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만에 육지행
오늘은 제주에 온지 4개월만에 육지에 가는 날.
짐을 쌀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육지에서 제주에 가져내려올 짐들을 생각하여 큰 캐리어를 끌고 여행길에 올랐다.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서현역에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자마자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리무진 서현역에 내려서 택시타고 집에 가야하나?"
"응 그래도 되고, 나는 짐이 별로 없으면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가기도해"
남편이 대답해준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할 것 같다.
"그래? 그럼 몇 번을 타야해?"
"내가 전화 끊고 알려줄게!"
"오! 그래 고마워"
전화를 끊고 잠시 기다리니 남편이 3개 정도의 버스 노선을 캡쳐해서 보내준다.
이런 적이 처음이라 괜시리 신이 났다. 예전에는 내가 다 알아서 네이버 지도를 키고, 내가 알아보았는데 남편에게 이런 부탁을 한 적도 처음이고, 남편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알려준적도 처음이다.
택시를 타고 갈까 잠시 생각했지만 남편이 나를 위해 알아봐준 것이니 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심한다.
시내버스는 어디서 타면되냐고 했더니, 리무진 버스 내린 곳에서 타면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리무진 버스에서 내려 몇 걸음 걸으니 시내버스 정류장이고 남편이 알려준 버스 중 220번이 오길래 캐리어를 낑낑대며 들고 버스에 탔다.
'버스에서 내리면 캐리어를 끌고 자주가던 짜장면 집에 가서 쟁반짜장을 먹고 라떼를 사마셔야지'라고 생각하니 배에서 꼬르륵 거린다. 버스에서 내려서 남편에게 고맙다고, 당신이 이렇게 알려주니 챙김받는 느낌이었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할 생각을 하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났다.
8정거장 쯤 갔을까.. 모란시장이다.
판교를 가려면 모란시장으로 가야하나.. 버스가 많이 돌아서 가네.. 라고 순간 생각했다가 혹시 몰라 버스 노선도를 유심히 보았다. 몇 번이고 다시 살펴보았고, 내 눈을 의심했다. 반대방향의 버스였다.
얼른 하차벨을 누르고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순간 욱했지만 배가 너무 고파 버스 정거장 바로앞 분식점에 들어가서 참치김밥과 우동을 시켰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했다.
"리무진 버스 내린 곳에서 버스 타라며... 근데 왜 반대방향이야.. 정말 왜그래.."
"아 그래? 아.... 그렇지.. 나는 판교집에서 내려서 공항 가는 걸 생각했네.."
남편의 말도 말이 안되었다.. 그냥 남편은 버스를 타본적이 없는 모양이다.
전화를 끊고, 밥을 먹고, 택시를 불렀다.
서현에서 택시를 탔으면 5천원정도 나왔을텐데, 모란에서 택시를 타기 1만 2천원 택시비가 나왔다.
택시에서 내려서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전화를 다급하게 한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네
난 나를 믿어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