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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Jun 27. 2023

현실부부

독서의 기록 출간이후의 기록

제주에는 독서하고,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이웃들이 가까이 있다. 일부로 그런 주변인을 찾아서 제주에 온 게 아니었는데, 독서와 기록으로 내 삶이 변화되자 끌어당김의 법칙이 작용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이웃 덕분에 삶이 풍요로워졌다. 방해자에서 서서히 조력자가 되던 남편은 이제 완벽한 조력자가 되었다. 곧 육아휴직을 내고 제주에 내려와 가족 추억의 역사를 쌓아갈 예정이다 (독서의 기록, 에필로그 中)


책에서 완벽한 조력자가 되어있는 남편이 육아휴직 후 제주에 완전히 내려온지 3일째다. 남편이 완주에서 배를 차에 싣고 내려오던 날은 보배책방에서 열리는 부모교육에 다녀오느라 거의 마주치지 못했고, 어제 처음으로 오전과 낮시간동안 함께 있었다. 둘이 칠성로의 스타벅스로 출근해서 서로의 할 일을 하고, 동문시장의 순대국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가 며칠전부터 먹고 싶다던 블루베리를 시장에서 사는데 옆에 있는 자두를 먹고 싶다고 조른다. 블루베리와 수박을 다 먹고 사자고 설득했는데, 거의 아이가 뿌리는 떼 수준으로 조른다. 8년 전 네덜란드여행을 함께 다니면서 어마무시한 양의 과일을 구입하고 결국에는 다 먹지 못하고 프랑스 북부 어디쯤에서 버린 과일들이 생각났다. 그때는 말렸는데 기어코 샀다면, 지금은 단념할줄아는 성숙함을 장착해서 다행이었다.


제주소통협력센터로 가서 함께 있다가 남편은 아이를 픽업하러 간다며 집으로 미리 갔다. 아이의 픽업과 저녁과 숙제를 남편이 챙겨주게 되었다. 나는 어제 출판사에서 갑자기 요청한 원고검토를 해야해서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밤 9시면 잠이 들던 아이였는데, 밤 10시가 넘었는데 숙제를 다 마치지 못했다. 졸린 아이는 high되어 산만해졌다. 

"이제 1주일간 놀러다니는거 금지!, 할 거 하고 놀기!"

아이를 야단치니 남편이 스르륵 눈치를 본다. 남편이 눈치보는 걸 내가 또 눈치보게 된다. 권력을 가진자가 되지 말자고 항상 돌아보게 된다.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어제 검토를 마치지 못한 원고를 읽고, 의견을 적으며 아침시간을 보냈다. 출간이후 강행군으로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한달에 한 번 오시는 분도 오셨다. 수면부족과 피곤한 몸으로 짜증이 나 있는 상태에서 시간에 예민한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아이는 아침에 7시 이전에 일어나 그 날 읽을 책을 읽고, 잔소리하지 않아도 책가방 챙기고, 밥 잘 먹고, 양치하고, 옷갈아입고 '다녀오겠습니다~'를 한다. 그 시간은 주로 오전 7시 40분이었는데, 오늘은 8시 20분이 되었는데 밥을 먹고 있고 학교에 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제주에와서 셋팅해놓은 아이와의 평범하고 계획적인 일상이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했다. 남편에게  밤 9시에 자는 걸 목표로 그날의 계획을 세워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오전에 원고검토를 마무리하고, 너무 피곤해서 낮잠을 자려고 하는데 남편은 아침부터 나를 따라다니며 점심은 언제 먹냐, 점심은 뭐먹냐, 언제 자냐, 샤워안하냐, 오늘 어디 안나가냐를 무한반복했다.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데 딱 그 상황에 맞춰 청소기를 돌리며 통화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오거나, 별로 덥지도 않은데 하루종일 에어컨을 돌리거나 (겨울에는 속옷상태로 다니며 춥다하고, 여름에는 옷을 껴입고 덥다하고...), 따라다니며 계속 무엇인가 말을 시키는 남편을 고스라니 느끼며, '아 피곤하다... 괜히 휴직시켰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참다가 어디라도 가라고, 이웃 빈센트한테 가라고 해도 싫다고, 계속 너랑 있을꺼라고 너스레까지 떤다.


점심 뭐 먹을거냐고 계속 물어보길래, 샐러드랑 고등어조림을 만들어먹자고 했다. 처음으로 요리를 같이 했다. 남편이 물을 냄비에 준비하고, 육수캡슐을 넣고, 무를 썰고 양파를 썰었다. 감자와 양파가 모자르자 남편은 이왕먹을꺼면 잘 먹고 싶다며 이마트로 뛰어가 장을 봐왔다. 나 같으면 있는 재료로 그냥 먹을텐데.. 고맙다가도 앞으로 남편 코끼리와 함께 사는 만큼의 식비가 들 걸 생각하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양념장에 들어갈 재료를 말해주자 열심히 이것저것 넣어 섞는다. 


그런데 밥을 푸려고 전기밥솥을 열다가 그만 열폭하고 말았다. 결혼 10년동안 이 주제로 계속 싸운것 같은데, 이 무한반복되는... 상황은 뭐지.. 남편이 해놓은 밥은 족히 15인분이상이다. 오늘 몇 번의 짜증을 내는거지.. 또 한숨이 나온다. 함께 식사를 하며 "오빠는 내가 매번 화내도 이렇게 똑같이 한번에 15인분을 하는 이유는 그냥 변하고 싶지 않은거지?" 웃으며 물어보자, 푸우의 웃음으로 씨익 웃는다. 


점심을 먹자마자 정신없이 2시간동안 골아 떨어져서 낮잠을 잤다. 그 사이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함께 우당도서관으로 가서 9월에 갈 유럽여행을 위해 관련책을 잔뜩 빌려왔다.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는 남편, 아이가 고등어 조림을 맛있다고 하자. 아빠가 처음 요리한거라며 계속 맛있지 않냐고 아이에게 물어본다. 


이틀밖에 안되었는데, 집에 한 사람이 온전히 더 들자 이벤트가 자주 일어난다. 짜증이벤트와 행복이벤트가 함께 찾아온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생각하게 되고 반성하게 되고 기대하게 된다. 


계속 나만 따라다니는 남편에게 한마디 한다.

"본인을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다른 사람을 신경쓸 틈이 없어..오빠도 오빠의 일을 찾아보는게 어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게 전문인 남편은, 알겠다고 알겠다고 대답한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내일은 내가 어디라도 나가야겠다. 

남편을 독립시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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