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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Aug 12. 2021

농담과 장난

108배 수행 8일째 (21년 8월 12일)

어제는 친정아빠의 생신이었다. 


가정폭력은 있어왔지만, 아빠가 그렇게 매일 가정폭력을 휘두르셨던것은 아니다. 부모님의 부부싸움의 원인은 알지 못했지만 두분은 격렬하게 싸웠고, 화해는 물론 엄마가,


엄마는 24살의 나이에 나를 낳으시고 친할아버지 과수원에 들어가셔서 시댁살이, 육아, 과수원일을  그 젊은 나이에 감당하셨다.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벌어오신 돈은 모두 과수원에 들어갔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과수원을 우리 엄마아빠를 주겠다고 해놓고, 우리 몰래 파셨다. 엄마는 수원으로 이사와서부터 시골에서 시집살이한 것이, 아빠에게 맞았던 것이, 큰고모에게 무시받은 것이, 속상하셔서 계속 술을 마셨다. 하지만 나와 내 동생은 집안의 권력자인 아빠의 편에 서서 엄마를 따돌리고 함께 무시했다. 나에게 엄마는 돈밖에 모르고, 용돈도 주지 않고, 세뱃돈은 다 뺏어가버리고, 매일 술마시고, 아빠와 칼부림하며 싸워도 다음날 밥을 차려주는 사람일뿐이었다.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 건 성인이 되어서이다. 엄마는 집에서도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담아 꿀꺽꿀꺽 마시고는 너희들은 결혼을해서 애를 낳으면 나를 이해하게 될꺼라고 했는데, 그보다는 더 빨리 엄마를 안쓰럽게 보기 시작했다. 엄마가 안쓰러워질 수록 엄마에게 폭력을 썼던 아빠가, 자주 욱하던 아빠가, 엄마를 무시했던 아빠가 미워졌다. 어렸을때는 가끔씩 맞아도, 그렇게 아빠를 따르고 좋아했는데, 길을 갈때는 항상 아빠 손을 꼭 잡고 데이트 하듯 했는데, 고모들이 나를 칭찬하고 이런 딸을 둔 아빠를 부러워했는데, 그런 큰 딸은 싹 사라져버렸다. 아빠의 농담과 장난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아빠의 연락이 부담스럽고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그 마음이 극에 달했을때, 전화로 아빠와 크게 싸웠다. 고래고래 함께 소리치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아빠는 왜 나한테 못됐다, 인간이 되라고하냐, 아빠가 못된거니까 나한테 그러는거 아니냐라고, 아빠는 왜 엄마를 무시하냐고, 엄마한테나 잘하라고 화를 냈고, 아빠는 니가 지금 그렇게 사는게 누구 덕분인데 니가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고 소리를 지르셨다. 나는 조그맣고, 두려운 어린 나로 돌아갔다. 


몇개월간을 아빠와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엄마에게 계속 아빠는 어떠시냐고 물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마음이 풀린 그런 상황 말고, 그 당시의 아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금 부모님이 나의 가까운곳에 살아계시는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임을, 내가 얼마나 시간낭비를 하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따뜻하게 부모님을 대하는 방법을 알아나가기 시작했다. 


오늘 친정식구들이 우리집에 갑자기 모여서 아빠의 생신파티를 간단하게 해드렸다. 아빠가 나의 아이에게 장난을 거신다. 엄지척을 하시면서 엄지손가락을 눌러보라고 하시고, 아이가 엄지손가락을 꾹 누르자 방귀를 뿡 뀌신다. 내가 어렸을적 많이 하시던 장난이다. 


 아빠는 농담과 장난을 많이 하시는 분이시다. 그 장난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농담에 다시 웃기 시작했다. 이제 아빠 자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남편은 어떤가... 남편은 농담은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농담을 받아들이는것도 하지 못하는 같다. 유머를 가진다는 것이 삶의 축복인데, 나도 남편도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웃자고 말했는데 서로 죽자고 덤빈다. 농담이 싸움이 되고, 싸움이 미움이 되었다. 


오늘은 108배를 하면서 다르게 묻는다. 지금의 이 편안한 마음이 진짜인가요?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데 그게 정말 괜찮은거 맞나요?




농담


행복할 때는 농담이 절로 나온다.

좋은 기분이

유희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뜬금없이 아재개그 한다고

아빠를 혼낼 일은 아니다.

그의 삶이 괜찮다는 신호이니 

안심하길.


아주 보통의 행복 (최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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