으로 우리를 대했다. 목의 구멍이나 쇠약하고 뻣뻣하게 굳은 몸도 그가 영혼의 대화를 하는 것을 방해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도 기부를 앞에 두고 내 없어진 수입이나 여러가지 경제적 이득이 떠오를 때마다, 꽃동네에서 만난 그 사람의 목구멍에서 삐져 나오던 밥알과, 종이에 삐뚤게, 하지만 힘있게 적혀있던 '고맙습니다'라는 문구, 환상적이던 별하늘을 기억 속에서 불러낸다.


그땐 몰랐던 이야기가 가슴 한켠에 자리 잡고 있다가 뭉근히 퍼지는 것이 느껴진다. 별 가득한 밤하늘이 아름다운 만큼이나, 사람들 하나하나도 아름답다고, 네가 연민과 두려움으로 쳐다보던, 몸에 갇힌 듯한 그 사람들도 자기 삶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경험을 하건간에, 타인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존재라면 이미 아름답게 빛나는 중이라고, 건물 안에서 사레 들릴 때마다 괴롭게 쿨룩이던 그 사람도, 별빛 아래에서 환호를 지르는 소녀들만큼이나 반짝인다고 말이다. 그리고 철없는 어린 봉사자들에게 작지만 본인에겐 큰 움직임이었을 쪽지를 건네려고 마음 먹은 순간, 그의 영혼은 크고 아름답게 반짝였을 것이다.


수년 전, 아니 수억년 전의 별들이 시공을 넘어 내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기억 속 별하늘이 열차 매거진의 기사를 계기로 되살려지며 묶어두었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헤쳤다. 나는 할머니 이야기를 듣는 꼬마가 된 양 정신없이 게걸스레 이야기를 먹어 치운다. 별 이야기와 사람 이야기, 영혼과 감사의 이야기. 이제 조금 알 것 같고, 앞으로 더 알게 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그게 내 삶의 방식을 조금씩 바꿔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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