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구조적 차별은 이렇게 차별을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미 차별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어서 충분히 예측 가능할 때, 누군가 의도하지 않아도 각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차별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생긴다. 차별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불이익을 얻는 사람 역시 질서 정연하게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불평등한 구조의 일부가 되어간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없는가?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中)
오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블로그에 독서 감상평을 남기다가 갑자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너무하냐고?
바로 어제 있었던 돌봄추첨이 너무했다.
생각해보면 요즘 많은 가정이 맞벌이인데, 돌봄추첨에 당첨되지 못하면 아이를 학원 뺑뺑이를 돌려야한다. 그 학원비는 거기다가 가계에 상당히 부담이다.
60명중에 21명 당첨이라니, 그리고 그것을 뽑기로 진행하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첨되지 못한 39명의 엄마들은 이제 아이의 점심을,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아이의 이모님을 찾아 삼매경을 해야한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집에서는 아이와 관련한 모든 것을 엄마가 알아보고, 애원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당연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직장맘은 회사일 + 아이에 관련된 모든 것 + 가사를 돌보아야하는 것이다.
쓰다보니 또 짜증이난다.
왜 우리사회는 이런 돌봄추첨을 당연한듯이 해야하고, 추첨에 당첨된 사람은 아.. 이번에는 살았네.. 추첨에 떨어진 사람들은.. 아.. 이제 어떻게 하지..계획을 치밀하게 짜는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차별이다. 그냥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다 돌보아주는 것이 사회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출산하면 200만원을 주네, 셋째부터는 월 40만원씩 지원해주네.. 그런거말고, 엄마들이 걱정안하고 생계를 위해서 적당한 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고, 생계가 아닌 자기 커리어적 목표를 가진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될 수 있게 하는게 먼저 아닌가? 그러자면 이런 돌봄추첨 따위로 그 해의 운과 불운을 가르는 그런거 말고!! 돌봄 다 해달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