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뎅기열 그 이후,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 파견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33년 전, 죽음을 이겨내고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활동 당시의 임지방문 등 15일 간 스리랑카 여정을 담는 글이다.
지난 (13) 회차 글에서 참혹했던 뎅기열을 기억하고 나눴지만,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맞은 상황, 그로부터 30년도 넘은 세월은 한동안 '뎅기열이 만든 터널' 부분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 늘 묻어두었었다.
그 해, 여름과 겨울을 넘나들며 김포공항을 거쳐 서울에 도착했지만, 그 길은 또 얼마나 험난했던가? 그땐 그랬었다. 지금이야 어떻게 환자를 후송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어렴풋한 기억으로 '캐세이 퍼시픽' 항공 콜롬보-김포 편 좌석 어디쯤인지 의자 세 갠지 네 개를 연결해 병상?으로 꾸미고, 탑승부터 중간 두 곳의 경유지에서 휠체어를 이용해 최우선 배려를 했다. 탑승 이후 중년의 여자사무장이 찾아와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까지 무사히 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떤 조치라도 할 수 있다'했고, 수시로 들러 상태를 확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침, 같은 항 편으로 나와로카 병원의 주치의가 홍콩을 경유해 영국에서 펼쳐지는 콘퍼런스 참석을 위해 동승하게 됨을 공항 대기실에 확인했으니 더욱 안심했었다. 이후,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 업무차 홍콩을 다닐 때 캐세이퍼시픽 항공사에 저간의 사정을 적어 감사편지를 보냈던 기억도 새삼스럽게 생각났다.
이미 콜롬보에서 출국을 앞두고 당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던 큰 오빠께 연락드려, 저간의 사정을 짧게 전하고, 큰 걱정 말라 이르고, 노모께는 알리지 않도록 청했었다. 김포 공항으로 도착 후 대기해 있던 앰뷸런스 탑승전 큰오빠와 코이카 및 병원 관계 자였을지, 누군가를 만나 짧게 인사하고 내내 배낭과 함께 휠체어에 얹힌 병원 기록을 건네고 코이카 협력병원인 을지병원에서 입원하게 되었다.
이후 지난한 을지병원의 시간들, 처음 입원당시 혼미한 상태가 지속되어 다인실에 있을 수 없었다 했고, 다시 총체적인 검사를 하고 안정을 찾기까지, 랑카 기후에 새까맣게 그을린 체 병색 짙은 37킬로 이하의 체중으로 사실을 아는 가족 몇, 친한 친구와 조카 몇만 알게 했고, 이후 다시 랑카로 갔다 마지막 귀국 시까지 노모께는 비밀로 붙였었다.
12월 초에 날아와 병원에서 새해를 맞고도 그로부터 얼마간 치료받는 동안, 소식이 닿아 병문안 온 옛 동료, 친구, 조카들이 상태를 보고 울고불고할 여유도 없이 그때마다 체면도 다 버리고 팔다리가 저려서 견딜 수 없어 주물러 달라고 했다. '흔치 않았던 뎅기열로 해외에서 후송된 환자 사례'로 당시 담당 주치의는 학술지에 논문 게재를 목적으로 동의를 구했던 사정도 있었다. 어느 날인가, 당시 고3 조카가 겨울 방학 때라 병원을 지키던 당번을 겸하던 때 '화장실 사용법'을 잊어버린 환자 이모로 인해 놀랐던 상황, 그때의 상황은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고대안암병원에서의 긴 재활치료, 다시 임지로 복귀한 사정, 그러다 다시 쇼크로 인해 견디지 못해 중도에 한국으로 2차 귀국, 병원 재차 입원, 운전 중 마비, 원인불명으로 인한 수차례의 입원등으로 이어진 뎅기열의 후유증은 지금의 웰다잉을 공부하게 된 배경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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