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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Aug 21. 2021

우주에서 지구 내려다 보기 1탄

108배 수행 16일째 (21년 8월 21일)

다낭성 증후군 진단(무배란)을 받았던 나는 산부인과에서 받아온 날짜에 맞춰 두번째로 배란유도제 주사를 배에 스스로 찔러 넣었다. 똥배를 살짝 잡고, 꾸욱. 생각보다, 겁먹었던것보다 아프지는 않았다. 그날은 첫번째 시도때보다 남편과 사이가 좋았다. 둘이 손도 잡고 다니고, 싸우지 않은 기간이 길어졌을 때였다. 다음날 혹성탈출2를 극장에서 관람하기로 해서 혹성탈출1을 밤늦게까지 집에서 함께 보았다. 


극장이 집에서 가까웠는데 조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앞에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영화 관람을 막 시작하려고 했을 때, 오랫만에 제주도에 휴가를 가신 부모님의 사진이 진동 알람이 계속해서 날라왔다. 나는 깜깜해진 극장에서 휴대폰을 꺼내 무음으로 바꾸고자 했다. 꺼내는 순간 주변이 밝아지자 옆에 있던 여자가 자신의 팔로 내 팔을 팍 쳤다. 순간 당황하기도 하고, 기분이 너무 나뻐서 나는 '뭐야... 오빠, 이 아줌마가 나 팔로 쳤어' 이렇게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살짝 바라보고 '그래?'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어떻게 싸움으로 발전하게 되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아줌마 옆에 앉아있던 여자가 '엄마, 이 여자가 엄마한테 머라고 했어?'하더니, 여자가 나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원피스의 앞섬을 잡아당겼다. 나는 여자들이 폭력을 멈추기를 가만히 기다렸고, 남편은 싸움을 말렸다.


주변이 웅성거렸고, 이렇게 있을수가 없어서 같이 나가자고 해서 상영관 밖으로 나갔다. 남편은 니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고, 나는 극장 메니저에게 경찰을 불러 달라고 했다. 거울을 보니, 원피스 앞섬이 찢어져 있었고, 입술 옆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내 편을 들어줄지 알았는데 남편도 당황했는지 나에게 폭력을 행사한 모녀에게 아무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다. 순간 나는 당당해질수가 없었다. 회사에 경력으로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았고, 만약 경찰서에 가게 되어 이슈라도 된다면 나는 극장에서 진상 사건에 휘말렸기에 직장내 생활도 원만하지 않을 것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가겠다고 하고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남편이 말했다.

"우동 먹고 갈까"


순간 너무 화가나서,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우동을 먹고 가자는 말이 나오냐고 날카롭게 찔렀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안방에 들어가서 계속 울었는데 남편은 방에 들어와보지 않고 집을 나갔다. 나가서 밤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의 이모한테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내가 자기 엄마뻘되는 아줌마에게 욕을 했다고, 같이 살아야할지 모르겠다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변하지 않는 생각은 '그런 상황은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게 맞지 않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남편은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남편이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프레임. 그리고 그 프레임에 갇혀 나도 남편을 나의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10년이 지나왔다. 남편은 빨래를 갤때도 자기것만 개었고, 내 옷은 그냥 흐트려놨다. 아이와 내가 먹은 음식의 설것이를 할때도 자기가 먹은게 아닌데 왜 설것이를 해야하냐고 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때도, 내가 먹은게 없는데 왜 이 쓰레기를 자기가 버려야 하냐고했다. 나는 계속해서 반복했다. '오빠는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기는 해?'


주말부부 4개월차 남편은 집에와서 설것이할것이 있으면 본인이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차 있으면 갖다 버리기도 하고, 빨래를 하면 내 속옷도 차곡차곡 개어 놓는다. 


내가 너무 성급했던것이 아닐까? 대학 졸업하고 혼자 살았던 시간이 많았던 남편이 남과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지는 시간들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우주에서 지구 내려다보기를 해보니,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상황들을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오늘을 마지막으로 브런치에서 뱉어버리고 이제 비련의 여주인공 극장 에피소드는 잊어버리기로 한다.


오늘의 108배 수행은 이렇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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