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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Jun 18. 2024

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새벽 4시 30분부터 일어나 오후 3시까지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걷지 않으면 일상이 무너질 것 같아서 1시간 20분을 걷고 집에 들어오니 아이가 피아노 연습이랑 수학문제까지 다 풀었다고 한다. 내일 가는 현장체험학습에서 먹고 싶은 걸 줄줄 말하는데 모두 몸에 독을 부어야 하는 음식인듯하다. 과자, 탄산음료, 양념치킨.... 한숨이 나온다. 일단 양념치킨과 엄마가 싸주는 야채 김밥을 함께 먹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탄산음료는 독을 몸에 붓는거니 어린이 음료로 고르라고 했는데 뽀로로 밀키스맛을 골랐다. 왠지 말리는 느낌이다. 과자를 고르러 간다길래 엄마가 베트남에서 사온 과자를 가져가라고 하자 실망하는 표정이다. 아이의 표정에 또 한번 말렸다. 그래.. 내일은 현장학습이니 네가 먹고 싶은 걸 먹자. 그리고 라면은 일주일후에 못 먹는 걸로. 


초등학교 3학년 아이는, 엄마라면 좀 기다려주고, 웃어줘야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한다. 내가 그렇게 여유가 없었나.. 또 반성한다. 


마트에서 사온 화이트 와인을 한 잔 마시는 동안 남편에게 할말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두 가지였다.


첫번째, 어제 갔던 치과 검진 후에 아이가 갑자기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뭘 집어왔다. 병원에 두는 사탕이나 비타민 종류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손에 들려있는 건 당황스러웠다. 옥수수 수염차, 메밀차, 녹차 티백.... 아이가 마실만한 것도 아닌데 아이는 왜 챙겨왔을까? 

"그걸 왜 가져왔어?"

"공짜잖아!!"

가만히 한숨이 나온다. 평소 남편의 행동이다. 아빠의 행동을 보고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진 아이의 모습에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병원에 둔 건 그곳에서 먹을 사람들을 위한 거야.. 공짜라고 해서 그렇게 가지고 나오는 건 예의가 아니야.."라고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 두었다. 집에 가는 길, 우리 엄마도 그랬을테고, 시어머니도 그랬을텐데... 그걸 관찰하는 사람에 따라 자녀들의 행동이 달라지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무료라고 해도 가져오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시어머님의 모습을 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게 아닐까? 그래서 그런 행동을 서슴치 않고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나의 아이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전화로 그런 이야기를 해도, 남편은 "알았어.."라고 하고 다음에는 또 같은 행동을 하겠지. 그렇다면 나는 이걸 남편에게 이야기해야하는 것일까?


두번째, 아이가 피아노교습을 받은지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집에 피아노는 없고, 시작했을 때 여동생이 전자 키보드 피아노를 선물해주었다. 아직은 정식 피아노를 구입하지 않았는데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언제 어떻게 이동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의 일상 중 꼭 해야하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피아노 연습이다. 피아노 선생님은 아이들이 음악을 사랑하게 만들어주시는 분이다. 아이는 피아노 학원을 가기 싫다는 말을 한 번도 한적이 없고, 연습하지 않을거면 피아노 교습을 하지 말라는 말에 더 열심히 연습을 했다. 

2주일전부터 아이가 피아노 시간에 배운 걸 자기가 다 외웠다며, 악보를 보지 않고 연습했다. '악보를 보지 않고 배운걸 바로 친다고? 천재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월요일 저녁 아이를 데리러 가면서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선생님! 태윤이가 그날 배운 곡을 외워서 바로 치던데요?"

당황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결코 아이에게 불리할 발언을 해주실 분이 아니다. 

"어머!..... 그래요...? 태윤이 수학 잘 하죠?"

갑자기 수학이라니!! 

학교에서 내주는 아주 쉬운 연산 문제집만 푸는 아이는 이미 만점왕 응용 수학을 포기한지 오래이다. 수학을 잘 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잠시 고민했지만 선생님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아이들마다 특징이 있잖아요.. 수학 잘하는 아이들이 그렇게 악보를 수학공식처럼 외워서 치더라구요.."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아이는 본인이 치고 싶고 익숙한 외운 곡을 처음 배웠는데 외워서 치는 것처럼 연극을 했던 것이다. 화를 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귀신같이 나의 마음을 알았다. 

하루종일 앉아있다가 운동하고 들어왔는데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 피아노 연습도 다 했어! 이번에는 배운거 다 연습했어!"


내일 체험학습에 싸갈 음식을 장을 봐서 함께 집에 왔다. 손을 대충 씻은 게 너무 티가 나는데도 아이는 비누칠을 해서 꼼꼼하게 씻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아이의 거짓말이 점점 버거워진다. 이런 이야기들을 남편하고 하고 싶었는데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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