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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Aug 25. 2021

우주에서 지구 내려다 보기 4탄

108배 수행 20일째 (21년 8월 25일)

남편과 포항에 대게를 먹으러 갔다. 결혼한지 2년이 되지 않았을때이다. 남편과 나는 둘이서 엄청난 양의 대게를 먹으며, 포항과 대구가 가까우니, 대게를 삶아서 시댁에 가져다 드리고, 친정 부모님께는 문어숙회를 사서 드리기로 했다. 시댁에 드릴 대게를 찌는 동안 문어를 고르러 갔다. 대게는 약 10만원 정도 했고, 문어는 한마리에 2만 5천원 가량했다. 나는 문어를 두마리를 가져가자고했는데, 남편이 왜 두마리나 가져가냐며 한마리로 줄였다. 서운했지만 일단 남편이 하자는 대로 했다.


대구 시댁에서는 대게를 맛있게 잘 드셨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쯤 성남 친정에 도착해서 문어숙회를 꺼내놓았다. 친정집에 초장이 없었다. 아버지가 소주를 드시고 싶어했지만 소주가 없었다.  초장이 없어서 엄마가 고추장으로 초장을 만드셨고, 아버지가 계속 문어숙회와 소주가 한잔 드시고 싶다고 하셨는데 남편은 계속 모르는 척 하였다. 


나는 딸이면서 사위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장인어른이 멀 하고싶다고 하면 엉덩이 가볍게 알아서 척척해주는 사위. 내가 남편에게 집앞 편의점에서 사가지고 오는 어떻겠느냐고 물었는지 묻지 않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머라고 좀 다녀오면 될 것을...서운했다. 그리고 왠지 나와 우리 부모님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안다.. 이것은 순전히 내 피해의식속의 내 느낌일 뿐이라는 것. 정작, 그런 마음을 품고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은 남편만이 알 것이다.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소주를 드시고 싶다는데 좀 사오지"

"장인 어른 건강 안좋다며, 소주 드시면 안되지"

"한 잔 정도는 괜찮지.. 그걸 그냥 모르는 척 하냐"

"안좋다잖아." 


무한 반복


나는 더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다. 

"시댁에는 10만원짜리 대게 사갔는데, 어제 내가 문어 한마리 더 사자고 하니까 그게 그렇게 아까워?"

"무슨 소리 하는거야?"


차 안에서 서로 고함을 치며 싸웠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집을 나갔다.


잠시 후 돌아와서, 거실에 앉아있는 나에게 만원짜리 10장을 내 얼굴에다 대고 던졌다. 

그 다음 장면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 나는 남편과 대화를 하지 않았던 것같고, 나의 6주간의 싱가폴 출장기간동안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출장을 다녀왔는데, 나를 보고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어떤식의 거래가 오고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남편과의 싸움은 이런 패턴이었다. 싸우고, 길게 대화하지 않고,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대화 다시 시작하기.


10년간 그것이 계속 반복되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조용한 대화가 되지 않으니, 그냥 차단해버리다가 없었던일로 해버리기. 하나의 싸움이 생기고 끝날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줄줄이 비엔나로 붙어버리는 과거의 원망과 미움들. 


이번에는 이 고리를 끊어버리고 싶다. 


어쨌든, 예전에는 그렇게 엉덩이 무겁게 움직이지 않았던 남편은, 요즘은 혼자서 움직이기도 한다. 부모님 사시는 곳에 곰팡이가 심하다며 제습기도 구매해서 설치해드리고, 예전에는 "너희 집 식구들은 너무 시끄러워"라고 했는데, 요즘은 이모네 집에서 식사하는 걸 좋아하고 즐긴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구보니 조금씩 남편의 변화가 있었구나...


솔직히 혼란스럽긴하다. 지금의 시기가 내가 이런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일부러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좋아지고 있다고 변명을 지어내고 있는것인지, 정말 내 마음이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그래도 이번 편도 우주에서 지구 내려다보고, 퉁치기 완료..

오늘 108배때는 계속해서 이 상황을 복기하고, 깨닫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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