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에서의 월급은 그렇게 많지 않다. 싱가폴 사람들 기준으로는 조금 많을 수 있는데 한국어라는 메리트가 있긴 하지만, 그 장점은 조금만 작용한다. 30대 초반이니 사회 생활 경험도 적고 Speciality가 없으니, 그 정도 월급이면 괜찮다 싶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0만원 중반정도 되었던 것같다..) 그당시는 돈이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일단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내세울게 없으니 그 정도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싱가폴은 주로 콘도 같은 집을 하나를 빌려서 방값을 내고 3-4명이 같이 모여사는 구조로 되어있어서 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방을 구하게 되어있다. 나는 위치는 정하지 않고 여기저기 보러 다녔는데, 아마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는 것을 보고 연락했던 것 같다. 월급을 고려한다면, 집값으로 많이 쓸수는 없는 일이라서 싼 방을 구하러다녔다.
이스트코스트 쪽에 아파트가 아니라 그냥 일반 주택에서 몇명이 모여서 사는 방이 있었다. 그 방은 대락 40-50만원 정도 했었는데, 당시 방 렌트하는 가격이 70-80만원이고 콘도 한채를 렌트한다고하면 약 400만원 정도라서 40-50만원이면 엄청 싼 가격이었다. 가서 보니 라꾸라꾸 침대 하나 놓고 아주 작은 옷장을 하나 놓으면 꽉 차는 그런 방이었다. 나는 그 당시에 방은 잠만 자면 된다고 생각해서 그 방을 계약해버렸다.
그곳에는 항공사에서 일하는 마스터룸을 쓰는 싱글의 여자, 남미 커플, 그리고 생각나지 않는 두명이 살고 있었다. 방은 작았지만 조금만 나가면 아름다운 바닷가가 있는 집이라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회사는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했던 곳이라서 좀 멀긴했지만 멀리 다니는게 익숙했던지라 상관없었다.
회사에서 나의 메니저는 한국에서 나를 인터뷰했던 싱가폴 사람이었고, 그 메니저가 이케아에 함께 가서 라꾸라꾸 침대와 옷장을 함께 골라주었다. 이제 싱가폴 생활은 셋팅 완료였다.
회사 사람들은 작은 규모이긴했지만 나 혼자 한국사람이어서 그런지 나에 대해서 상당히 궁금해했고 잘 해 주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살던 언니와 함께 주말마다 클라크키에 유명한 재즈바도 다녔다. 그 재즈바 옆에 있는 다른 술집에서는 손님으로 온 사람들이 즉흥으로 밴드를 결성해서 악기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는 그런 곳도 있었다. 클라크 키는 아름다웠고, 집과 가까운 이스트코스트의 해변은 저녁에 운동하기 딱 알맞은 곳이었다.
동생도 말레이시아에서 건너와서 몇일 있다가 가고, 한국에서 친한 친구도 놀러왔다. 내 한 몸 누이면 꽉 차는 그 방에서 몇 일을 같이 있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익숙해지자 나와 점심식사를 하러 가서도 자기들끼리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계속 소외감을 느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야속할 수 없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자기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는 것을 요즘에야 이해가 되었다. 물론 배려심과 예의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일 수도 있지만, 본인들에게는 모국어인 중국어가 편하니까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나았을 뿐이었다. 그냥 나는 그 사이에 낀 사람일 뿐이었다.
싱가폴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곳은 회식문화가 없는 줄 알았는데, 이곳도 상당한 회식문화라는게 있었다. 일단 회식은 모든 사람들이 거의 강제적으로 가야했다. 우리나라는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는데, 이곳은 아예 노래방에서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 한국에서도 노래방 가는 걸 너무 싫어했는데 (친한 친구들과함께 빼고는 안간다) 곤욕이었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양해를 구하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회사일도 2개월 지나니 익숙해졌다. 나는 그 당시 싱가폴 회사에서 직함이 없었다. 한국에서의 최종직함은 대리였는데, 내가 업무를 하다가 보니 한국회사와 일을 하는데 직함이 없는게 무척 불편했다. 그래서 내가 월급은 상관없으니, 나에게 한국식 직함을 달라고 건의를 했다. 나는 대리나 과장이라는 직함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는데, 그 회사의 사장이 몇 번이나 거절을 했다. 아니,,, 월급 안올려줘도 괜찮다니까? 그냥 직함만 달라니까?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어떤 이유때문인지 그건 최종적으로 거절 당했다.
그게 원인은 아니었지만, 나는 2개월만에 업무를 익혔고, 업무는 다시 지루해졌다.
회사만 그랬을까? 꿈을 품고 온 싱가폴의 삶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꿈꾸는 유목민
세계여행의 기록
싱가폴로 취업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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