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나서 너무 빡센일정들을 하루하루 소화하다보면 비우는 것 없이 채우기만 해서 넘치는 순간이 있다. 처음 제주에 와서 너무 적응하고 싶은 마음에 대한민국의 여행자처럼 여기저기 빡세게 돌아다니고 싶었고 봄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발목이 삐고 말았다. 억울했지만 나에게 워워하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았고 금방 일상에 적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이다. 작년 딱 이맘때 유치원이 끝난 아이를 태권도를 보냈는데 그만 고관절 염증이 걸리는 바람에 2주일동안 집에서 함께 하게 되었다. 유모차를 태우고 병원에 다녔고, 화장실 갈때마다 22킬로 나가는 아이를 항상 안아주었다. 아이는 제주에 와서 실컷 놀고 즐겁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 너무 무리를 한 나머지 지난 주 화요일 쩔뚝거리기 시작했다. 작년이 생각나서 얼른 제주에 과잉진료 하지 않는다는 정형외과에 데리고 갔는데, 시원한 답을 받지 못한채 돌아왔다. 다행히 다음날 괜찮아져서 일상으로 복귀시켰는데 지난주 금요일 학교에서 다녀온 사려니숲길 소풍을 하던 날, 방과후 방송댄스도 하고, 저녁에 수영도 가는 바람에 병이 다시 도진듯하다. 월요일에 무리해서 학교에 보냈는데 어제저녁에 거의 걷지를 못하는 걸 보고 덜컥 겁이 났다.
학교를 결석시키고 정형외과에 다시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다행히 심각한 상태는 아니였고, 오늘 하루종일 집에서 함께 있었다. 둘이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가 자지 않겠다는 아이를 두고 나혼자 깊게 잠이 들었다. 오늘 오전에 원마을 공동체 이웃들과 한살림에서 반찬만들기 자원봉사가 있었는데 가지 못하고 글을 써야하는데, 책을 읽어야하는데.. 를 머릿속에만 두고 침대위에 누워있었다. 아이는 조용히 책을 읽고 나는 잠을 자고.. 평화로운 일상같았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며 밥을 내놓으라고 했는데 2시가 넘어서야 일어나서 볶음밥을 준비해주었다. 먹고나서 다시 침대로.. 계속 눈이 감긴다. 아이가 아픈데 내가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잠깐씩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혼내다가 한숨을 쉬니.. "엄마 오늘 요리못가게 해서 죄송해요.."라고 한다.."아.. 그게 아니라, 엄마는 태윤이가 더 소중해. 요리는 다음에 가도 되는데 태윤이가 움직이지 말라는 엄마말 잘 들어서 빨리 나았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가끔 너무 이쁜 말을 하는 아이다. 그렇게 저녁에는 점심에 먹다 남은 볶음밥을 먹여야지했는데 윗층 이웃이 아이 저녁을 챙겨주겠다고 전화를 했다. 아.. 이런 스윗한 사람들.. 감사함으로 마음이 벅차오른다. 아이를 보내고 나니, 윗층 아이가 김치찌개와 부침개를 가지고 왔다. 아이가 아픈데 내가 왜 쳐지는 걸까.. 그 마음을 먼저 알아준 이웃이 또 감사하다.
내일은 친정엄마가 오기로 하셨는데 일상이 브레이크가 걸려버려서 제주에 처음 오시는 엄마를 잘 못챙겨드릴것같아 죄송한 마음이 일어난다. 다행히 이모가 육지에서 제주로 내려왔다고 하니 목요일에 엄마는 이모네서 잠을 자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