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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Aug 19. 2021

처음이자 마지막 상담-카산드라증후군

108배 수행 14일째 (21년 8월 19일)

얻은 것 없는 프로젝트 (brunch.co.kr) 8월 18일 기록


긴 프로젝트 동안 몸과 마음이 많이 망가져 있었다. 내가 출장 가 있는 동안 아이는 새벽 3시-4시에 깨서 울어서 친정어머니와 함께 새벽 5시부터 새벽산책을 할 정도였다. 출장에서 복귀해서 3살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은 좋았으나, 아이는 예민하고 울음이 많아서 힘들었다.남편은 항상 그래왔듯이 평일에는 다른 방에서 혼자 잠을 잤고, 내가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부터 친정엄마 대신 나만 아이와 함께 잤다. 아이는 어김없이 새벽 3-4시에 깨서 울었고, 어느 날은 잘 달래졌으나 대부분의 날들은 잘 달래지지 않았다. 새벽에 깨서 잠을 못자고 좀비처럼 출근하고, 하루종일 갤갤대면서 업무하다가 바로 칼퇴근해서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그때부터 다시 육아를 시작했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었고, 남편은 평일이면 오전 6시에 출근해서 밤 11시가 넘어서 들어왔다. 


어느 날 새벽 3시 30분부터 아이가 깨서 울기 시작했다. 2시간을 얼르고 달랬는데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다른 방에서 주무시다가 아이와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오셨고, 뒤를 이어 남편이 회사 갈 시간이 되니 일어나서 우리방으로 들어왔다. 남편이 말했다. "왜 아이를 자꾸 울려"


회사에서는 같은 그룹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매일 야근을 했다. 나는 보통 출근을 오전 7시 30분 정도에 했고, 다른 동료들은 9시에서 10시 넘어서 출근했는데, 부서장은 퇴근시간만 체크했다. 야근하는 싱글들이 인정을 받았고, 재시간에 퇴근하는 나는 부서장의 표현으로,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사람이었다. 싱글들은 오후 5시에 나갔다가 술마시고 밤 9-10시에 들어와서 12시까지 일할때도 많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다시 집으로 출근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긴 프로젝트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얼마후에 멕시코로 1달간 출장 일정이 잡혔다. 


멕시코 출장이 2주 앞으로 다가온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어느 날 회사 마음관리 센터에서 설문조사가 이메일로 날라왔다. 나는 아무생각없이 설문조사에 응했고, 얼마후에 마음관리 센터에서 위험 수위니 상담을 받아보는게 어떻겠냐고 이메일이 왔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했었다. 


마음관리센터에 연락을 하고 부부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남편이 왠일인지 흔쾌히 응했다. 그리고 부서장과 팀장님께 상황을 말씀들기고 멕시코 출장은 다른 사람으로 대체 되었다.


상담결과 남편과 나는 상당히 다른 성향이었고, 남편은 무엇을 해도 혼자 즐거운 사람이라, 내가 아니었으면 이런 상담도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했다. 두 번의 상담을 받고 세번의 상담이 남았는데 그 이후부터 남편은 계속 상담을 미뤘고, 마침 상담선생님도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얼마전에 '내 남편은 아스퍼거'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아스퍼거형 남편을 둔 배우자는 카산드라증후군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게 나였다. 


오늘은 108배를 하면서 상담 받았던 앞뒤의 상황들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카산드라 증후군은 이미 극복한 것인가, 아니면 얼마전 상담해주신 선생님 말대로 내 안에 아직 그때의 화가 많이 쌓여있는 것일까.



최근 부부관계를 둘러싼 고민이나 갈등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의사나 IT 기술자 같은 전문직 남성과 결혼한 여성이 공감 능력과 배려심이 부족한 남편 탓에 우울함을 느끼거나 갑자기 짜증을 내는 등 심신 이상으로 고통을 겪는 사레다. 실제로 남편에게 가벼운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디스커넥트 유형의 진단이 내려지는 사례도 많다. 여성이 보이는 위와 같은 증상을 '카산드라 증후군(감정 박탈 증후군)'이라고 한다. (중략) 데이트 때 아키코 씨는 슈지 씨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는 했다. 그러면 슈지 씨는 일단 대답해주기는 햇찌만, 자신이 먼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보다 대개 듣는 쪽에 섰으므로, 아키코 씨는 슈지 씨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 알기 어려웠다. 아키코 씨는 과거의 이성 교제까지 포함해 서로의 여태까지의 인생을 전부 받아들인 후에 하나고 되고 싶었다. 그러나 슈지 씨는 아키코씨의 과거에 흥미가 없는지 절대 묻지 않았고, 슈지 씨 자신도 사적인 과거의 일은 조금도 이야기하려 들지 않았다. 인생의 반려자로서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 진심으로 생각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중략) 2년후에 아이가 생기자 슈지씨는 변함없이 일을 우선하는 생활을 절대 바꾸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생활에 아내가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이가 한밤중에 울어도 수술에 지장이 생긴다는 이유로 수지씨는 조금도 관여하지 않고 다른 방에서 홀로 잠을 잤다. 슈지씨의 숙면을 방해하지 않으려 아키코씨가 밤새도록 아이를 안고 어른 것은 안중에 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어젯밤에는 아이가 참 심하게 울었지"하고 말할 뿐이었다. 슈지씨에게 내려진 진단은 디스커넥트 유형(회피형 애착 유형)이었다. 깊고 친밀한 관계와 정서적 교류를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협조성과 공감성 면에서도 부족한 데가 있었다. 자폐 스펙트럼증과 비슷하나 신경계에 눈에 띄는 장애가 없고 대인 관계, 특히 친밀한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점이 특징이다. (디스커넥트형 인간이 온다 中 -오카다 다카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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