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여기저기 다녔지만 어쨌든 나의 아웃풋은 프랑스 발레오라는 회사의 금형을 하나 수주했다는 것 밖에 없었다. 아마도 말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장님인지, 이사님인지 한국으로 들어오는 게 좋겠다고 했고, 나는 아무 미련없이 덴마크를 떠나게 되었다.
덴마크에서의 추억은 그 이외에도 많다. 예스의 조카였던 나와 동갑인 예테가 몸으로하는 예술 공연을 데려가 주었고 (그 이후에는 그런 아름다운 공연을 본적이 없다), 시내의 베트남 식당을 함께 갔었다. 그리고 예스네 집에서 키웠던 닭들이 탈출하자 예스 첫째 아들인 엔더슨과 함께 닭을 쫓아서 잡으러 다녔던 일도 기억나고, 한국에서 금형이 선적되었었는데 그 안에 금형을 보낼때 내가 김밥이 너무 먹고 싶기도하고, 덴마크 사람들에게 김밥을 맛보이고 싶어서 김밥 재료를 따로 주문했었는데 김이 구워서 온 김이라 김밥을 싸지 못했던 일, 짜파게티를 누구나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 짜파게티를 끓였더니 아무도 먹지 않았는데, 예스네 집에 있는 '파이어'라는 개가 엄청 잘 먹었던거.. 이런 해프닝은 소소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예스의 부모님은 근처에 살고 계셨는데, 그 당시도 상당히 나이가 많은 부모님이셨는데, 내가 방문하자 너무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우리 부모님이 예스를 맞아주시듯이, 예스를 자랑스러워하셨다) 예스의 어머니는 아기자기하게 인형같은걸 만드는 걸 좋아하셨고, 집앞에 그런 인형들을 이쁘게 전시해 놓으시기도 했다.
지금은 예스 아버지는 얼마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살아계신다.
얼마전에는 20년전에 예스가 한국에 방문했을때 우리 엄마가 담가준 인삼주를 이웃들과 함께 마시는 장면을 예스가 사진찍어서 보내주기도 했다. 따로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나의 삶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 사건들과 사람들이다.
이런 인연들이 소중한 걸, 왜 지나고나야 깨닫게 되는 것일까.
첫 회사에서의 출장일기를 쓰면서, 할말도 많았고 쓰면서 나의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의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몇명 되지는 않지만 진정으로 공감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거기다가 나는 이런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안정된 회사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내가 하루하루 나오면서 내가 무엇을 위해 지금 이렇게 달려가고 있는가, 무엇에 힘들어하는 가도 생각하게끔 하는 시간이었던 것같다.
나의 첫회사의 추억은 지금도 너무 소중하다. 예스라는 나의 소중한 친구, 그리고 나의 첫 회사.
그당시 영업부 부장님은 나와 같이 수원에서 살고 있어서, 엄마가 부장님 집근처까지 데려다주면 부장님 차를 타고 항상 함께 출근했었다.
나는 부장님과 가장 친했었는데, 부장님은 가끔 내 두 손을 꼭 붙잡으면서, "XX아 손 좀 잡자"라고 하셨다. 내가 막 짜증내면 "그 손 잡는다고 썩냐?"라고 하시면 "부장님! 성교육좀 받으셔야겠어요!"라고 맞받아쳤었다.
지금 시대의 관점으로 생각하면 너무도 성추행인데, 그냥 친근하셨던 거다. 가끔 부장님은 주유소에서 야한 달력들을 한움쿰가져오셔서 본인의 서랍에 보관하셨는데 부장님이 외근하신 틈을 타서 그 야한 달력들을 다 꺼내서 쓰레기통에 버린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두분은 사장님만큼이나 너무도 따뜻히셨던 분들이다.
알밤같은 나의 사수는? 그는 일도 잘했고, 잘 삐지기도 했고 나를 가끔씩 말도 안되게 괴롭히기도 했지만 지금의 내가 있게한 사람이었다. 알밤 사수는 그 이후에 외국계회사에 취업해서 잘 나가고 있었고, 예스랑도 개인적으로 다른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수의 취미는 경비행기타기였고, 예스네 가족들과 제주도에서 만나기로 했던 바로 직전 경비행기를 타다가 경비행기가 추락해서 식물 인간이 될 뻔 하였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가끔 예스가 올때마다 같이 만났었는데, 예전의 총명함은 사라진 상태였고, 급기야 나의 결혼식 전에 우리집에 초대한적이 있었는데 날짜를 완전 다르게 생각해서 나의 광분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결혼식때는 본인의 친구를 데려와서 식사만하고 축의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아직까지 연락하지 않는다. 그의 큰 사고는 예전의 그를 변하게 하였으니...
나는 덴마크에 다녀온 후 사장님과 인도, 프랑스, 이란, 말레이시아 출장을 함께 다녔었다. 사장님은 현지에 가서는 현지 음식을 먹어야 현지의 생활과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인도에서는 난을 손으로 먹기도하고, 손을 씻는 레몬물을 마시는 물인줄 알고 마시기도 하였었다. 사장님께서는 그렇게 나를 신뢰하셨지만, 나는 덴마크 다녀 온 후에도 금형이 힘들었고, 영어가 힘들었다.
결국에는 퇴사 결정..
그리고 첫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모아둔 돈으로 캐나다 연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의 뒤죽박죽 세계여행기는 앞으로 시간의 흐름이 아닌, 나의 해외 생활에 대해 생각나는데로 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