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장 번아웃과 찾아온 코로나

인생이 변하는 독서, 그리고 블로그

by 꿈꾸는 유목민

난임 휴직의 기간동안 둘째를 갖는 것을 실패하고 19년 1월에 복직을 하였다. 결혼과 출산 후에도 출장 업무가 잦아 이미 우울감을 한 번 경험했기에 복직 후에는 출장업무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서장에게는 복직을 하게 되면 친정 엄마가 아이를 봐 줄 수 없어서 출장업무는 곤란하다고 이야기해 놓았다. 그는 일단 알겠다고 했고, 나에게 북미 거점 담당을 맡겼다. 난임 휴직 전 주로 유럽과 동남아 거점을 담당했는데, 북미는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과 시스템도 달라서 생소했다. 무엇보다 난임 휴직 6개월동안 가장 문제가 많은 권역이어서 CFO에게 직접 관리를 받았을 뿐 아니라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미 안정화를 위해 장기로 투입되어 왔다. 복직 바로 전에 조직개편이 있어서 출장자들은 이미 돌아와 있는 상황이었다.


복직 후 아직 산재한 문제점들을 파악하느라 데이터를 분석하고 북미 현지 사람들과 업무를 보았다. 3월부터 5살된 아이를 회사 어린이집에 입소를 시켰기에 1월, 2월은 친정 엄마가 아이를 돌보아주고 집 앞 어린이집으로 등하원 시키셨다. 그 기간 동안에는 새벽 6시가 조금 넘어 출근하여 북미 담당자들과 회의를 할 수 있었고, 3월부터는 아이와 직장어린이집으로 30분거리의 직장으로 등하원을 함께했다. 오랜만에 회사일을 하니 6개월간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업무 열정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갑자기 3월에 북미 거점에 문제가 생겨서 2주간 출장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2주간 출장은 괜찮다고 생각해서 친정어머니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미국 출장을 갔다. 출장 중에는 주말없이 출근하여 열심히 업무를 보았는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북미 담당자가 된 이상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한국으로 출장 복귀 후 2주만에 다시 북미 거점으로 출장을 갔고, 2개월이 넘는 기간동안 아침 7시에 출근하여 밤 11시에 퇴근하는 강행군을 하였다. 출장지의 부담감이외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 몸을 돌보아야겠다는 사치였고, 일단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휘몰아치듯이 업무를 보았다.


이슈 해결후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북미권역 지역 이동으로 인해 기존인력이 모두 퇴사할 예정이어서, 한국 본사의 지원이 필요했다. 5살 아이와 1달이 넘는 시간을 잠시 가진 후 장기출장을 또 떠나야만 했다. 3차 미국출장의 기간동안, 나는 내가 담당하는 업무의 미국 메니저인것처럼 교육일정을 관리하고 북미에 특화된 시스템을 기존 인력들에게 배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앞선 두번의 출장과는 달리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고, 하루이틀 배워서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닐 뿐 만 아니라 많은 경험이 필요한 일이었다. 기존 인력이 퇴사하는 시점에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기 시작했다.


새벽 5시에 눈이 떠져 새벽 6시에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출근하는 날이 많았고 밤 12시까지 업무를 마치고 호텔에서 잠을 청해도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날이 늘었다. 나의 온 정신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회사일에 지나치게 몰입되어 있었다. 미국 현지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현지 한국인들은 나의 열정을 이해할 수가 없던 듯했고, 매일의 할 일을 만들고, 타이트하게 관리하는 나를 버거워했던 듯했다. 특히 나와 합동해서 업무를 해야 했던 현지 한국인 메니저는 내 판단으로는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내가 하는 것을 보면서도 남의 일인 것처럼 방관했다. 매일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본사의 권한으로 현지 직원들에게 직접 오더를 내렸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업무가 마비가 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돌아온 것은 황당한 결과였다. 회사의 일이라 밝힐 수는 없지만 나는 그 일로 3개월로 계획되어 있었던 4차 출장을 간지 2주일만에 비행기표를 변경하여 돌아왔다.


분명히 본사에 돌아가서 인사적으로 문제가 될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상사들은 조직개편과 함께 그 일을 덮어버렸다. 조직개편으로 부서장이 변경되자 북미에서 벌어졌던 일은 정제되어 관심이 없는 일이 됨과 동시에 바로 코로나 19가 우한에서 퍼졌다. 북미에서는 나의 재 출장을 요청했으나 겉으로는 승낙을 했으나 계속 미루다가 회사에서 대대적으로 해외출장 금지 정책이 떨어졌다. 정말 다행이었다. 19년 한해동안 250일 정도되는 출장으로 번아웃이 되었고, 무엇보다 북미 현지에서 겪었던 마음의 내상 컸기에 좀 쉬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일했는지, 나의 열정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면서 일을 끌어 나가려고 했는지, 난임휴직 기간동안 아이에게 정성을 다하기로 한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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