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페낭에서 다시 한국으로
말레이시아에서의 생활은 한마디로 평화로웠다. 아주 별로인 말로 표현하면 좀 지루했다. 싱글들이 살기에는 너무 지루할 수 있는 그런곳이다. 항상 우리가 페낭에서 이야기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와서 살기에는 정말 좋은 곳이다. 항상 더운 곳이지만, 아침 저녁으로 서늘하고, 저녁에는 멋진 석양도 만날 수 있다. 낮에는 밖에서 활동하는 일이 거의 없기도 하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도 전기세가 우리나라만큼 많이 나오지도 않는다.
한국팀의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약 2-3년을 페낭에서 생활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대부분 20대후반에서 30대초반의 싱글 여성들이기 때문에 2-3년 해외 경험, 그리고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짝을 만나고 결혼을 하기 위함이 아닐까?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몇살인지, 결혼을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이런것을 신경쓰지 않고 살아도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 오는 순간부터 내가 살았던 페낭은 그냥 무릉도원이었던 것처럼, 신기루이고 다시 한국사회에 적응해야했다.
한국으로 돌아올때쯤되어서 나는 30대 초반이었고,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오래된 친구가 연인이 되었었는데, 오래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겠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의 취업활동은 눈물겨웠다.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고 100군데에 이력서를 제출하였으나 나의 Speciality가 없으니 면접을 오라고 연락오는 곳은 몇군데 없었다. 3개월 정도 취업활동을 하던 끝에, 미국 기업에 어렵게 취업을 하게 되었다. 반도체 장비를 취급하는 업체라 S사가 고객이었던 회사로 기억한다. 120명쯤되는 한국 직원들 중에 여직원은 10명도 안되고, 여직원중에 정직원은 나 포함해서 5명? 정도밖에 안되는 좀 이상한 회사였다. 나의 업무는 영업사원이 오더를 받아오면 그 오더를 SAP 이라는 ERP 시스템에 입력하고 선적을 관리하는 업무라, 말레이시아에서 했던 일과 큰 차이는 없었다.
미국회사니까 SAP은 미국에서 교육받아야 한다며, 미국교육까지 1주일 보내주었다. 이때 10년만에 리젝당한 미국 비자를 받았다.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를 방문했고, 처음 방문한 미국은 정말 컸다. 일주일밖에 안되는 일정이라 기억에 남는 중요한 일은 없고, 다만 인앤아웃 햄버거가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처음 먹어봤던 기억만 남아있다. 미국출장은 혼자가서 재미가 없기도 했다. 영어로 듣는 수업은 더 힘들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1달만에 적응을 하고, 지루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회사가 점점 이상해졌다. 비서들을 없애고, 그 비서들이 하던 업무를 각 부서의 여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전무님은 S 사 출신이셨는데, 그 당시 S사의 임원발표가 나자, 나는 그들에게 선물을 보내야했다. 나는 난을 골라서 보냈다. 그리고 자주 전무님의 골프를 예약을 해 드렸어야했는데 골프 예약은 전화연결도 어려웠다.
여기까지는 그냥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커피를 타오라던지 그런일은 없었으니까..
내가 비서업무를 하러 들어갔으면 당연히 해야하지만, 나의 Job description에는 비서 업무가 없었다. 그런데 갈수록 수위가 높아져 가더니 어느날 전무님께서 자리로 나를 부르더니, 점심을 먹었냐고 물어보셨다. 난 기분이 좋게 먹었다고 말씀드렸는데. 갑자기 나더러 방울 토마토를 주면서 씻어오라고 하셨다.
음,,, 나는 그당시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토마토를 씻어드리고 생각했다. 이 곳은 내가 일 할 곳이 맞는 곳인가.
일단 나는 싱가폴 회사를 찾아봤다. 그리고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꿈꾸는 유목민
세계여행의 기록
다시 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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