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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Aug 24. 2021

우주에서 지구 내려다 보기 3탄

108배 수행 19일째 (21년 8월 24일)

12년 경력입사와 동시에 결혼을 하자마자 거의 200일이상을 해외 출장을 다녔었다. 그리고 강제로 부서를 옮기게 되었는데 옮긴 부서에서도 출장을 가야했다. 약 10일간 인도네시아 출장이었는데, 출장이 끝나면 바로 설날이었다. 그러니까 결혼 후 첫 설날인 것이다. 


출장업무를 빡세게하고 도착한 아침에 남편의 친할머니의 부고를 들었다. 피곤한 몸을 추스리기도 전에 대구로 가서 상을 치뤘다. 결혼하자마자 시할머니 댁에서 처음 뵈었고, 그 다음에는 요양원에 누워계신 모습이 두번째였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남편은 장손이었는데, 장례식에서 다른 손자 손녀들은 손님처럼 잠시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가고 갓 결혼한 나와 동서만이 손님 맞이 노동을 하였다. 


나는 동서에게 말했다.

"세뱃돈을 받아도 십수년을 받았을테고, 자기들 할머니인데 어떻게 저렇게 손님처럼 앉아있다가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가지?"


10년전쯤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이 생각났다. 우리는 외손주, 친손녀 할 것 없이 열심히 음식을 나르고, 치우고 손님들을 맞이 했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 장례식에는 내 친구들이 와서 함께 일손을 거들어주었다.  당연히 그래야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피곤하고 지쳤다. 친정식구들은 설이라고 이모집에 모였으나 나는 갈 수 없는 것이 서러웠다. 두 번 뵌 시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상복을 입고 노동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남편은 나에게 미안한 티,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른것보다 그게 서운했다. 돌아오는 길에 크게 싸웠다. 고맙다는 말이 그렇게도 어렵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는데도, 남편은 끝까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풀리지 않은 서운함이 계속 꼬리표에 하나 더해져서 따라다녔다. 


작년에 나의 친할머니께서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나의 사촌들이 모두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친할아버지 돌아가셨을때는 모두가 참석했는데 친할머니 장례식에는 사촌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참석한 손자, 손녀들은 같이 장례식 손님을 맞이했다. 음식을 나르고, 치우고, 남편은 사촌의 남편과 함께 부조금을 받는 일을 했다. 그런데 웃긴 건, 내가 그렇게 혐오했던 시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손님처럼 앉아있다가 그냥 가버린 손주들처럼, 우리 중에도 그런 사촌이 있었다. 사촌은 다음 날 바로 해외로 떠나야하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장례식장에서 즐거워했다.(오해하지마시길...) 열심히 장례식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 노동을 하며, 연신 웃었다. 의외의 모습이었다. 열심히 사람들을 뚫어지게 관찰하더니 삼일장이 끝날 무렵 이제는 누가 누군지 알겠다며, 족보를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본인이 모르는 사람들이 '박서방이라고? 진이 남편이라고?아이고 든든하게 생겼구만' 이런 말들을 계속 듣는 것도 즐기는 듯 했다. 큰아버지 큰어머니는 진심으로 나중에 꼭 영주에 소고기 먹으러 오라고도 하셨다.


그 이후에 나는 10년 전 시할머니의 장례식을 털어버렸다.상황이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내가 경험한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맥락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하면 안된다는 것.


10년전 시할머니 장례식도 나에겐 떠내보내지 못하는 억울함이자 미움이었는데, 결국 그 오해는 나로부터 기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도 우주에서 지구 내려다보기 성공..


오늘은 108배를 시작하는데 오른쪽 무릎이 시큰 거렸다. 반만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끝까지 땀흘리면서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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