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그 선택을 한 건 모두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흘러간적도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보면 딱히 내가 어떤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기위해 발버둥친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유일하게 후회되는 건, 첫 직장을 그만두고 캐나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것이었다. (10년전까지는) 첫 직장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모아 그걸 탕진했고,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해 오리라는 다짐과는 달리, 다녀와서도 여전히 영어는 나에게 어려웠다.
가장 큰 이유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6년후에 다시 사귀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제대할 무렵 나는 캐나다에 있었다. 그 친구 복학 후 주말에 미술품 경매(?)하는 곳에서 파트타임을 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여자와 바람을 폈고, 내가 캐나다에서 돌아온 후에도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가 넌 내가 없어도 씩씩하게 잘 살것같다며 이별을 고했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는 건 그 이후에 그의 친구를 통해서 들었다)
헤어짐 후에 나는 약 1년 정도 매일 술로 방황을 하였었다. 가치 없는 것에.
내가 캐나다 연수를 가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캐나다 연수를 가지 않았었더라도, 어차피 헤어지게 될 인연이었다. 그 친구가 나에게 잔인하게 굴었던 것들은 까맣게 잊고 계속해서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나의 쓸데없는 환상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은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어쨌든 나는 남자친구가 있던 없던, 내 인생을 결정해야하는 사람이었고 영국과 캐나다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하였다. (미국은 비자때문에 가지도 못한다) 왜 캐나다로 결정했는지 이유는 생각나지 않지만, 유학원을 통해 어학원을 등록하고 홈스테이를 구했다. 어학원은 캐나다 토론토 중심부에 있었고, 홈스테이 집은 전철을 타고 이스트로 맨 끝역에 있었다. 초등학교때부터 항상 집에서 먼 곳으로 다녔던 지라 (중학교는 산도 넘어서 다녔다) 그게 내 숙명이겠거니하고 열심히 다녔다.
나는 왕초보는 아니었기때문에 일단 비지니스 영어반으로 들어갔고, 한국인은 복학생 오빠 한명이고 나머지는 일본, 독일, 스웨덴, 멕시코, 베네수엘라등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일본 친구 히로키랑 친해졌는데, 내가 일본인과 직접 친구가 된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등학교때 역사과목을 좋아했고, 역사선생님께서 어찌나 수업을 재밌게 해 주셨는지, 일본에 대한 분노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충분히 잘 장착이 되어있었는데, 히로키는 정말 괜찮은 친구였다. 나보다 3살인가 어렸는데 재치와 유머와 인간성을 다 갖추고 있는 친구였다. 그리고 히로키는 영어 초보반에 남자친구가 있었던 케이코와 썸을 탔고 결국엔 사랑을 쟁취하였다. (그 과정에서 내가 히로키의 연애상담도 해주고, 케이코에게는 히로키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사랑의 다리 역할도 해 주었다)
이 둘은 몇년간의 원거리 연애 후에 결혼해서 지금은 고베에 살고 있다. 9년전 쯤, 일본 여행을 갔을때 고베에 들려서 이들 집에 놀러도 갔었고, 케이코가 친정식구들과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지금도 페북에서 가끔 안부를 주고 받고 있다.
어쨌든, 나는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히로키, 케이코와 파티도 다니고, 여행도 다녔다.
한번은, 이들과 캐나다 오타와, 몬트리올, 퀘백 여행을 함께 갔다. 가을 쯤이었고 각 도시별로 너무 아름다운 매력이 있었다. 퀘백은 거대한 유럽같다는 느낌을 받기도했다. 그때의 에피소드 중,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건 뽀글이의 추억이다. 이미 이스라엘에서 복학생 선배들에게 뽀글이를 소개받아서 알고 있었다. 우리는 신라면을 한국마트에서 몇개 사갔는데, 끓여먹을 곳이 없었고, 내가 뽀글이를 먹자고 제안했다. 중간에 마트에 들려서 뜨거운 물을 찾았다. 그리고 뽀글이를 만들어서, 주차장에 세워져있는 차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일본사람들이라는데, 이 둘은 허물없이 무엇인가를 모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6개월 간의 캐나다 연수 중 그러고보면 이런 소중한 인연들을 만들었다는 것으로도, 후회할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인연 마이클 (마이클이라고 쓰고 나의 마이클이라고 말한다 ㅎㅎㅎ)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