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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Aug 17. 2021

덴마크로 이민가자는 허황된 이야기

108배 수행 12일째 (21년 8월 17일)

작년 7월 책을 본격적으로 읽으면서 멀리 했던 영화를 오랫만에 보았었다. 글쓰기 모임의 과제였던 레볼루셔너리 로드라는 영화이다.  케이트가 디카프리오는 미국의 중산층 부부이다. 두 사람은 바에서 만나 사랑해서 결혼하고, 꿈에 그리던 2층집이 있는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이사를 한다. 여느 부부처럼 부부싸움을 하고, 그냥 저냥 지내지만 무엇인가 결여되어있는 느낌이다. 케이트는 디카프리오가 결혼전에 찍은 파리의 사진을 보고나서 퇴근한 디카프리오에게 '파리로 가자'라고 한다. 파리에서는 내가 돈을 벌테니 당신은 하고 싶은걸 하며 여유로운 삶을 살라고, 당신은 할 수 있다고, 꿈을 불어넣는다. 그들은 그렇게 파리를 갈 준비를 한다. 짐을 싸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이웃들에게 이별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디카프리오는 파리에가서 무엇을 하냐고 하지만, 그들은 특별한 계획이 없다. 그냥 꿈을 이루기 위해서 간다고 한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 4년 전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신혼때처럼 자주 싸운건 아니었지만 남편과 나는 연례행사로 다투었고, 그 싸움의 과정은 길었다. 그냥 서로 대화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들이 오히려 편했다.


또 다시, 한국이 싫었다. 

2003년 첫사랑과 헤어지고, 술로 1년을 보낸 후 새로 사귄 남자친구는 양다리를 걸쳤고,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하고 다투셨고, 엄마의 알콜중독은 더 심해졌고, 아빠의 사업은 망해갔고, 망해가는 아버지의 사업에 엄마가 모아둔 돈,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 마냥 보태지고 있었을때, 말레이시아행을 결심했던 그때처럼 그냥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이민을 알아보고, 직장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남편과 마지막으로 또 한번 노력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덴마크 이민을 알아보고 있다고, 한국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 없이 이렇게 살지 말고, 유럽에 나가서 살자..고 했더니 남편은 나의 말에 혹했는지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냥 계획이 없었다. 덴마크로의 이민 계획은 그냥 흐지부지 되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처럼 비극은 아니지만,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만약 나 혼자만있었다면 어쩌면 덴마크나 네덜란드로 혼자 쉽게 떠날 수 있었을까. 남편이 짐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아니면 그런 핑계를 대며 나 또한 안주하며 살았던 것일까. 


결혼이라는 것의 또 다른 족쇄는 무엇이든지 같이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때 내 탓이 아닌 니 탓을 할 수 있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오늘의 108배 질문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지구 어디에 살고 있었을까...라고 뜬금없이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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