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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Aug 22. 2021

우주에서 지구 내려다 보기 2탄

108배 수행 17일째 (21년 8월 22일)

셋째인 아빠가 친할아버지 과수원에 들어가서 5년간 일하다가, 부모님은 아무것도 남는게 없는 것을 느끼신 후 우리 가족은 수원으로 이사를 왔다. 7살때쯤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는 거리에 바로 현관문이 있는 1층집에 세를 들어 살았다. 장마기간에는 천장에서 물이 세서 다라이를 방 중간에 놓고 잤고, 샤워시설이 따로 없어서 중간 마당에서 엄마는 찬물로 어린 우리를 목욕시켰다. "나는 하나도 안춥다, 하나도 안차갑다!, 나는 괜찮다!' 이런 구호를 외쳤던 것이 생각난다. 수원으로 이사와서 엄마는 바로 어느 납땜하는 공장으로 일을 다니셨고, 아빠는 집에서 항상 잠만 주무시던 분이셨다. 그러다가 엄마가 동네 아저씨가 하는 소파는 일이라도 따라 다니라고 해서 아빠는 그 일을 가끔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어렸을적부터 가난이라는 것에 익숙했고, 그것이 챙피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같다. (물론 가난은 챙피한 일은 아니다)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란 당연히 없는 사람이었고, 생일 선물 따위는 기대하지도 못했다. 친구의 생일 초대를 받았는데, 생일선물 살 돈이 없어서 그 당시 친한 친구가 자신의 돈으로 생일선물을 사고, 나와 같이 준비했다고 하기도 했다. (그 고마운 친구는 지금 러시아에서 선교활동중이다) 


아빠는 젊었을 때 등산, 낚시 다니는 걸 경험 삼아 수원의 화서 오거리에서 체육사를 시작하셨고, 동대문으로 대중교통을 타고 물건을 떼어오는 건 엄마의 몫이었다. 체육사가 당연히 장사가 될 수가 없다. 빚만 지고 망했고, 그 다음에 차린 것은 만두가게였다. 3개월 정도 만두 빚는 기술자가 우리집 단칸방 다락에서 생활하며 우리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가셨고, 우리집 형편은 서서히 나아졌다. 


엄마는 항상 돈돈하며, 우리한테 절대 용돈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고, 아빠는 기분파로 우리가 필요할때마다 용돈을 자주 주셨다.아빠는 엄마 몰래 큰고모와 친구에게 낸 빚을 소비하셨고, 엄마는 항상 아빠의 빚을 감당하는 사람, 악작같이 모은 돈을 아빠의 사업빚에 쏟아붓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두개의 가면을 쓴 것처럼 어쩔땐 아빠가 되었다가 어쩔땐 엄마가 되었다. 예를들면,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먹는 군것질 비용은 대부분 내가 냈다. 그건 아빠의 모습이다. 하지만 마음은 항상 불편했고, 마음 속으로 숫자를 계산했다. 그건 엄마의 모습이다. 


고등학교때 떡볶이를 사먹으러 자주 같이 나가는 친구가 있었는데 대부분 내가 계산했었다. 대학교 들어가서 알고보니 그 친구네집이 상당히 부자였다. 항상 그런식이었다. 같이 무엇인가를 먹으러 간 상황에서 내가 먼저 돈을 내는 행위. 그건 정말 아빠를 닮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100원까지 계산하며, 불편해하는 모습. 그런 두 마음들이 언제나 내 맘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쓰는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결혼하고 나서 남편은 외식을 할 때, 특히 내가 보너스를 타거나 내가 사준다고 해서 식당에 가면 그 식당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시켰다. 나는 A, B, C 코스가 있으면 가장 싼 A 코스를 시키는 사람이었다. 항상 돈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남편의 그런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얄미웠고, 몇번인가 싸웠다. 그 음식이 맛있는지 좋아하는지 따지지 않고 왜 당신은 비싼것만 시키냐고 따졌고, 남편은 이왕 먹는 거면 비싼거,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거 먹는게 무슨 잘못이냐고 항변했다. 눈치를 줄때도 있고 그냥 포기하고 놔둘때도 있었다. 


오늘 세식구가 가족 뮤지컬을 보고, 오랫만에 외식을 하고, 스타벅스 커피숍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얼마전 생일 선물로 지인들이 스타벅스 쿠폰을 많이 선물해주어서 그걸로 마시러 간건데,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던 남편이, 어김없이 가장 비싼 메뉴를 시킨다. 


"사이즈 멀로 드릴까요? 톨과 그란데 사이즈가 있어요"


나는 그냥 피식 웃으며, "그란데 사이즈 주세요"

그래... 먹을때라도 니가 먹고 싶은거 먹어야지..


오늘도 우주에서 지구내려다보기 성공이다. 돈에 대한 나의 프레임도 있을 꺼고 남편의 프레임도 있을 껀데, 이게 머 대수라고. 


차를 운전하며 그란데 사이즈 음료수를 끝까지 쪽쪽 빨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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