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작가가 추천했어요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를 쓴 민선정 작가는 나의 직장생활과 결이 비슷했지만 개인으로보면 훨씬 더 완벽주의자 성향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여유도 최고의 여유를 즐긴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이유로 육아휴직을 하고 퇴사를 결심하고 제주에서 살고 있는 그녀이지만 나는 도심에서 직장인이었을때의 삶보다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 새벽기상이 몸에 베여 늦게 일어나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아이가 옆에 있다고 하더라도 나를 키우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같은 제주 하늘아래 살고 있지만 어쩌면 나보다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민선정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해진건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민선정 작가는 15년을 꽉 채운 대기업 직장인이었다. 처음에는 힘든 신입사원 시절을 경험했지만 야무지고 악바리같은 기질로 이를 헤쳐나가고 맡은 일마다 인정받는다. 하지만 인정의 이면에는 '개인 삶의 희생'이라는 전제가 있다. 에세이의 비바람이 몰아닥치듯 숨가뿐 그녀의 직장생활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알려준다. 나의 20년 직장생활도 그랬다. 회사에서의 인정이 나를 규정짓는다고 생각했고, 회사에서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렇게 일하면 당연히 번아웃도 온다.
작가의 번아웃이 온 시기가 나와 비슷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후에도 예전의 마음처럼 일하는 건 힘들다. 예전에는 나만 생각하면되었다면 아이의 하루도 내 인생에 고스라니 들어있기에 중요함의 중심축이 옮겨지게 된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넘어져 일곱 바늘을 꽤맸던 날, 민선정 작가는 병원으로 바로 달려가지 못하고 보고를 마친 후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미친듯이 집중을 한다. 나중에 아이가 자신이 아팠을 때 엄마가 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는 장면에서는 같은 엄마로서 그 장면이 너무 상상되고 이해되서 나 또한 울컥했다. 회사는 매몰차다.
나 또한 둘째 임신을 위해 시험관을 하고 성공했던 임신 초기에 회사에 감사가 있어 밤 늦게까지 남아 업무를 한 적 있다. 회사에서는 물론 내가 임신초기라는 걸 알아서 배려해 준적도 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12주 차에 유산한 건 꼭 늦은 업무와 스트레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p79 회사가 중요하냐, 가족이 중요하냐 물으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가족이라고 말하겠지만,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행동으론 회사를 택했다. 가족은 기다려 주고 이해해 주겠지만 회사는 그러지 않았다. 가족은 나를 평가하지 않지만 회사는 나를 평가한다는 이유였다.
p102 아이를 돌보기 위해 쓰는 육아휴직이지만, 나도 돌보는 육아휴직이 되자는 목표도 더했다. 일하는 시간이 제일 가치 있다고 여기며 살았던 나에서 일하지 않는 시간도 가치있게 보내는 나로, 여유를 불안해하던 나에서 여유를 제대로 누리는 내가 되기를 바랬다. 나를 돌보는 핵심을 온전한 휴식에 뒀다.
p117 육아휴직을 하고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일을 멈추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바람 빠진 풍선 인형이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일이 사라진 자리에 결이 전혀 다른 제주에서의 일상이 채워지니, 나는 제주 바람 따라 즐겁게 춤추는 인형이 됐다.
너무 많이 채워 넘쳐났던 회사에서의 삶을 비운 자리에 제주의 여유로움을 채운 작가는 복직 전 이미 퇴직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 부분이 궁금했었다. 민선정 작가는 이미 '퇴근할까, 퇴사할까'라는 공저책을 냈다. 그 시기의 결론은 퇴근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복직 1년 후 퇴사였다. 일잘러로서 열정을 다해 일했던 인정받는 직장에서 퇴사를 결심한다는 게 쉬운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같은 듯 다르게 닿아있는 작가의 이야기에 격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p160 삶의 주도권을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내게 두니 나는 더 굳건해졌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더 간절하고 선명해졌다.
그렇다고 나를 붙잡은 사람들이 무용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붙잡았기에 한 번 더 고민했고, 한 번 더 확신하는 과정이 있어 내 의지가 더 단단해졌다. 흔들렸지만 꺽이지 않았고 연약했지만 굳세진 내 결심은 결국 나를 퇴사하게 했고 제주로 이끌었다.
퇴사를 결심했을 때 나보다 주변인들이 퇴사를 더 말린다. 대기업에 들어가는게 쉽지 않고, 일하면 나오는 적지않은 월급을 그냥 포기하는 느낌을 나보다 더 아쉬워한한다. 비슷한 상황과 마음들에 공감하며 누구보다 그녀의 결정을 응원하게 되었다.
p248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더 자주 행복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행복의 잦은 빈도는 미루지 않은 마음과 맞닿아 있다. 목표만 향하느라 소소한 행복을 미루지 않는 마음, 노을 지는 풍경과 같이 오늘도 내일도 볼 수 있는 흔한 날을 미루지 않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물론 미루지 않는 마음에 앞서 소소한 행복을 알아차리는 여유부터 갖춰야 한다.
비운 곳에 행복하고 여유로운 마음들을 채우며 같은 제주에 살고 있는 나도 잦은 행복의 빈도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불편한 편의점의 김호연 작가님이 추천하신 신간 에세이인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를 여유가 필요하지만 두려운 모든 사람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