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덴마크에 도착했다. 처음 몇일은 호텔에서 있고, 사장님께서 한국에 돌아가시자 나는 예스네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게 되었다. 예스는 숙박료도 받지 않고 나를 먹여주고 재워준 것이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항상 감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거기다가 모뎀료도 상당히 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완전 대한민국 민폐)
예스와 처음 집에 도착했을 때의 집 안 풍경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예스의 와이프 리나와 고등학생 딸인 앤은 돌돌 말은 담배로 맞담배를 피고 있었다.
하지만 쿨~하게 받아들였다. 이곳은 외국이니까, 아니 그 이후에는 한국이어도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예스네 집은 덴마크의 중심부는 아니고 코펜하겐에서 기차로 4시간정도 떨어진 빌런드라는 곳이다. 빌런드 공항은 오리지널 레고랜드가 있는 곳이다. (레고의 고장은 덴마크), 빌런드에서도 1시간 덜어진 곳
거기다가 예스네 집은 시내까지 약 10분 이상 차를 타고 나가야하는 곳이었다.
예스의 덴마크 집 풍경
어느날은 맥주가 마시고 싶어서, 맥주를 사러 자전거를 타고 30분을 시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 체인이 망가져서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사방이 깜깜하고, 휴대폰도 없는 시절이라 상당히 난감해하며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다행히 예스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내가 오지 않자, 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찾으러 와 주었다.그때의 감동이란...
사진에 보면 오른쪽에 있는 곳이 방들과 거실이 있는 집이고, 정면으로 보이는곳은 자동차 가라지, 그리고 말, 닭을 키우는 곳이었다.
덴마크는 그당시 예스의 설명에 따르면 덴마크는 보험의 나라이다. 키우는 말, 닭, 개에게도 보험을 든다고... 예스 딸인 앤은 말을 가끔씩 끌고 나가서 들판을 달렸었다. 그냥 그렇게 심심하면 말 타는 것이 덴마크의 일상이었다.
한번은, 예스가 출장을 가서 내가 예스의 차를 몰고, 출퇴근을 했는데, 마을에 들어서면 차의 속도를 아주 많이 낮춰야한다는 걸 잊고 속도를 냈다. 그러다가 마을의 어느 집에서 풀어놓은 말들이 바로 앞에서 다가 오는 차에 놀라 날 뛰다가 살짝 차에 부딪혔다. 나도 너무 놀라서 멈췄어야했는데 그냥 가버렸다... 예스는 그렇게 도로에 말을 풀어놓은 게 잘 못한 거라고 했지만, 그때의 죄책감이 아직도 마음속에 무겁게 남아있다.
덴마크에서의 두번째 충격은 공중 화장실안에 있는 어떤 통이다. 그 통이 무엇인지 몰라 나중에 예스에게 물어보니, 일종의 마약(?)을 맞고 주사기를 버리는 곳이라고 했다. 세번째 충격인 공영방송에서의 포르노 방영과 더불어 덴마크의 오픈 된 문화를 볼 수 있었다.
예스의 딸인 앤은,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물론 가족들이 나에게 모두 호의적이긴 했지만) 앤은 앞 편에서 이야기 했듯이 중학교때 영국 보딩 스쿨 (기숙학교)에서 아이들이 왕따를 시켰고, 앤은 덴마크로 돌아와서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았다.
덴마크에서는 상담을 받기 위해 직접 병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상담사가 집으로 방문해서 상담을 해 주는 구조였다. 나는 심리 상담사가 집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앤과 심리상담사는 거실에서 상담중이었다.
내가 물을 마시려고 거실로 나가자, 그 상담사의 놀라는 표정이란.
나중에 들어보니, 앤이 심리상담사에게 "Korean Girl"이 우리집에 있다고 말했으나, 심리 상담사는 앤이 환상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Korean Girl"이 나타났으니, 유령이 나타난 것처럼 놀랄 수 밖에 ㅎㅎㅎ
앤은 그게 좋았나보다. 이렇게 외국인이 없는 시골 마을에, 다른 유럽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먼 동양에서 온, 그것도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Korean Girl이라니...
그래서, 그것과 같은 맥락으로 나는 앤의 고등학교에 가서 덴마크의 고등학생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게 된다.
어떤 프리젠테이션이냐고?
바로 대한민국 프리젠테이션이다.
나름 부채춤, 고궁등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사진을 찾아 ppt를 만들었고,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고등학교때는 밤 12시까지 자율학습이라는걸 한단다... 라고 알려주었는데 아이들이 무척 놀랐다.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게 다행이라며... (오소희 작가님의 엄마의 20년에도 해당 에피소드가 나온다/오소희님에게 대한민국 아이들은 그러면 가만히 있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 프리젠테이션을 무슨 용기에서 했을까 싶다. 영어를 잘 하는것도 아니었는데... 영어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무대뽀 정신이 필요한 듯
좋은 경험이었고, 내가 앤의 학교 친구들 앞에 나타나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알려준 것도, 앤의 학교 생활에 좀 도움이 되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