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의 나의 임무는 '금형'이라는 걸 배워서 오는 것이었다. 회사가 준 미션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미션이었다. 금형도 모르고 영어도 잘 안되니, 해외영업을 하기 위해 금형을 영어로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하지만 금형 영업 말고도 내가 해야할 일이 있었으니, 그건 해외영업.
몇 년 후에 국내영업도 해 보았지만, 한국 사람들이게 한국말로 무엇인가 셀링한다는 건 머랄까, 내가 팔 제품보다 나를 더 포장해서 보여주어야하는 그런 느낌이다. 국제 결혼을 하면,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한쿠션 먹고 들어가 부부싸움이 적은 것처럼 (아주 사적인 의견) 해외영업도 나에게 그런 느낌이었다.
자동차 사출금형이라는 제조기술을 갖고 있는 한국의 영업사원인데, 거기다가 여성이야. 그럼 더 한쿠션 먹고 들어간다. 고객들은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고 대부분 우호적이었다. 내가 그것을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닌데, 출장을 다니면서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건 직접 부딪혀봤기때문에 가능한 깨달음이었다.
나는 우선, 예스의 덴마크 회사에에 출근하면 인터넷으로 자동차 회사, 자동차 부품회사, 플라스틱 부품 회사, 자동차 전시회 (자동차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관련 부품도 전시한다), 금형에 들어가는 부품 업체 혹은 금형 기술을 양성하는 교육 업체등등을 서치했다.
그 당시는 인터넷이 빠른시기도 아니었고, 정보들은 많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저런 업체들은 대부분 인터넷 홈페이지는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물론, 이메일 주소도 있다.
일단 예스에게 계획을 설명하고, 프랑크푸르트 자동차 전시회 일정을 중심으로 잡고, 여러 고객에게 Cold e-mail 을 보냈다. (Cold e-mail 이란 쉽게 말하면 Cold call 처럼 나를 전혀 모르는 고객들에게 무작정 나 이런회사 직원인데, 니좀 만나서 우리 회사 소개할 기회좀 달라고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몇군데서 연락이 왔다.
출장 라우트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업체 방문, 자동차 전시회, 플라스틱 부품 전시회에 나의 개인의 여행을 조금씩 가미하였다. 유럽여행 일주는 아마 내가 대학교때부터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대학생때 IMF 가 왔고,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냈기 때문에 유럽여행은 항상 나의 로망이었다.
그래서 결정한 출장의 라우트는 스위스 베른 (전시회) - 독일 프랑크푸르트(전시회) - 스페인 바르셀로나 (교육기관 방문) - 프랑스 파리(업체 방문) 였고, 여행의 라우트는 스위스 루체른 - 독일 베를린 - 이탈리아 로마 - 프랑스 리옹 - 영국 런던으로 짰다. 물론 출장의 라우트와 여행의 라우트가 완벽하게 구분되었던 건 아니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 전시회를 참석하고 나서 베를린으로 이동하고, 스위스 베른에서 플라스틱 전시회를 참가했으면 루체른으로 가서 관광을 하고,, 이런식이었다.
출장의 명목이었기때문에 호텔은 예스가 본인회사의 여행사를 이용해 각각 예약해주었고, 나는 두려움을 가득안고 유럽 출장(? 혹은 여행?)을 시작하였다. 영업력도, 금형기술도, 영어 능력도 갖추지 못한 나를 덴마크로 보내주신 사장님께 누가 되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Output을 내고 싶었다.
스위스는 베른부터 갔다. 베른은 한국 발음이고 버ㄹㄴ 이런 발음이다. 스위스 베른은 평화로운 도시였다. 플라스틱 부품회를 참석하고 유명한 언덕으로 가서 2시간동안 멍때리고 숙소로 돌아왔던 기억만 남아있다. 베른에서는 루체른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을 했다. 기차표를 끊을 때 루체른이라고 하자 창구에서 못알아 들었다.. 루체른은 루체른이 아니라 루쩐이다. 한국식 발음이 국제미아를 만들 수 도 있다.
루체른에서는 까를교 근처에 숙소를 구했다. 루체른에 가면 어딜 가야하나 찾아봤더니 필라투스라는 곳이 있다. (필라투스라는 이름을 정말 까맣게 까먹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융프라우가 더 유명했는데, 몇년 후에 융프라우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결국엔 이때 필라투스를 경험한 건 정말 잘 한 일이었다.
필라투스는 루체른에서 유람선을 타고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는 거였는데, 그때 유람선에서 중국여자와 인도 남자를 만나서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즐겁게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저녁때 그럼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했는데 중국 여자는 다음 여행지로 이동해야하고, 인도 남자랑 저녁에 카펠교에서 만나기로했다.
바람맞았다!!! 인도 사람한테!!
약 30분정도 기다렸다가 나혼자 치즈퐁듀를 파는 곳에서 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내가 인도사람들을 별로 안좋아했나?
그 다음날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그럼 영화를 볼까? 하다가 그당시 개봉한 쥴리아로버츠 나오는 영화인 "아메리칸 스윗하츠"를 보았다. 스위스는 독어, 불어, 영어를 다 쓰는 곳이어서 sub title이 독어, 불어 두 줄이 나오는게 신기했다. 영화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옆에 앉았던 스위스 남자는 기억난다. 그 남자도 영화를 보러 왔고 영화를 다보고 같이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 남자도 딱히 할게 없는 것 처럼 보여서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아니다.. 펍에 갔나.. 기억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나는 잔상은, 그렇게 밤이 되었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그 스위스 남자가 자기 잘 곳이 없는데, 호텔에 따라 가도 되냐고 했다.
응???
당연히 안되지, 미안, 안녕. 그러고 헤어졌다.
정말이다.
살짝 기억으로는 못생기지도 않았는데 약간 히피? 이런 느낌이었다.
머리도 몇일 안감으신것 같은....
핸섬하고 양복을 입고 있었으면 호텔에서 재워줬을까? ㅋㅋㅋㅋ
그건 모를일이다.
살인적인 물가 스위스의 기억은 여기서 마무리, 여행이든 출장이든 로맨스를 꿈꿨던 젊은 시절.. 그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