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의 연수 였지만, 1년은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 어학원에서 3개월 가량 비지니스 영어와 토플 수업을 듣고, 테솔 자격증을 따기 위한 학원도 다녔고, 정말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마지막에 1달정도 다른 어학원에도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어학원에서는 비지니스 영어 과정 두 달과 토플과정 한달을 들었었는데,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항상 웃는 숲에서 바로 뛰쳐나온 것같은 모습의 선생님 John이 있었다. 그리고, 같은 반에 한국에서 온 대학생도 있었다. (연수 다녀와서 몇 번 만났는데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같은 반에 독일에서 온 마이클이 있었는데, 그 당시 마이클은 대학생이었고, 한달 간 토플을 듣고, 미국으로 옮겨가는 일정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수업시간에 책상을 원으로 놓아두고, 수업을 받았는데 나의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맞은 편에 앉은 마이클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너무도 느껴졌다..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토플반 선생님 John은 나중에 마이클을 Navie (순진한) 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너무도 해맑은 독일청년이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건 저 독일 청년은 나와 친해지고 싶구나.. 였다. 그래서 내 생일 파티를 홈스테이 가족이 열어준다고 할때 일본친구들인 히로키와 케이코, 그리고 마이클을 생일 파티에 초대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우리는 막판에 친해졌다.마이클이 미국으로 떠나기 몇일 전, 우리는 수업 후에 단체사진을 찍었고, 그 날은 마이클과 둘만의 저녁 약속을 잡은 날이었다.
마이클과 나는 그리스 식당에서 그릭 샐러드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기억나는 이유는 그때 그릭 샐러드를 처음 먹어봤기 때문), 2차로 조용한 술집에 가서 술한잔하였으며, 3차로 포켓볼을 쳤고, 4차로 또 다른 술집에 갔었던 기억이 있다. 마이클은 이런 데이트는 남자가 다 내야하는 거라며 내가 돈을 내려고 하자 못내게 했다. (이런 남자분은 그 이전도, 그 이후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때부터 독일남자들은 매너가 좋다고 생각하는 스테레오 타입이 되었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왔다. 마이클은 나를 우리 홈스테이가 있는 기차역까지 바래다 주고, 아쉽게 작별을 했다. 그 당시 그냥 서로에게 좋은 느낌을 받고, 즐거웠지만 아쉬운 마지막 시간을 갖고 그냥 헤어지게 된 이유는, 마이클도 독일에 오래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고, 나도 군대에 있는 남자 친구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이별 끝에 우리는 정말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마이클은 대학에서 일본어를 배웠고, 대학 졸업 전 일본에서 교환학생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때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취업을 했을 때였고, 마이클은 한국에 스탑 오버로 들리기로 했다. 몇일 동안 우리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여동생이 본인의 방을 비워주었고, 내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 대학생이었던 동생이 마이클을 관광시켜주기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가족은 집 근처 삼겹살 집으로 마이클을 데려가 식사하며 소주도 함께 먹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이클과 캐나다에서 토플 클래스를 같이 들었던 동생에게 연락을 해서 셋이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우리는 일단 밤에 출발해서 정동진의 일출을 보겠다며 (내가 운전) 새벽에 도착해서 차를 세워놓고 차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서 일출을 보았고, 나의 친할머니 댁인 경상북도 풍기로 이동을 하였다. 할머니께서는 마이클이 무척 마음에 드셨던지, 그때 대게를 저녁으로 먹었었는데 대게살을 골라서 마이클앞에 놔주셨다.
마이클이 일본에 가게 된 전 날은 서울랜드에 함께 가기로 했는데, 엄청 언잖았던 그 당시 남자친구의 눈치를 보며, 마이클과의 약속을 깼던 일은 두고두고 후회를 한다. 일본에 가기 전 마이클은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자유의 상태였으나, 나는 남자친구가 있었던 상태여서, 이번에도 어긋(?)났다.
그리고 그 다음해 나는 남자친구와 슬픈 이별 후 친구와 유럽 패키지 여행을 갔는데, 그때 프랑크푸르트에 있었던 마이클은 기차를 타고 내가 있는 하이델베르크로 나를 만나러왔다. 그때는, 마이클이 여자친구가 있었다.. (3번째 어긋남?)
1년이 지나자 마이클은 일본 여자 친구가 있는 일본으로 인턴을 하러 갔고, 나는 일본여행을 하면서 마이클과 캐나다에서 친했던 일본인 친구와 함께 만나서 저녁을 먹었다. 그 당시 마이클의 눈은 무척이나 슬퍼보였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되었다.
마이클은 몇년 후에 나에게 긴 이메일을 보냈는데, 예전에 하이델베르크에 왔을 때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여자친구가 (결혼을 이미 했을 수도) 우연히 보고 너무 슬퍼하여, 이제는 나에게 연락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메일에는 자세한 내용이 담겨져 있지는 않지만, 일본의 문화 특성상 배우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감시하는 문화라고, 본인은 휴대폰, 지갑을 모두 검열받는 상태라고....
그 메일을 처음 받았을때는 황당했다. 마이클과 나는 감정의 교류만 있었을 뿐이었는데.. 정말 아무일도 없었는데...
항상 내가 나의 마이클.. 이라고 하고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이유는 내가 그 당시는 국제 교제나 결혼을 염두해두고 있지 않았기때문에 이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나름대로 생각한다면, 마이클은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공주병인가요? ㅎㅎㅎ)
마이클에 대한 환상이 영원히 깨진 건 그로부터 몇 년 후 이다. 나는 말레이시아-한국-싱가폴을 거쳐서 다시 한국에 취업을 했는데, 그곳에서 3개월간 독일에 장기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나는 오랫만에 마이클에게 프랑크푸르트에 있다고 이메일을 보냈고, 마이클은 무척 반갑지만 본인의 처지 상 저녁은 못먹고 점심만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프로젝트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엄청 바뻤던 일이지만, 점심시간에 시간을 냈고, 마이클은 나를 픽업하러 왔다. 예전에 풋풋했던 나이브한 마이클은 없고, 왠지 세상풍파에 쩔어보이는 건 왜인지... 지금 돈을 갖고 있지 않다고 ATM기에 가서 돈을 뽑아야한다며, ATM기를 찾아 돌아다녔다. 내가 사줘도 된다고 해도.. 안된다며.. 결국엔 슈퍼안에 ATM기에서 돈을 찾았고, 우리는 그 슈퍼안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차안에서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빨리 들어가봐야했다)
그게 너무 마음에 걸렸는지 그 이후에 한 번 더 마이클은 만회할 기회를 달라고 메일을 썼고, 우리는 피자집에서 점심을 한번 더 먹었다.
그게 그와의 마지막 조우이다.
15년에 복직 후 바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장을 3주 갈 일이 있었는데,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
딱 여기까지... 나의 마이클에 대한 환상을 깨는 일은 여기까지만, 이라고 생각했던 듯..
가끔 인스타나 페북에도 마이클의 사진이 뜨고, (외국인은 정말 빨리 늙는것같다...) 내가 결혼 전까지만해도 내 생일에 꼭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준 나의 마이클이다.
마이클과의 인연도 캐나다에서 시작해서 계속해서 내 일생에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그 당시로 돌아가고 싶은건 왜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