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일지 004

깜빡

by 김어항 AHANC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어제만 해도 겨울 코트를 입고 나섰는데
오늘은 반소매 옷을 고르고 있다.

누군가의 얼굴도 그렇다.
자주 보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있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리워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이름.

시간은 정말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처음엔 너무나 익숙해져

신경 써보지 못했다


같은 하루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때 그 사람도,
그날의 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내일도 있을 거라 믿었고,
하고 싶은 말은
나중에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말들은
끝내 전해지지 않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살다 보면 가끔
멈춰서 묻고 싶어진다.

‘그날, 내가 조금만 더 다정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그냥 한 번 안아줬다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물론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시간은 유한하고,
사람은 그 유한함 속에서
사랑을 배우고,
후회를 배운다.

하지만 지나간다고 해서
모든 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짧았던 웃음 하나,
조용히 나눈 손인사,
창밖을 같이 바라보던 그 순간.

그 모든 건
지나가면서
우리 안에 남는다.

마음이라는 그릇 안에서
조용히 흔들리는 물결처럼.

그래서 나는 이제
말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고맙다는 말,
보고 싶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

하루가 짧고,
사람은 금방 멀어지기 때문이다.

눈을 감기 전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날 안에 전하는 것.

그게,
사랑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가 지나간다.

다시 오지 않을 이 하루를
조용히 눈에 담는다.

그리고 속으로 천천히 말한다.

“그래, 다 지나간다.
그러니까 더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